산이 거북이 모양이라 ‘구길(龜吉)’
일제시대에 ‘구길(九吉)’로 바뀌어
경주신문 기자 / 2008년 01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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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길 |
ⓒ 경주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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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 새해아침이 밝았다. 올해는 실용정부를 표방하는 새 정부가 들어서는 원년으로
많은 국민들이 경제가 좋아져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국민들의 소망처럼 동해에 떠오른 밝은 태양만큼이나 밝고 희망찬 새 세상이 열렸으면 좋겠다.
구길은 양북면 지역으로 대종천 하구의 감은사지 건너편에 자리한 마을이다. 동쪽은 대종천을 따라 동해에 이르고, 북쪽은 929번 지방도를 경계로 감은사지가 있는 용당리에 닿아있다. 남쪽은 문무대왕수중릉이 있는 봉길리, 서쪽은 손명주로 유명한 두산리와 양남면 상라리에 인접해 있다.
경주에서 이 마을을 가려면 4번 국도를 따라 보문관광단지를 지나 관해동재를 넘어 어일삼거리에서 오른쪽 감은사, 문무대왕수중릉 방향으로 가다가 감은사에 이르기 전에 오른쪽으로 대종천 건너편 산기슭에 펼쳐진 마을이 구길. 시청에서 32km 40분 거리이다.
구길을 찾았을 때 마을회관 앞마당에는 붉게 핀 아름다운 한 송이 동백꽃이 추위에 몸을 숨긴 채 취재진을 반기며 수줍게 웃고 있었다.
감은사지 건너 마을
구길리는 110가구에 175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주로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고 토마토, 정구지, 한우를 부업으로 하고 있다. 한우는 약 240두가 사육되고 있고, 토마토는 3가구에서 4천여 평, 정구지는 1가구가 3천여 평 정도를 재배한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원덕희(96·서계댁) 할아버지로 아직 산에 가서 나무하고 밭일을 할 정도로 건강하다. 젊을땐 술, 담배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끊었다고 한다.
구길은 안동권씨 집성촌으로 현재도 약 50여 가구에 이른다. 그 외 원씨와 김씨가 각각 10여 가구씩 있다.
동제 이 마을의 동제는 매년 정월대보름날 지낸다.
당목 이 마을에는 본래 2그루의 당나무가 있었다. 그 중 수령이 1천여년에 이르는 느티나무는 10년 전에 늙어 죽고 그 밑둥치만 남아 있다. 지금은 수령 100년 정도 된 작은 느티나무만 남아 있다.
거북이 꼬리 같아 ‘구미(龜尾)’
구길(九吉) 이 마을의 산이 마치 거북이 모양이라 ‘구길(龜吉)’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마을의 형태가 마치 거북이 꼬리 같다고 ‘구미(龜尾)’라 불렀다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구(龜)’를 ‘구(九)’로 바꾸어, ‘구길리(九吉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큰마을 구길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안각단’이라고도 한다. (25가구)
덕음(德音) 구길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주민들이 덕(德)을 숭상하고 인심이 좋아 항상 덕스러운 소리를 듣는다고 ‘덕음’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13가구)
비골(飛谷) 덕음 남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의 모양이 새 날개처럼 생겨 ‘비곡’이라 불렀다 한다. (18가구)
솔밭골 구길 서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솔밭이 있어 ‘솔밭골’, ‘송전곡(松田谷)’이라고도 한다. 마을에서 약 1km 떨어진 산골에 자리하고 있다. (6가구)
아릿말 큰 마을 아래 있어서 ‘아릿마을’이라고 부른다. (5가구)
앙골 큰 마을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안골’이라고도 부른다. (10가구)
선각단 앙골과 한마을인데 도랑을 중심으로 서남쪽에 있다. (16가구)
말밭 신라시대에 말을 맨 자리라고 한다. 천석군이 난 마을로 말을 맸다고 해서 말밭이라고 한다고도 한다. 대종천 하구쪽 감은사지 맞은편에 있다. (5가구)
권씨, 원씨, 류씨 3성 살아
↑↑ 동은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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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선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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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신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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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육신당은 현판조차 붙어있지 않고 주거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수년전 현판과 서책 등을 도둑맞았다고 한다.
장군 못 나게 쳐서 푹 꺼져
구산 마을 뒤에 거북이처럼 생긴 산이다.
굴통이재 굴이 있는 고개로 솔밭골 서쪽에서 양남면 상라리의 자붓으로 넘어간다. ‘굴통골재’라고도 한다.
범방재 솔밭골 남쪽에서 양남면 상라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침실재 구길 동남쪽에서 봉길리의 윗봉길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굴통골 육신당 뒤 골짜기로 굴통이재 밑에 있는 골짜기이다.
절테구미 구길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기와조각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청시골 큰 바위가 있는 골짜기이다. 솔밭골 육신당 남쪽에 있다.
범바우 범방재에 있는 푹 꺼진 자리이다. 이곳은 옛날에 장군이 나는 자리인데, 장군이 못 나오도록 쳐서 푹 꺼졌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대본에서 어일까지 이어진 ‘황새숲’
황새숲 대종천 제방에 수백년 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황새들이 많이 날아왔다는 숲. 대본에서 어일까지 6km에 걸쳐 연결되어 있었던 이 숲은 폭이 넓은 곳은 100m에 이르렀다고 한다. 1964년경 경지정리 과정에 대종천 제방을 다시하며 모두 베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대종천에 언어, 장어 등이 엄청나게 많았다고 한다. 사라져버린 숲에 대해 주민들이 아쉬워했다.
덕음숲 덕음마을 앞에 있던 약 1km에 이르는 숲으로 마을의 보호림이었는데 대종천 제방을 하면서 베어내어 없어졌다. 이곳에는 물레방아도 있었다고 한다.
구길들 구길 앞에 있는 들이다.
구길초등학교 터 구길리에 있던 구길초등학교의 터. 이 학교는 1949년 6월에 개교했고 1992년 3월에 양북초등학교에 통합됐다.
구길교 새로 놓아야
이 마을은 진입로 다리가 좁고 낡아 다시 놓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1981년 새마을사업으로 놓은 이 다리는 교각간 거리가 좁아 비가 오면 자주 막히고 물이 범람한다고 한다. 다리의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 다리는 구길교(九吉橋)로 용당리와 구길 사이의 대종천에 놓인 길이 140m의 다리이다.
그리고 솔밭골 올라가는 마을 안길이 폭이 좁고 비포장이라 통행에 불편이 많다고 한다. 이 길의 확포장이 주민들의 숙원이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원종관(63·예비역 육군대령), 권영길(57·경주시의원), 원길연(42·원주 변호사), 권오대(33·산업자원부) 등이 있다.
취재에 협조해주신 권영만 이장, 권영세 노인회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께 감사드린다.
↑↑ 구길리 마을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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