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책사’ 있었다

‘한국 경주 안압지 출토 책사 목간에 관한 시론’ 논문에서 주장

손익영 기자 / 2011년 0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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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목간(木簡).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이 목간에서 ‘책사’(策事)라는 문구가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 안압지 출토 목간
ⓒ (주)경주신문사 


뤼징(呂靜) 푸단대학 부교수를 비롯한 중국 문자학 연구자 3명은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산하 동아시아자료학연구회가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한 공동성과물인 ‘죽간(竹簡)·목간에 담긴 고대 동아시아’(성균관대출판부)에 기고한 논문에서 1975년 안압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목간(木簡) 51점 중 ‘책사’라는 문구를 묵서(墨書)한 목간 2점이 발견됐으며, 이를 통해 신라에는 책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연구자에 따르면 신라에도 중국에서 황제와 신료들이 얼마나 박식한지를 겨룬 게임의 일종인 ‘책사’라는 제도가 있었으며 이는 신라에서 학문시험 용으로 활용됐다고 한다.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가 2004년 펴낸 ‘한국의 고대목간’이라는 종합자료조사집에 수록한 목간을 기준으로 할 때 ‘책사’라는 말은 제182번 목간과 제213호 목간에서 각각 확인된다.
↑↑ 중국 연구자들의 논문이 실린 ‘죽간(竹簡)·목간에 담긴 고대 동아시아’(성균관대출판부)
ⓒ (주)경주신문사

이 중 182호 목간에서는 ‘보응 4년’(寶應四年. 765년)이라는 연대 표기와 함께 ‘일이삼사오’(壹貳參肆伍)라는 숫자 표기가 보이며, 213호 목간에서는 ‘책사문사역문금’(策事門思易門金) 정도로 읽을 수 있는 묵서가 확인된다.

또한 이들 연구자에 따르면 책사가 보이는 두 목간 중에서도 213호 목간에 쓰여진 ‘책사문사역문금’(策事門思易門金)이라는 말은 ‘책사문’과 ‘사역문’의 빗장(金) 정도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다면 이 목간은 책사문과 사역문의 문을 여는 열쇠에 붙었던 목간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이 목간들이 제작된 “신라왕조에는 책사라는 전문화한 부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중국에서는 황제와 신료 및 문인 사이에서 박학(博學)을 겨루던 ‘예사’와는 달리 신라왕조에서 책사는 귀족 자제들의 학문적 수준을 제고하고 시험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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