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경마장 스토리
경주경마장 부지는 엄연히 경주에 있다. 부지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이성주 기자 / 2012년 0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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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정부의 지방경마장 건설사업 계획에 따라 경주를 비롯한 부산 등 여러 지자체에서 경마장 유치를 신청했다.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며 뛰어든 지자체들의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첨예한 대립양상으로까지 번졌다.
1992년 경제성, 접근성, 유발효과 등을 기준으로 한 입지선정을 위한 용역결과 경주가 지방경마장 건설의 최적지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경마장 부지 입지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해 연말 경주는 뜻밖에 응원군을 얻게 된다. 제14대 대통령 선거가 임박했던 1992년 12월, 당시 민자당 김영삼(YS) 대통령 후보는 경주역 광장 유세에서 경주시민들에게 아주 달콤한 말을 내뱉었다. “경주에 경마장을 만들겠습니다”
어쨌든 YS집권 때인 1994년 3월 18일, 정부는 경마장을 신청한 경주와 부산 등 지자체 중에 ‘경주시 손곡면 물천리 일대 29만4000여평(96만5000㎡)에 1998년 상반기 개장을 목표로 지방경마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경주경마장 사업에 대해 지역 내에서도 찬반여론이 일었다. 찬성 측은 연간 400억원의 세수를 기대할 수 있다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하며 반색했다.
반대 측은 사행성이 짙은 경마장이 들어서면 가정이 파탄 나고 지역서민경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주경마장에 대한 견해 차이는 당시 그렇게 지역사회에 공존했다. 그러나 정부의 경주경마장 부지 발표는 찬성론자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쪽으로 흘렀다.
1995년 9월부터 한국마사회 측의 부지매입이 진행되고 1996년부터 매장문화재 발굴이 본격화되면서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경주경마장 부지에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매장문화재가 다량 발견됐으며 발굴에 신중, 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문화재청의 발표 때문이었다.
문화재 때문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경주시민들에게는 ‘또 안 되겠구나’라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발굴한 결과를 거창하게 발표했지만 문화재위원들은 나머지 1만7580평에 대한 발굴허가 조차 보류했다.
그리고 발굴도 하지 않고 어떤 매장문화재가 있을 것이란 모호한 발표를 한다.
발굴팀은 1999년 12월까지 계속될 향후 발굴에 지금까지 발굴에서 확인 것 이외에 토기를 빗던 공방터와 토기원료를 공급하였던 채토장 등이 확인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그리고 신라의 사회생활사 복원에 귀중한 자료를 획득 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으로 경주경마장 사업은 사실상 끝이었다. 당초 정부가 발표한 1998년 상반기 경주경마장 완공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경남도청을 방문해 부산 및 경남지역에 시·도민이 공감하는 장소에 지방경마장 건설을 지시하면서 경주경마장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뒤늦게 경주사회는 들끓었다. 1999년부터 국회의원과 시장, 도의원, 시의원, 지역시민사회단체들은 일제히 ‘경주경마장 사수’를 기치로 일어섰다. 2000년에는 경주경마장건설사수추진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대정부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 같은 반발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문화재청이 이 일대를 사적지로 묶어 버린 것이다. 문화재청은 2001년 경마장 사업부지 96만5000㎡중 87%에 달하는 85만3000㎡를 사적430호로 지정고시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가지려다가 떼어내기 어려운 혹만 붙인 꼴이 됐다. 경주경마장 부지는 한국마사회에게는 애물덩어리가 됐고, 경제적 이익을 기대했던 경주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
정부가 경주경마장 건설을 발표한지 19년이 지났다. 발굴을 한다고 파헤쳐 놓은 땅은 비만 오면 흙탕물이 내려오다가 이제는 잡초만 무성하다. 217억원 가량을 투자했던 한국마사회는 더 투자가치가 없어 방치하고, 경주시는 시 소유가 아니라고 내버려두었다.
경주경마장 사업은 국책사업에 대한 허구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정치적인 입김이든, 매장문화재 보존 명분이든, 개인적인 정치적 활동 명분이든 간에 분명 경주시민들에게 큰 실망을 준 것은 사실이다.
욕심에 치우쳐 미래를 보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경주경마장이 백지화 된 이후다. 당시 앞 다투어 목소리를 높였던 이들은 지난 14년 동안 말 한마디 없었다.
성공한 사업은 자신의 공이요, 실패한 사업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발을 빼는 것이 현재 경주사회의 분위기다. 이제서야 방치된 경주경마장 부지에 대한 책임을 논한다는 것은 다소 어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주경마장 부지는 엄연히 경주에 있다.
그것도 남 보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황폐화된 채 경주관광의 중심지역인 보문관광단지와 바로 인접해 있다.
현재 경주에는 경주경마장 부지만큼 요지이자, 넓은 면적을 찾기가 어렵다. 한국마사회 땅이라서, 사적지라서 마냥 손 놓고 그냥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땅이다.
이제라도 정부에 경주경마장 사업 무산에 대한 피해를 조목조목 따지고, 부지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1992년 경제성, 접근성, 유발효과 등을 기준으로 한 입지선정을 위한 용역결과 경주가 지방경마장 건설의 최적지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경마장 부지 입지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해 연말 경주는 뜻밖에 응원군을 얻게 된다. 제14대 대통령 선거가 임박했던 1992년 12월, 당시 민자당 김영삼(YS) 대통령 후보는 경주역 광장 유세에서 경주시민들에게 아주 달콤한 말을 내뱉었다. “경주에 경마장을 만들겠습니다”
어쨌든 YS집권 때인 1994년 3월 18일, 정부는 경마장을 신청한 경주와 부산 등 지자체 중에 ‘경주시 손곡면 물천리 일대 29만4000여평(96만5000㎡)에 1998년 상반기 개장을 목표로 지방경마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경주경마장 사업에 대해 지역 내에서도 찬반여론이 일었다. 찬성 측은 연간 400억원의 세수를 기대할 수 있다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하며 반색했다.
반대 측은 사행성이 짙은 경마장이 들어서면 가정이 파탄 나고 지역서민경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주경마장에 대한 견해 차이는 당시 그렇게 지역사회에 공존했다. 그러나 정부의 경주경마장 부지 발표는 찬성론자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쪽으로 흘렀다.
1995년 9월부터 한국마사회 측의 부지매입이 진행되고 1996년부터 매장문화재 발굴이 본격화되면서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경주경마장 부지에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매장문화재가 다량 발견됐으며 발굴에 신중, 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문화재청의 발표 때문이었다.
문화재 때문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경주시민들에게는 ‘또 안 되겠구나’라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발굴한 결과를 거창하게 발표했지만 문화재위원들은 나머지 1만7580평에 대한 발굴허가 조차 보류했다.
그리고 발굴도 하지 않고 어떤 매장문화재가 있을 것이란 모호한 발표를 한다.
발굴팀은 1999년 12월까지 계속될 향후 발굴에 지금까지 발굴에서 확인 것 이외에 토기를 빗던 공방터와 토기원료를 공급하였던 채토장 등이 확인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그리고 신라의 사회생활사 복원에 귀중한 자료를 획득 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으로 경주경마장 사업은 사실상 끝이었다. 당초 정부가 발표한 1998년 상반기 경주경마장 완공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경남도청을 방문해 부산 및 경남지역에 시·도민이 공감하는 장소에 지방경마장 건설을 지시하면서 경주경마장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뒤늦게 경주사회는 들끓었다. 1999년부터 국회의원과 시장, 도의원, 시의원, 지역시민사회단체들은 일제히 ‘경주경마장 사수’를 기치로 일어섰다. 2000년에는 경주경마장건설사수추진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대정부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 같은 반발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문화재청이 이 일대를 사적지로 묶어 버린 것이다. 문화재청은 2001년 경마장 사업부지 96만5000㎡중 87%에 달하는 85만3000㎡를 사적430호로 지정고시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가지려다가 떼어내기 어려운 혹만 붙인 꼴이 됐다. 경주경마장 부지는 한국마사회에게는 애물덩어리가 됐고, 경제적 이익을 기대했던 경주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
정부가 경주경마장 건설을 발표한지 19년이 지났다. 발굴을 한다고 파헤쳐 놓은 땅은 비만 오면 흙탕물이 내려오다가 이제는 잡초만 무성하다. 217억원 가량을 투자했던 한국마사회는 더 투자가치가 없어 방치하고, 경주시는 시 소유가 아니라고 내버려두었다.
경주경마장 사업은 국책사업에 대한 허구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정치적인 입김이든, 매장문화재 보존 명분이든, 개인적인 정치적 활동 명분이든 간에 분명 경주시민들에게 큰 실망을 준 것은 사실이다.
욕심에 치우쳐 미래를 보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경주경마장이 백지화 된 이후다. 당시 앞 다투어 목소리를 높였던 이들은 지난 14년 동안 말 한마디 없었다.
성공한 사업은 자신의 공이요, 실패한 사업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발을 빼는 것이 현재 경주사회의 분위기다. 이제서야 방치된 경주경마장 부지에 대한 책임을 논한다는 것은 다소 어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주경마장 부지는 엄연히 경주에 있다.
그것도 남 보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황폐화된 채 경주관광의 중심지역인 보문관광단지와 바로 인접해 있다.
현재 경주에는 경주경마장 부지만큼 요지이자, 넓은 면적을 찾기가 어렵다. 한국마사회 땅이라서, 사적지라서 마냥 손 놓고 그냥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땅이다.
이제라도 정부에 경주경마장 사업 무산에 대한 피해를 조목조목 따지고, 부지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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