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과 림프액

경주신문 기자 / 2016년 04월 21일
공유 / URL복사
우리 몸을 순환하는 가장 대표적인 액체는 물론 혈액이다. 몸 한가운데 있는 끝없이 펌프질하는 심장의 압력을 받으며 힘차게 전진하는 동맥과, 반대로 심장으로 돌아서 천천히 유유히 흘러 들어가는 정맥, 그리고 이들을 서로 이어주는 지구 둘래 길이라는 4만 킬로미터를 자랑하는 모세혈관들. 이렇게 구성된 것을 혈관이라고 하고 그 속을 채우는 것이 혈액이다.

그런데 우리 몸에는 혈액 말고도 순환하는 다른 액체가 있는데, 림프액이다. 혈액과 림프액의 가장 크고 확실한 차이점은 바로 색깔인데, 혈액이 빨간색인데 비해 림프액은 투명하고 담황색을 띠는 액체다.

혈액이 빨간 이유는 적혈구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림프액이 붉지 않은 이유도 비슷하다. 혈액에서 적혈구를 빼면 노란 혈장 성분만 남게 되는데, 림프액이 담황색을 띠는 이유도 림프액은 혈장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을 정도니 혈액에서 붉은 적혈구가 빠지면 그것이 바로 림프액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척추동물 혈액의 혈장은 일부가 모세혈관벽에서 조직 속으로 침출하여 조직액을 형성하고 그 일부는 다시 모세혈관벽을 통해 혈액 속으로 되돌아가지만 나머지는 혈관과는 별도인 모세 림프관 속으로 들어가 림프액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림프액이다. 림프액의 기능이라면 소화관에서 영양성분을 운반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또 정맥에 합쳐져 혈액 내로 림프구를 공급하여 면역작용에도 관여한다.

신라 초기 아직 불교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이다. 불교라는 세계적인 종교가 신라땅에는 없었으니 그 당시 신라인들의 종교는 구체화된 경전이나 형식이 없는 토속신앙에 의지한 상태였다. 불교라는 선진문화가 신라로 들어오면 틀림없이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것을 염려해 반대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26살의 하급관리 이차돈은 불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기로 결심한다.

당시 신라의 왕 법흥왕은 이차돈을 참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에 그는 순교한다. 그런데, 이차돈의 목을 칼로 내리치는 순간 붉은 피가 나오지 않고, 맑은 흰색의 피가 솟구쳤다고 한다. 이를 바라보는 주위의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이에 법흥왕이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신라는 중앙집권적 국가의 기틀을 다져 훗날 삼국을 통일하는 대업도 완성하게 되었다.

이차돈의 목에서 나왔다는 그 흰 피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참수당하기 전 오랜 옥살이로 제대로 된 끼니도 먹지 못했을테니 아마 빈혈 증상이라도 온 걸까? 그렇지만 아무리 빈혈이라 해도 혈액이 하얗게 될 수는 없다. 혈액에서 적혈구는 45%나 차지하는 가장 많은 성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혈액이 아닌 림프액이었을 것이다. 이차돈의 목을 쳤을때, 목안에 있는 머리의 혈류량을 공급해 주는 거대한 동맥인 내경동맥은 건드리지 않고 그 옆에 있는 깊은목림프관을 먼저 터뜨려 안에 있는 림프액이 먼저 터져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붉은 피를 예상했던 주위의 사람들은 담황색 림프액을 보고 놀라 흰 피가 나왔다고 착각하게 되었고 이를 그대로 기록해 오늘날까지 전해온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불국사, 석굴암, 황룡사, 기림사 등 오늘날의 신라문화에 불교를 뺀 모습은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불교는 신라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만약 이차돈의 목에서 림프액이 아닌 평범한 혈액이 나왔다면, 혹은 당신 신라인들이 림프액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면 그래서 특별한 기억없이 넘어갔다면, 우리 현재 경주의 모습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김민섭 시민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X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