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위에서 양반다리 하기

경주신문 기자 / 2019년 06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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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불교문화대학
서성대는 아들 녀석 보고 편하게 있으라고 했더니 의자 위에서 양반다리를 한다. 순간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아빠가 하는 걸 일부러 흉내 내나 싶어서 그게 편하냐고 물어보니 녀석은 대답 대신 씨~익 웃는다. 아주 만족하고 있다는 표정이다.

아마 집집마다 상황은 비슷할 거다. 텔레비전을 봐도 그렇다. 곱창을 좋아한다는 어느 가수는 밥을 먹을 때도 조그만 상 앞에서 양반다리로 먹는다. 뒤에 식탁이 보이는 데도 그런다. 아, TV를 보면서 식사를 하려니 어쩔 수 없었나? 아닐 거다. 양반다리가 더 편해서일 거다.

다리가 엄청 긴 여자 모델도 긴 다리를 접어가며 거실에 앉아 있다. 비싸 보이는 가죽소파는 그저 기대는 용도다. 낯설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이 모습은 우리나라 사람은 양반다리가, 다시 말해 좌식(坐式) 문화가 얼마나 익숙한지를 증명한다.

세상은 변했다. 어느덧 ‘침대는 과학(?)’이라는 주장이 일반화되고 집집이 침대가 있어 좌식 문화가 입식으로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입식형 부엌이 보편화되었고 식당은 물론이고 절 법당에도 연세 많은 어르신들 무릎 아프다고 방석 말고 걸상을 구비해 놓은 데가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편하게 앉으라면 누구나 슬그머니 소파에서 내려와 양반다리를 한다. 아마도 우리 몸에 양반다리 유전자가 있는 게 틀림없다. 하기사 일본 사람들은 또 잘만 꿇어앉는 걸 보면 문화적인 성향도 있을 테다.

양반다리로 오래 앉아 있으면 아무래도 고관절에 무리가 간다. 허리에도 좋지 않다. 허리에 과다한 힘이 주어지니 요통이나 척추 추간판이 파열되어 디스크(추간판 탈출증) 위험도 있다. 오랫동안 양반다리를 하다 보면 정상적인 척추 배열이 비정상적인 일자 형태로 변형되어 척추관 협착증 등이 올 수도 있다. 이래도 예의 바르고 매너 있는 자세라고 양반다리를 고수해야만 할까?

흔히 요가나 참선(參禪)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양반다리다. 부처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의 모습을 보면 양반다리를 하고 있다. 가부좌(跏趺坐)라고 한다. 석굴암의 본존불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오른쪽 발을 왼쪽 허벅다리 위에 놓고 왼쪽 발을 오른쪽 허벅다리 위에 놓고 앉아 있는 부처는, 소위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 있다. 그럼 여기서 부처는 허리나 엉덩이 관절에 무리가 가는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편하기야 가부좌보다는 반(半)가부좌가 편하다. 다리를 쭈~욱 펴고 앉는 게 더 편하고, 어디 기대는 게 더 편하며, 아예 눕는 게 제일 편하다. 육체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가부좌를 하면 몸은 힘들지라도 정신적으로는 아주 안정된 자세임을 바로 느낄 수 있다. 그저 허리를 곧추 세우고 가부좌를 한 것만으로도 생각이 차분해지고 산만했던 마음이 어느 한 지점으로 모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건 왜 이럴까?

가령, 내일 중요한 시험이 있고 지금은 저녁 11시다. 정리하고 외워야 할 건 산더미인데 아뿔싸, 슬슬 배가 고파온다. 까만 뿔과 함께 꼬리가 달린, 악마처럼 생긴 놈이 내 오른쪽 귀에다 대고 유혹한다. “라면 한 그릇 먹고 해, 배고프면 넌 집중 못 하잖아” 3초도 안 있어 왼쪽 귀에 하얀 날개와 하늘거리는 옷을 입은 천사가 나타나 이런다. “아니야, 저 악마의 소리 듣지 마, 넌 배 안 고파.”

유혹과 이성에 정신 못 차리는 이때, 내가 슬그머니 결가부좌를 한다면 이 자세는 분명 이 모든 사태를 마치 관조(觀照)하겠다는 느낌이다. 팔짱이라도 끼면 더욱 그럴듯하다.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유혹’과 이에 맞서는 ‘이성’의 그 끝없는 싸움을 마치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 있는, 아무런 의도나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그 자세가 양반다리고 결가부좌다. 보리수 아래에서 마군(魔軍)을 물리치고 드디어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앉은 모습, 바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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