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넣기, 장난 아니네!

경주신문 기자 / 2019년 0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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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우
예술상생 대표
요즘 TV는 과잉자막으로 눈이 아프다. 자막은 원래 영상의 표현력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이라 과거에 자막을 많이 쓰는 건 영상의 불완전함을 자인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자막이 시청자의 이해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비난도 받지만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오페라를 관람하는 건 한편의 외화를 보는 것과 같다. 성악가들이 외국어로 노래를 부르니 관객이 무슨 내용인지 알려면 자막이 필요하다. 오페라에 자막이 없다면 외화를 더빙이나 자막 없이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나라 오페라극장에 한글자막기가 도입된 건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라고 하니 그전에는 어떻게 오페라를 감상했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오페라 가사를 우리말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오페라를 우리말로 부르는 것은 성우가 외화를 더빙하는 것과 얼추 비슷하다. 외국배우의 입술에 감쪽같이 우리말을 채워 넣는 성우들의 신공(神功)이 놀랍지만, 그래도 100% 똑같지는 않으니 어색한 건 사실이다. 우리말 번역 오페라에도 이런 어색함이 있다. 자막 없이 감상할 수 있어 좋지만 원곡처럼 부드럽게 넘어가지 못한다.

한때 독일도 우리처럼 이탈리아 오페라를 독일어로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오페라에도 일가견이 있던 카라얀이 이탈리아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부르게 했다. 우리나라도 해외 유학 후 귀국한 성악가들의 주장이 힘을 얻어 외국 오페라는 해당 외국어로 부르게 된 것이다. 한글자막기를 도입할 때까지는 외국어 대본에 한글 번역을 한 책자를 제공했다고 한다. 무대와 책자를 번갈아보며 매우 불편하게 오페라를 감상한 것이다.

요즘 오페라극장에는 무대 좌우와 중앙에 자막용 대형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어 오페라 감상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래도 자막 보랴 무대 보랴 목이 아픈 건 여전하다. 그래서 세종문화회관이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는 바로 앞좌석에 조그만 자막기가 설치되어 있다. 자막기도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아직까진 오페라에 대한 자막제공이 관객들의 감상을 돕는 유일한 방법인 듯하다. 따라서 번역이 중요하다.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팍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명한 아리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를 ‘아무도 잠들지 마라’로 직역하는 것보다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의역하는 것이 훨씬 더 부드럽다. 좋은 번역은 관객에게 큰 기쁨이다.

번역뿐 아니라 자막을 넘기는 행위도 전문적인 영역이다. 방송에서 외화PD의 역량은 자막을 넣고 빼는 타이밍만 보고도 판단할 수 있다. 자막 한 줄 한 줄이 관객들의 긴장감을 유발할 수도 있고, 김을 새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항상 라이브로 진행하는 오페라에서는 오죽하랴! 공연 내내 긴장하면서 자막을 넣고 빼야한다. 타이밍 좋은 자막은 결국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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