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경주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1.국내 젠트리피케이션 사례와 지자체의 대응(서울 홍대입구, 한남동, 부산 감천마을)

긍정과 부정적 측면이 교차하는 ‘젠트리피케이션’

이필혁 기자 / 2019년 11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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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는 지난해 국토교통부 주관 ‘2018년도 도시재생 뉴딜사업’ 공모에 선정돼 도시재생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향후 5년간 국비 150억 원을 포함, 총 25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한 경주시는 원도심 지역 도시재생에 첫발을 내딛는 한편 올해는 새로운 도시재생 사업 신청을 통해 사업비를 확보해 도시재생 사업을 이어갈 방침이다. 하지만 도시재생이 선정되자 재생사업이 시행되는 원도심 일대에 벌써부터 집 값과 임대료 상승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또다른 ‘황리단길’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 취재를 통해 경주의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의 현황을 살펴보고 다른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 사례와 극복방안 등을 보도한다. <편집자 주>

젠트리피케이션은 1964년 영국의 지라학자인 Ruth Glsaa가 최초로 제시한 것으로 ‘젠트리(Gentry)’라는 영국에서의 사회적 신문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됐다. 1960년 이후 영국과 북미 지역에서 도시변화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되면서 정치적·정책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이와 관련된 이론적·경험적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건물주가 임차인을 변경해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행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경제활동이라고 보는 긍정적 측면과 해당지역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인해 기존 임차인이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떠날 수 밖에 없는 부정적 곡면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두가지 측면 가운데 젠트리피케이션은 두 번째인 부정적 측면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기존 거주지가 상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대명사 ‘경리단길’

경리단길의 정식 도로명은 ‘회나무로’로 그 일대는 용산 미군기자와 남산으로 둘러싸여 고립된 지역이다. 반면 터널과 지하철로 연결이 용이하고 이태원과 인접해 있다. 경리단길은 1957년 창설된 육군중앙경리단이 길 이북에 위치해 있어 경리단길로 불렸다. 인근 이촌과 이태원 등 지역에 비해 경리단길은 주거지가 저렴하고 장년층과 노년층의 거주가 많은 거리였다.

2011년 이후 서울의 상권이 확장되면서 여러 특색 있는 음식점과 카페들이 하나 둘 경리단길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상권이 점차 발전하면서 인근의 도로변에 카페와 옷가게, 음식점 등이 점차 증가하며서 임대료도 점차 상승하기 시작했다. 2013년 경리단길 임대료가 약 50% 정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경리단길 상가 임대료는 상권의 변화와 더불어 2012년 이후 크게 상승했다. 경리단길 임대료는 최대 600%까지 상승하게 된다. 이처럼 급격한 임대료 상승은 뜨는 동네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2010년대 초반 사람들이 북쩍이던 동네에서 어느 샌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빈점포가 늘어나는 동네로 변하고 있었다. 경리단길 초입에 1~2억을 호가하던 권리금은 이제 ‘무권리’의 빈점포로 나와있는 상황으로 변했다.

#문화의 거리 ‘홍대’
홍대거리는 1990년대 특색 있는 카페와 클럽을 중심으로 인디문화가 형성되는 등 자생적 예술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미술과 예술, 클럽 문화 등 다양한 문화가 복합적으로 자리메김한 곳이다.

지자체는 홍대지역 클럽문화를 관광 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정책과 물리적 환경개선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땅 가격과 임대료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규모 상업자본이 유입되었고 홍대만이 가진 예술가와 문화 활동가들의 특유한 문화가 상실되고 그 장소성과 정체성이 점차 잃어갔다.

기존 예술가와 상인들은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인근 지역으로 이주하고 홍대 앞 지역 대부분의 인구가 감소했다. 반면 홍대 상업지역 인접한 망원동과 연남동은 인구가 증가했다. 홍대 상인들이 이주한 연남동 역시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연쇄 현상을 일으켰다.

↑↑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전경.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 사례

젠트리피케이션을 이야기할 때 가장 대표적인 곳이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이다. 이곳은 2010년 한남동 위치한 카페 미술관으로 영화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이 찾은 핫 플레이스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대형 프렌차이즈 입점 문제가 불거졌고, 2012년 건물주인 유명 가수가 대기업 프렌차이즈 입점 위해 건물에서 퇴거 통보하면서 분쟁 시작됐다. 결국 소송으로 2016년 폐점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한 지자체의 정책
이처험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사회적 문제도 발전하자 지자체들이 이에대한 방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홍대지역에서는 2016년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 기본계획을 수립해 젠트리피케이션을 줄이기 위한 건물주, 상가 임차인, 마포구 간 상생협력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대책에는 건물주와 임차인, 마포구가 부동산 중개업소 자정결의 대회, 도시계획 재생 등 도시관리계획 수립 시 임차인 보호 방안 마련, 지구단위계획을 통한 공공임 대 운영 방안,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부서 TF 팀 운영,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위한 조례 제정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자체의 보호만으로 홍대를 지키기엔 역부족이었다.

↑↑ 관광객이 몰리면서 땅 가격과 임대료가 상승한 부산 감천마을. 주민은 떠나고 그 자리를 상인들이 메우고 있다.

#급격한 상업화로 떠나야만 했던 주민 ‘부산 감천문화마을’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는 비단 수도권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람이 몰리면 돈이 몰리고, 자연스럽게 임대료가 상승하고 기존 상인과 주민과의 갈등으로 누구는 떠나고 누구는 남는 현상이 반복된다.

감천마을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이곳은 1950년대 6.25피난민 집단거주지로 형성된 곳으로 산자락을 따라 집이들 빽빽이 들어선 마을이다. 계단식 집단 주거 형태와 모든 길이 통하는 미로식 골목길은 이곳만의 독특함이었다. 마을미술 프로젝트 사업을 통한 도시재생사업으로 관광객이 급증해 연간 10만 명이 방문하는 부산의 명소로 자리 메김했다. 하지만 감천마을에 관광객이 증가하자 상업화로 인한 부작용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2015년에만 5개뿐이었던 상가가 55개로 10배 이상 증가했고 주택가격도 20% 이상, 방문객도 400배로 폭증했다.

감천문화마을 주민들은 “상업화로 원주민이 이용하는 시설이 사라졌다”면서 “주민을 위한 마을재생이 아닌 상인을 위한 재생사업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과 세입자, 상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 공실로 남아있는 점포들.

#떠나는 주민 막기 위한 지자체

부산 사하구는 급격한 땅 가격과 임대료 상승으로 2017년 사하구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과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해 시행한다.

대규모 자본의 프랜차이즈 점포 불허, 경관을 대표하는 중점관리구역 건축물 높이 1츨 제한, 옥외광고물 점포당 1개 이내 제한 등의 내용과 주민의 협의를 강조한 통합운영위원회, 주민설명회, 공청회 등을 거쳤다. 이로써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최종안 심의, 의결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과 개발로 인한 원형 훼손 우려 제기 부산 감천문화마을 개발 가이드라인 확정했다.

이러한 지자체의 노력에도 감천마을 주민들은 하나둘 살던 곳을 떠났다. 주민들이 떠난 것은 비단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요인 때문은 아니다. 감천마을 입구 오래된 세탁소 주인은 많은 주민들이 적정한 보상이 따랐기에 떠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관광객이 몰리면서 많은 문제가 생겨났다. 하지만 주민이 떠난 큰 이유는 땅 가격이 오르면서 적정한 보상이 따랐기에 떠날 수 있었다”면서 “세입자 입장에서는 임대료가 올라가는 것이 문제일 수 있지만 주민 입장에서는 가격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은 좋은 현상이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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