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놓인 프린터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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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불교문화대학
코로나 정국이 지속되다 보니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가 발생한다. 마스크만 해도 그렇다. 감기라도 걸렸다면 모를까, 평소엔 잘 쓰지 않을뿐더러 운동을 할 때는 더더욱 써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마스크를 쓴 채 격한 운동을 해도 호흡이 그렇게 가뿐 것 같지가 않다. 기분 탓일까. 뿐만 아니다. 동승자 없이 혼자 운전을 하고 있어도 백미러에 비친 마스크 쓴 내 모습이 어색하지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소위 뉴 노멀(new normal), 사회·문화적으로 보편화된 새로운 표준이 정착된 것이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표준도 바뀌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2030년까지 향후 10년간 우리가 먹는 음식과 그 재료 생산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대표적 사례가 ‘수직(垂直) 농업’이다. 기존의 논이나 임야 없이 높은 빌딩에다 논과 밭을 수직으로 쌓는 생산 방식이다. 장점이 많다. 에어로포닉(aerophonic:분무 수경재배) 등 수경재배를 기본으로 하는 방식이라 전통적인 농업보다 물 사용량을 최대 90%까지 줄일 수 있다. 물이 부족한 지구 상황에서는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가장 큰 규모의 수직 농장은 미국의 플렌티 주식회사(Plenty Inc.)다. 이 농장에는 약 600m 높이의 타워에서 자라는 식물들 주변으로 수 만대의 카메라와 센서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또한 축적된 빅데이터 및 머신러닝으로 최적화된 환경에서 이전보다 규모는 40배나 커졌으며, 동일한 양의 물로 옥외 전통 농지보다 약 350배 더 많은 작물을 기르고 있다.

역시 미국에 위치한 에어로팜스(Aerofarms)에서는 햇빛과 토양도 없이 900톤의 녹색채소를 재배한다고 한다. 그 비밀은 인공지능 제어 LED조명과 영양분을 식물의 뿌리에 직접 뿌려서 공급하는 에러로포닉 방식에 있다. 수직 농업에서 비용의 50~80%를 차지하는 인건비도 자율로봇공학으로 해결할 예정이란다. 가슴 뛰는 동시에 가슴 철렁할 미래이기도 하다.

통상 식자재는 토양에서 분리된 시간이 길면 길수록 영양가는 떨어진다. 자료에 따르면 식자재가 음식이 되어 소비자의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 평균 45%의 영양소가 손실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수직 농업은 시간과 운송 손실(loss)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충분히 새로운 기준이 될 만하다.

말이 나온 김에 식품 3D 프린팅 이야기도 해보자. 이스라엘의 리디파인 미트(Redefine Meat)는 지방, 물, 세 가지 식물성 단백질로 ‘소고기 아닌’ 소고기를 생산하고 있다. ‘(소)고기의 개념을 새롭게 쓴다’는 사명(社名)이 사뭇 비장하다. 육류 섬유 매트릭스라고 하여 실제 육류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그 질감과 풍미를 모방 중이란다. 아직 기술적으로 보완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그렇다고 연구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소가 먹어 치우는 엄청난 양의 사료와 물도 문제지만,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와 배설물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세포 배양 기술을 통해 연구실에서 고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기존 축산업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이런 과정이 동물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고 말이다.

그뿐만 아니다. 집집이 책상 위에 놓인 프린트의 카트리지 격인 파우더(가루)화한 식재료는 자그마치 30년 이상 장기 보존이 가능하다. 어차피 식재료를 가루 형태로 보관한다면, 영화 《설국열차》에서 보듯 징그러운 생김새에 비해 영양가 만점의 곤충도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도 곤충을 미래의 식량난 해결 대안으로 꼽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음식 3D 프린터는 미래 먹거리의 새로운 표준이 될 만하다.

바닷속 생선도 마찬가지다. 기후 변화로 해양 자원은 빠르게 줄고 있고, 미세 플라스틱 등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해양 오염을 해결하고자 ‘배양’ 생선 기술이 떠오르고 있다.

가까운 미래 어느 저녁 시간, 식탁 위에 놓인 프린터 주변에 가족들이 모여, 대안길 홍*식당 눈꽃갈비에 입가심으로 랑*뜨레 빙설이 ‘출력’되기를 기다리는, 맛있는 상상을 해본다.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표준이 두렵지만 동시에 기대가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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