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질’을 확 뜯어 고쳐 보면

경주신문 기자 / 2020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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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임관
경주학연구원장
털, 눈, 코, 귀 볼, 입, 턱, 목, 젖[乳], 살, 팔, 손, 배, 등, 발 등은 우리 몸의 한 부분을 일컫는 말이다. 몸을 벗어나면 땅, 뫼[山,] 흙, 논, 밭, 벌[野], 들, 터[址], 내[川], 걸[川], 골[洞], 돌, 삽, 일[事], 벼, 해, 별, 달, 비, 눈[雪,] 물, 낮, 밤, 해[年], 집, 쌀, 밀, 콩, 밥, 똥, 옷, 멋, 맘[心], 칼, 풀, 뱀, 소, 말, 개, 닭, 새, 나, 너, 꿈, 돈, 질[路], 길 등등의 말이 있다. 이들 단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자말이 아닌 순 우리말이자 1글자로 된 단어이다. 이는 가장 으뜸으로 치는 몸의 일부분 이름이기도 하거니와 사람이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중요한 것들에 대한 단어이다. 연구자에 의하면 한반도에 터전을 마련한 우리 선조들이 혈통이나 문자, 언어가 하나로 통합되어 민족화된 기준을 신라의 삼국통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 우리 경주말에는 신라어가 상당히 녹아 있는 셈이다. 경주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단어의 함축적 줄임말이며,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우리말이 1자로 구성된 뿌리가 여기에 있다. 두 마디는 벌써 늦다는 개념인 것이다.

우리 문화에 빨리빨리 문화가 있다. 산림청 기준에 따르면 한반도는 64%가 산악지대로 산과 산 사이에 벌이나 골, 들, 내[川]가 만들어 지고 우리는 거기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왔다. 숙명적으로 해뜨는 시각은 늦고 빨리 지기에 일을 할 수 있는 활동시간이 짧다. 그래서 빨리빨리 해야만 먹고 살 수 있었기에 행동은 물론 말에까지 영향을 미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단어는 1자로 만들었으리라 믿고 있다. 그 가운데 ‘길’이라는 단어는 땅위의 평면적인 길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희망하고 꿈꾸는 이상향, 즉 목표지향의 과정을 뜻하기도 한다. 경주에서는 ‘질’이라고 흔히 말했다. 우리 지역만의 이 특징은 기역(ㄱ)이 지읒(ㅈ)과 통하여 음절 내에서 구개음화(수의적 구개음화)가 이루어져서 그렇다. 아직도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은 질(길), 지름(기름), 질들이다(길들이다), 지림사(기림사)라 하니 바로 그것이다.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에는 김알지에 대한 천손강림(天孫降臨) 설화가 실려 있다.

“호공이 밤에 서쪽마을을 지나다 시림(계림) 속에서 커다란 빛이 밝게 빛나는 것을 보고 가보니 나뭇가지에는 황금 상자가 걸려 있고 빛이 상자 속에서 나오고 그 밑에 흰닭이 울고 있어서 석탈해 왕에게 알리니 왕이 친히 가서 상자를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곧장 일어났다. 그 아이를 알지라고 이름 붙였는데 알지는 우리(신라;경주)말로 어린아이[小兒]를 뜻한다”는 것이 간추린 이야기다.

여기서 ‘알지’는 ‘ㅈ’ 앞에서 ‘ㄹ’ 탈락현상이 일어나 ‘아지’가 되고 다시 구개음화로 ‘아기’가 되었다. 이러한 예는 아직도 동물에 남아 있으니 송아지, 망아지, 강아지 등이다.

경주에는 길, 곧 질에 대한 이름이 특색있게 붙여져 있다. 역사성과 그 지역의 특징을 살려 붙였다. 정부에서도 2011년 골목길까지 확대한 도로명 주소 고시이후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큰 도로의 경우 예전에는 주로 끝지역 양쪽 도시 이름 한자씩을 따서 지었으니 경부고속도로(서울-부산)가 대표적이며, 경주의 대경로(대구-경주), 경감로(경주-감포)도 그 예다. 이밖에도 지역 명소의 특성에 맞추어 도로명을 붙였으나 오늘에 와서는 의미가 확 다가오지 않는다. 경감로는 문무대왕로가 적절하고 팔우정로타리에서 광명 삼거리 구간의 태종로 가운데 서천교에서부터 광명까지는 법흥왕로로 바꾸면 어떠할까.

또 서천교에서 무열왕릉 가는 대경로를 태종로로 변경하면 좋을 듯하다. 서천 동편 길인 강변로는 형산대로를 제안하고 금장교 네거리에서 현곡 용담정으로 가는 길은 동학대로 혹은 최제우로, 배반네거리에서 용강네거리 구간의 산업로는 황룡(사)로 혹은 백률(사)로 또는 이차돈로가 어떠할까. 이밖에도 시내의 북성로는 읍성북로, 동문로는 읍성동로 또는 향일문로, 북문로는 읍성북로로 바꾸고 중앙로는 도로폭이나 의미가 옅어진 만큼 천마총로 또는 황남대총로로 변경하면 좋을 듯싶다. 경주 전체의 큰 길을 두고 샅샅이 뒤지면 바꾸어 더 좋을 만한 길이 여럿 있을 것이다.

경주시는 지난해 12월 도로명주소위원회를 열고 황성공원 일대의 용담로를 황성공원로로 변경하기로 결정한바 있다. 또 지난달 양북면 명칭변경추진위원회가 주민의견을 물어 88.3%의 변경 찬성에 새 이름으로 문무대왕면으로 하는데 76.5%의 지지를 얻어 이달 들어 전문위원 자문회의에서 최종 결정하였다. 시는 경북도에 보고하고, 명칭 변경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여 양북면을 문무대왕면으로 바꾸는 일만 남겨두고 있다. 이처럼 현재의 실정에 맞는 이름의 변경을 길에 두고 시도한다면 바꾼 뒤 도로명을 따라 다니는 시민이나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 그 길의 어느 지역에 해당 도로명과 관계된 유적이 있거나 역사성을 인식하게 되어 홍보의 효과가 클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참 중요한 ‘길’, 이참에 경주의 ‘질’을 확 뜯어 고쳐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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