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다, 걸려버렸다

경주신문 기자 / 2021년 0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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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마스크를 안 썼다는 이유로 2살짜리 꼬마가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했다. 미국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지난 9월에도 기내에서 음식을 먹으려고 마스크를 내린 유아와 엄마가 비행기에서 내릴 것을 요구받기도 했다.

백신이 하나둘 등장하자 상황이 달라질 거라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 백신의 안정성과 부작용 등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그마저도 없는 우리는 마스크 한 장에 의존해야 할 처량한 신세다. 딱 지금 우리의 심정을 대변하는 책이 있어 소개한다. 김지호가 쓴 《코로나에 걸려버렸다》이다.

‘걸려버렸다’는 뉘앙스에서도 알 수 있듯 코로나는 숙주를 선택하지 않는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양성 판정을 받고는 ‘죄책감 비슷’한 걸 느껴야 했다는 저자도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책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날로부터 50일간의 격리 입원 생활과 회복 후 일상으로의 복귀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이렇다.

할머니 장례식엘 찾아와 함께해준 친구들에게 고마워 식사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걸려온 한통의 전화. “미안한데, 나 코로나 양성인 것 같아. 너도 밀접 접촉자로 분류될 것 같아. 보건소나 병원엘 가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어”

전화기 너머의 친구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어이가 없다. 억울한 기분마저 든다.
구급차가 멈춰 선 곳은 국립중앙의료원. 이름 석 자가 00번 확진자로 바뀌는 순간이다. 비닐로 된 간이 방호복을 입고 발에는 하얀 발싸개, 얼굴엔 마스크, 손에는 라텍스 장갑을 꼈다. 뒤에는 방역 담당자인지 내 뒤를 따라다니며 꼼꼼하게 소독액을 뿌린다.

도착한 병실은 1인실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창문과 연결된 커다랗고 시끄러운 음압기다. 창문에는 못이 굳게 박혀 있다. 완치 전에는 절대 나갈 수 없다는 의미일까, 바이러스도 확진자도. 병실에는 냉장고, 환자용 침대, 혈압 측정기, 옷장과 서랍 정도가 갖춰져 있다.

격리된 병실에서 문자를 돌린다. 가족들과 회사에 처한 상황을 알린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빗발친다. 가족들은 식사와 접촉이 빈번했으니 우선 자가 격리 대상자다. 죄책감이 밀려온다. 자꾸 안 좋은 생각마저 든다. 지금은 빨리 관할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우선이다. 가족들의 연락처를 알려줬으니 역학 조사관 연락이 곧 갈 거다. 당혹스럽고 죄송한 마음이다.

다음은 회사. 확진 판정이 나기 전부터 재택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회사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지만 죄책감은 여전하다. 죄인은 아닌데 죄인이 되어버렸다. 가족에게 전염병을 옮기는 죄인, 지역사회에 누를 끼친 죄인이 되었다. 수화기 너머로 “어쩌냐?”, “조심하지 그랬어” 하지만 하나 같이 원망의 소리로 들린다.

CCTV가 달린 독방에 방호복 입은 간호사가 규칙적으로 혈압과 산소포화도, 체온을 측정해 간다. 열이 나면 아이스팩을 겨드랑이에 끼우라고 조언한다. 목에서 점점 가래가 끓어오른다. 목 안은 따끔거리며 온몸에 열이 오르면 침대에 닿는 부위마다 아프다.

생활은 단조롭다. 7시에 아침 식사, 12시에 점심 그리고 혈압과 혈중 산소포화도 및 체온 체크, 오후 5시에 또 혈압 등 측정한 후 5시 30분에 저녁 식사로 이어진다. 샤워시설이 없어 물에 적신 수건으로 온몸을 닦는다.

다른 병원에 격리되었던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고, 내일 또 음성이면 퇴원한다고. 목소리가 가볍게 떨리고 있다. 그다음 날, 다시 양성이란다. 너무 화가 난다며 안 하던 욕까지 한다. 병실은 덥고 답답하며, 음압기 소리에 잠을 못 자고, 집이 너무 그립단다. 불평이 끊이지 않는다. 희망이 코앞까지 왔다 한순간에 사라지니 그간 쌓였던 감정이 폭발한 모양이다.
드디어 격리 해제. 언제부터 출근할지 묻는 전화에 팀장 목소리는 차분했다.

“병원에서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회사 사람들이 코로나에 옮을까 봐 두려워하네요. 일단 재택근무를 3주 정도 연장하는 게 좋겠어요”

어, 이건 뭐지? 회사 내 임산부들, 어린애들이 있는 사람들 핑계가 이어진다. 복귀하면 휴가를 가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긴 고민 끝에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완치된 줄 알았는데 코로나는 아직! 이었다.

사람이 경험하는 강렬한 고통과 그만큼의 기쁨은 역시 사람에게서 시작되고 완성되는 모양이다. 웃는 얼굴로 지금 울고 있을 그 사람에게 속으로 말을 건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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