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보다 강렬한 펄벅의 경주 체험담
경주신문 기자 / 2021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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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민 오랜지원 천년순수홍삼 사장 |
1960년 가을, 한국을 찾은 펄 벅 선생은 우리나라 문화의 정수를 알고 싶다며 경주를 방문하게 된다. 기차를 타고 가던 선생의 눈에 마른 가지에 몇 개씩 걸린 빨간 과일들이 들어온다. 그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동행한 통역사가 ‘감’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따지 않고 두었냐고 다시 물었다. 통역사가 다시 한국에는 ‘까치밥’이라고 해서 과일을 일부러 남겨 새들의 먹이로 준다고 대답해 주었다. 선생이 놀라며 감탄해마지 않았다. 심지어 ‘굳이 경주에 가지 않아도 한국을 찾아온 보람이 크다’며 한국인들의 심성에 감동해마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의 감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주에서 여러 유적지를 다니던 중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나는데 해질 무렵 지게에 짐을 가득 지고 가는 농부를 만나게 된다. 농부 옆에는 소가 달구지를 끌고 가는데 그 달구지에도 짐이 가득 실렸다. 그것을 본 선생이 농부에게 다가가 왜 짐을 소에 싣지 않고 지고 가느냐고 물었다. 농부의 대답이 이랬다.
“에이! 어떻게 타고 갑니까? 저도 하루 종일 일했지만 소도 하루 종일 일했는데요. 그러니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
펄 벅 선생은 “내가 한국에서 가본 어느 유적지나 왕릉보다도 이 감동의 현장을 목격한 하나만으로도 한국에 오기를 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생은 “이 나라는 주변의 세 나라-중국, 소련, 일본-에는 잘 알려져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나 서구 사람들에겐 아시아에서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 한국은 보석 같은 나라다”라고 극찬했다. 뒤에 미국으로 돌아간 선생은 1963년 출간한 ‘살아있는 갈대’라는 소설에서 ‘내가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고 기술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까치밥이나 경주 농부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으나 선생에게는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서양의 농부라면 당연히 감을 마지막까지 다 땄을 것이고 누구나 당연하게 수레에 짐을 모두 싣고 자신도 올라타 편하게 집으로 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이 본 농부 이야기는 실상 필자에게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린 시절 소를 몰고 일 나가신 아버지께서 돌아오실 때는 아버지의 지게에는 온갖 짐이 지어져 있었지만 소는 그냥 맨몸으로 툴레툴레 걸어오곤 하던 풍경을 일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실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 시절 소를 가진 농부들은 대부분 그렇게 소를 아꼈고 경주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의 소도 그런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다만 대문호 펄 벅 선생에게는 그 장소가 경주였기에 경주가 더 강한 인상으로 남았을 것이고 그런 계기를 통해 경주와 경주사람들이 더 감동스럽게 묘사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경영 관련 용어로 ESG라는 단어가 도처에서 쓰인다. 기업 경영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를 해치지 않는 의사결정(Governance)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펄벅이 감동한 1960년대 경주의 모습은 어쩌면 오늘날 요구되는 가치를 훨씬 초월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람과 자연이 어떤 마음으로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세계에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모른 채 다만 먹고 살기에 바빠 이런 미덕을 미처 밖으로 나타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뿐, 이미 우리는 그런 정신 세상을 일상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으로 인해 우리나라 전통의 놀이, 우리 서민들이 향유한 저변의 문화는 물론 ‘깐부’라는 단어 하나의 위력까지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펄벅 선생이 전하고자 한 경주의 핵심가치가 격변하는 오늘날 어쩌면 놀라운 컨텐츠,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재사용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펄 벅 선생이 경주농부와 홍시에서 본 놀라움은 오징어게임 못지않았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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