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열 씨의 인생을 바꾼 영화 ‘투혼’

장 끌로드 반담의 화려한 액션 보며 무술의 길로 !

박근영 기자 / 2021년 1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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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끌로드 반담 주연 투혼 포스터.

남자의 세상, 특히 무술을 익힌 남자의 세상에서 무술영화는 엄청난 기폭제가 된다. 70년 초반 대흥행을 기록한 이소룡의 영화 이후 전국의 청소년들이 쌍절곤을 흔들며 무술에 매료되었고 성룡, 주윤발, 이연걸, 견자단 등이 태극권을 비롯한 쿵푸의 열풍을 이끌기도 했다.

이렇게 중국 무술을 중심으로 한 영화들이 대세를 이루는 중 중국이나 동양이 아닌 서양인이 주인공이 되어 무술 영화의 신기원을 이룩한 배우가 있으니 그가 장 끌로드 반담이다. 장 끌로드 반담은 ‘블록버스트’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코만도, 람보 등 대형 액션 영화들이 흥행하던 헐리우드에 전혀 새로운 무술형식의 액션영화로 새로운 흥행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러면서도 중국식 쿵푸와는 다른, 무에 타이나 킥복싱을 베이스로 한 무술로 인기를 끌었다.

↑↑ 3.1독립 선언문 릴레이 행사에 참여한 바 있는 김호열 씨.

경주 SNS세상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온 김호열 씨는 장 끌로드 반담의 출세작 ‘투혼(Bloodsport-1990)’을 인생영화로 꼽는데 잠시도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의 승부’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이 영화에 나오는 장 끌로드 반담의 특별한 발차기에 매료돼 바로 무술의 세계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뉴트 아놀드 감독의 무술 영화 투혼은 무술 사부를 위해 동양무술 대회인 쿠미데 격투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부대를 탈영해 홍콩으로 건너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군 당국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체포조를 보내지만 결국 그의 참가를 막지 못한다. 홍콩에서 의기투합한 잭슨(도날드 깁)과 쿠미데 대회에 참가하지만 준결승에서 잭슨이 이 영화의 빌런 격인 청리에게 패하면서 프랭크와 청리의 목숨을 건 대결이 이루어진다. 재미 있는 것은 이 영화에서 빌런 격으로 등장하는 청리는 중국판 헤라클레스라 불리던 양사가 열연한 캐릭터다. 청리는 5년 내리 쿠미데 대회에서 독보적인 우승을 거머쥔 잔인하고 무자비한 무술가로 프랭크에게도 인정사정 두지 않는 비겁하고 폭압적인 공격으로 프랭크가 시력을 잃는 난조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프랭크는 절체절명의 순간 무술의 오의를 깨달으며 극적으로 승리를 차지하는데 이 과정이 다소 상투적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인상적이다.

벨기에 출신의 액션 배우 장 끌로드 반담은 이 영화가 흥행하면서 그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B급 영화배우의 이미지를 벗고 본격적인 흥행배우로 발돋움하게 된다. 장 끌로드 반담은 기본적으로 가라데을 배워 검은 띠를 땄고 킥복싱 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뒤에 이에 대한 논란이 일며 킥복서로서의 이력에는 의문이 따라붙기도 했다. 다만 영화에서 보여준 화려한 발차기와 유연한 무술동작은 그때까지 복싱을 베이스로 액션을 구사하던 실베스트 스텔론이나 뻣뻣하게 서서 주먹만 휘두르던 아놀드 슈워 제네거, 큰 덩치로 손기술 위주의 애매한 액션을 구사하며 무술계의 욕을 먹던 스티븐 시걸 등에 비해서는 완전히 차별화된 무술로 관객들의 환호를 끌어냈다.

“이 영화를 본 후 무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합기도 도장에 등록하고 무술을 익혔습니다. 이때부터 제 인생은 무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지요”

김호열 씨는 합기도에서 공식적으로 일단을 따고 운동을 하면서 친구들로부터 ‘반담’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장 끌로드 반담의 열혈한 팬이 됐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태극권을 배운 선배 한 분과 무술동아리 ‘태극권’을 만들어 이후 무술지도와 감독, 동아리 회장을 겸하기도 했다. 동아리 회장이 된 후에는 왕성환 활동력을 바탕으로 총동아리연합회 회장과  총대위의원회 의장을 지내며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무렵 작은 체격에도 뛰어난 무술실력과 호방한 성격, 거침없는 술 마시기 등으로 인해 동료 선후배 학생들로부터 ‘호열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그게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별명이 됐다.

“아직도 대학시절 무술동아리 회장으로 무대에 오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무술 동아리 회장답게 무대 위에서 붕붕 날고 일자로 다리를 찢던 당시의 모습이 뚜렷이 기억나거든요”

그렇게 좋아하던 장끌로드 반담은 이제는 환갑이 넘은 노인이 됐고 김호열 씨도 치기 어린 청년에서 40 중반의 노련한 중년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청년의 모습으로 언제 어디에서나 분명하게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고 전체 농협중앙회 카페와 벤드, 페이스북의 공식 대표로 왕성한 SNS활동을 영위하고 있다. 장 끌로드 반담의 영화 ‘투혼’에서 드러났던 진정한 투혼이 김호열 씨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셈이다. 호열 장군의 성격에 딱 어울리는 호쾌한 인생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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