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산점 제도, 다시 생각해보자

경주신문 기자 / 2022년 0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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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평 변호사
공익법인 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얼마 전 비극적인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낡은 기종인 F-5E 전투기를 몰던 심정민 대위가 비행기의 추락으로 숨졌는데, 여러 정황으로 보아 심 대위는 민가에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상탈출을 미루다 유명(幽明)을 달리한 것으로 보였다. 이 기종의 전투기는 그동안 고장이 잦아 추락사고가 잦았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예산의 뒷받침이 되지 않아 계속 가동하는 무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고 심정민 대위는 아들의 고등학교 동기로 친한 친구였다. 아들이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새벽 두 시가 넘어 돌아왔다.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대구 능인고등학교의 당시 담임교사도 먼 길을 와서 애도했다. 앳된 청년들은 울음바다를 이룬 모양이다. 그런데 7, 8년 전에는 막내딸 친구의 아버지가 바로 이 낡은 사고기종으로 목숨을 잃었다.

아들은 사고소식을 접하고 난 후 줄곧, 50년도 더 전에 쓰던 비행기를 아직 파일럿들이 타게 하여 이처럼 자주 사고가 나도록 하는 게 있을 수 있느냐고 분개한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내 아들도 징병제도와 관련하여 큰 상처를 안고 있다.

한국 남성이 20세를 넘으면 바로 직면하는 제일 큰 문제 중 하나가 병역이다. 내 아들도 대학을 다니면서 전전긍긍했다. 어릴 때 앓은 신장이 후유증을 남겨 몸이 성치 않았으나 그렇다고 면제처분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결단을 내려 현역입소를 할 수 있게 판정급수를 올려달라고 간청해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하지만 훈련 중 그곳의 담당의사가 현역복무를 하기에는 무리하다는 판정을 내려 귀가처분을 하였다. 그런데 정작 징병검사소에서는 다시 현역입소판정을 하였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 무렵 개인적인 어려운 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더욱이 금쪽같은 내 아들이 청춘의 찬란한 시기에 병역문제에 매여 장래에 관한 계획을 전혀 세울 수가 없게 되어버리니, 다리가 힘을 잃고 부들부들 떨렸다.

어찌어찌하여 3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어정쩡한 상태로 허송한 후에 아들은 다행히 공익복무처분을 받고 경주시청에서 병역을 이행하였다. 그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아들은 이 사회에서 기를 펴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들의 병역문제로 노심초사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가장 강하게 머리에 박힌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 국가는 ‘병역자원’에 관해서는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낡은 인식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말 그대로 ‘자원’에 불과하다. ‘신성한 병역의무’의 허울 좋은 간판을 내세운다. 그러면서 거칠고 우격다짐으로 젊은 청년들을 대한다. 내 아들에게도 그런 모진 짓을 했지만, 이번 사고로 죽은 고 심 대위와 작년 11월에 갓 결혼한 그의 아내, 실신하여 장례식장에도 못오는 어머니나 가족들에게 국가는 과연 떳떳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번 대선정국에서 MZ세대를 달래기 위한 방편을 각 후보진영에서 열심히 생각해낸다. 그러나 아이들 셋 모두가 MZ세대인 내 입장에서는 내 아이들이 무슨 세대갈등의 와중에 있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아들의 입을 통해 가장 자주 듣는 불만의 말은 바로 병역문제이다. MZ세대 간 젠더갈등의 핵심은 이것이다.

군입소자에게 월 200만원의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어느 대통령 후보의 공약은 그래서 참신하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지 말라. 병무행정 전반에 걸쳐 떠도는, 젊은 청년들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 인격무시 등의 검은 구름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작업을 하루빨리 해나가야 한다.

한편으로는 취업 시의 군가산점 제도가 위헌이라고 한 헌법재판소결정에서 이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 결정에서는 여성, 장애인 등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이들이 군가산점 제도로 불평등하게 취급받는 현실을 세세하게 분석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때가 1999년이다. 사회여건은 급변하는데, 20년 전의 상황이 지금에 그대로 통용될 수 없다. 우선 군대를 갈 수 있는 청년과 그렇지 않은 청년 및 젊은 여성의 취업비율이 20수 년 간의 시차에서 큰 변화를 보인 것으로 안다. 이제 군필자에게 약간의 우대를 해주더라도 헌법상 평등의 이념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보아야 한다. 병역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는 청년들의 근거 있는 불만을 수습하기 위한 방책으로, 취업 시의 군가산점을 현실에 맞는 범위에서 다시 채용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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