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에이징보다는 러브 에이징

경주신문 기자 / 2022년 0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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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식
Go쟁이 - 칼럼리스트
인생의 겨울이 왔나보다.
나이 들면 늙는 것!
노화를 거스를 것인가, 순응할 것인가?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어렸을 때 형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어느 별로 보내지고 동생은 지구별에 남았다. 50년 후에 형제가 다시 만났을 때 지구에 살던 동생은 얼굴에 주름살 가득한 노인이 되어 있었고, 다른 별에 살았던 형은 10대 미소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누가 더 진정한 삶을 살았고, 누가 더 행복할까? 과연 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 이 일그러지고 추한,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라네 / 살갗 대신 이 흉한 가죽, 처진 뺨 / 원숭이 암컷이 긁어 대는 입가 주름 같은 주름들이라니. / 노인들은 모두 같은 모습이구나. / 목소리는 떨리고, 몸도 떨리는구나. / 번질거리는 두개골에는 머리칼이 없고, / 빵을 씹으려 하니 가련한 늙은이는 이 없이 잇몸만 있구나.

2세기 초 유베날리스가 지은 풍자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노인을 지극히 가련하고 참담한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늙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일 뿐 노년의 진정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늙을 테지. 추한 잿빛이 될 테지. / 꽃 같은 젊음을 노랗게 시들게 할 시간이 올 터이니.

이렇게 시인이 노래한 것도 늙기 싫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늙음은 여지없이 찾아온다. 오는 노년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고 나이 드는 몸과 나이 드는 마음에 맞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늙음’은 결코 ‘낡음’만이 아니다. 새로 찾아오는 황혼의 멋진 인생을 생각하자. 젊은 시절에 의미를 두었던 것들에 이별을 고하고 노년에 맞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보면 어떨까.

인생 후반기의 삶의 목적은 너무 거창할 필요는 없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나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렇게 살면 인생이 허무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다.

인생무상은 인생이 ‘허망(虛妄)’한 게 아니라 ‘항상(恒常)’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변화의 과정 속에 인생이 있다는 거다. 인생이란 결국 변화다. 무언가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인간은 소리치며 미쳐 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인생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노년으로 넘어가는 것이지 갑자기 꺼져버리는 것도 아니다. 서서히 준비해 가면서 적응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나이 든 현자들 중 아무도 노년기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고 단언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나 세월의 발자취를 지울 수는 없다. 나이 들고 늙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니 나이를 거스르는 안티 에이징(Anti-Aging)을 외칠 것이 아니라 러브 에이징(Love-Aging)을 따르는 것이 순리일 듯하다. 노화를 거스를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사랑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공자가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갔다. 깎아지른 폭포에 급류가 흐르고 있어 물고기도 헤엄치기 어려운 곳인데, 한 사내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줄 알고 급히 제자들을 보내 구하게 했더니, 사내는 제 발로 머리를 털며 물 밖으로 나와선 기분 좋게 노래를 불렀다. 공자가 다가가 물었다.

“하도 수영을 잘해서 귀신인 줄 알았소이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소?”

“비결이랄 건 없습니다. 물이 소용돌이쳐서 빨려 들어가면 저도 같이 빨려 들어가고, 수면으로 솟아오르는 곳에서는 저도 같이 솟구쳐 나올 뿐입니다. 물길을 따를 뿐 따로 제가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장자》 달생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달생’이란 삶에 통달한 사람, 즉 요새 말로 ‘달인’이라는 뜻이다. 물의 흐름을 거스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욕심과 무리한 의욕은 인생 후반기에 좌절을 초래할 수 있다. 흐름을 따라가는 삶이 편하다.

‘나 아직 안 죽었다’라고 하면서 불같이 화낼 것은 아니다. 세월에 순응하는 편이 현명하지 않을까? 비록 선한 의욕이라 할지라도 지나치면 이롭지 못하다. 순응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노년의 삶일 수 있다. 그러나 물길을 거슬러 나아갈 수도 있다. 인류는 그런 과감한 행동으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결국 인생의 노년에 물길을 따를 것인지 거슬러 갈 것인지는 본인이 선택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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