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야기가 전해오는 천년고찰 기림사(1)

기림사를 창건한 사람은 안락국이다

하성찬 시민전문 기자 / 2022년 05월 12일
공유 / URL복사
↑ 하성찬 시민전문기자
기림사 홈페이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문화 원형 백과』를 중심으로 이 절의 창건설화를 간추려 본다.

옛날 인도 범마라국이라는 나라에 임정사(林井寺)라는 사찰이 있었다. 이 절에 광유성인(光有聖人)이라는 도인이 어느 날 제자들을 모아 놓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전생에 부처님의 제자로 있을 때 파사익왕의 세 시녀가 한결같이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공양했다. 제자 중에는 인물이 출중한 스님이 한 분 계셨는데 시녀들이 그 스님과 그만 사랑에 빠져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었다. 스님은 여인들의 유혹을 제도하려 했으나 여의치않아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스님은 세 여인을 잊지 못해 번민하다가 결국 도를 이루지 못한 채 입적했다. 나는 그때 그 스님의 도반이었는데 먼저 도를 이루는 사람이 서로 제도키로 약속을 했었다. 이제 금생의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도반인 그 스님과 세 시녀를 제도하려 하니 누가 그 사람들을 이곳으로 안내하겠느냐?”

그때 승열 비구가 나섰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오, 장하구나. 너라면 능히 할 수 있으리라, 그 스님은 금생에 수다라라는 나라의 왕이고 왕후와 후궁은 전생의 시녀이니라”
“한 명의 시녀는 어디 있습니까?”
“곧 왕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여기 올 것이니라. 세 명을 한 번에 모시기는 어려울 테니 먼저 후궁인 월애 부인을 인도토록 해라”

승열 비구가 수다라국에 도착했을 때 왕은 궁녀들과 강가를 거닐다가 숲속에서 잠이 들었다. 그때 궁녀들은 좌선에 든 스님을 발견하고는 다가가 물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요?”
“나는 범마라국 임정사에서 온 승려입니다”

이때 잠에서 깨어 이를 목격한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소리쳤다.

“너는 누군데 궁녀들을 유혹하느냐?”

왕은 불개미 집을 헐어서 승열 비구의 몸에 풀어 놓았다. 그런데 불개미는 스님을 물지 않고 모두 흩어졌다. 이에 왕은 스님이 예사로운 분이 아닌 줄 알고 궁중으로 정중히 모셨다. 이후 스님은 궁중에서 1년간 왕과 왕비, 후궁들을 교화했으며 수다라 왕국에 최초의 절 범승사를 세웠다.

“이제 그만 임정사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얼마 후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떠날 채비를 하면서 월애 부인을 모시러 온 뜻을 밝혔다. 왕은 보내기 아쉬웠으나 월애 부인이 선뜻 나서니 어쩔 수 없었다. 이후 임정사에 온 월애 부인은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어 열심히 정진했다.

어느 날 광유성인은 승열 비구에게 다시 수다라국에 가서 왕과 왕비를 모셔오도록 일렀다. 스님이 수다라국에 오자 백성들까지 크게 영접했다.

“월애 부인은 대왕이 오셔서 함께 공부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이 도착하기 전 도를 얻고 사바의 인연을 마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슬피 탄식했다. 그러나 승열 비구로부터 전생 이야기를 들은 왕은 참회하면서 왕비와 함께 광유성인에게 가기로 결심하고 왕위를 태자에게 물린 뒤 임정사를 향해 길을 떠났다. 만삭의 몸으로 길을 나선 왕비는 중도에 지칠대로 지쳐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대왕이시여! 전생의 숙업인 듯하오니 저를 여기서 종으로 팔아 그 대가를 임정사 부처님께 올려 다음 생에 다시 공부하도록 빌어주십시오”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이 들어 하는 부인을 왕도 어쩔 수가 없어 눈물을 흘리며 부인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대왕이시여! 아기를 낳으면 이름을 뭐라 할까요?”
“아들이거든 안락국이라 하고, 딸을 낳으면 안양이라 하여 주오”

부인과 작별한 왕은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어 세속 일을 잊고 정진에 몰두했다. 그렇게 7년이 되던 어느 날, 임정사로 한 남자아이가 왕을 찾아왔다. 원앙 부인이 낳은 태자 안락국이었다. 반갑게 상봉한 부자는 함께 공부했다.
수다라왕이 열반에 들자 광유성인은 안락국에게 전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일렀다.

“안락국아, 너는 인연지를 찾아가서 중생을 교화 제도하거라. 그 인연지는 여기서 2백 50만 리 떨어진 해동국인데 그곳엔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계신다”

광유성인의 지시에 따라 해동 계림국에 도착한 안락국은 명당을 찾아 절을 지어 임정사라고 했다. 절이 창건된 지 150년 후, 원효대사가 이 절을 확장하고 절 이름을 기림사라 고쳤다.
달마스님 말씀으로 전해 오는 『혈맥론(血脈論)』에 이런 구절이 있다.
廣學多智 神識轉暗(광학다지 신식전암)
즉 ‘널리 배우고 아는 것이 많으면 오히려 자성이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문헌을 뒤적이며 창건설화를 적고 나니 오히려 기림사가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
X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