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은 둥글다

경주신문 기자 / 2023년 0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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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한 권의 책보다 한 장의 사진이 때로는 더 감동스러울 수 있다. 직관적으로 전해지는 그림이나 이미지가 전하는 메시지에 사람들은 쉬이 반응한다. 그것이 마음이 소통 방식이고 그것이 곧 공감(共感)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화마가 선명한 우크라이나, 폐허가 되어버린 어느 시멘트 더미 위에 물구나무를 선 체조선수 그래피티(graffiti, 길거리 낙서)가 발견되어 관심이 모인다. 이유는 그것이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Banksy)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다. 영국 출신에 거리 아티스트이며 사회운동가 겸 영화감독이라는 소문만 무성할 뿐,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로 유명한 그는 건물 벽이나 지하도, 담벼락, 물탱크 등을 캔버스 삼아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해 왔다. 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도시 보르디안카에서도 유도복을 입은 어린 소년이 거구의 남성을 업어치기 하는 그래피티가 발견됐다. 아이가 어른을 내다 꽂는 모습이 이색적이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도 애호가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 감이 잡힌다. 이 역시 뱅크시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그의 일관된 주제인 ‘언제나 희망은 있다(There is always Hope)’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처럼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에 다시 희망의 불씨가 들불처럼 일어나기를 바래본다.

희망이라고 한다면 지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특히 조별리그는 약체가 강호를 꺾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FIFA 랭킹 51위)가 메시가 뛰는 아르헨티나(3위)를 꺾고, 일본(24위)이 독일(11위)과 스페인(7위)을 차례로 꺾었으며, 우리 대~한민국(28)위도 호날두가 버티고 있는 포르투갈(9위)을 꺾었다. 아니, 말이 되는가?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네 번이나 거머쥐었던 독일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다는 게... 공이 둥그니까 절대 강자도 절대 약체도 없는 모양이다.

반전과 이변이라는 키워드 말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백승호 선수의 말대로 “축구공은 둥글다” 경기가 끝나기 전에는 결코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주장 손흥민 선수의 말대로 “실점을 하는 등 어려운 경기였지만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 한 발 더 뛰어주고 희생해 준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말이 맞는다. 축구공처럼 하나같이 잘 생긴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 인터뷰도 둥글둥글 잘한다.

둥글다는 건 자연의 언어로 완숙이자 완성을 의미한다. 동·식물을 막론하고 둥글둥글한 형태는 자연에서 성장하고 번식하는데 아주 효율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과일은 다량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원형이 유리하다. 홀쭉한 것보다 빵빵한 과일이 더 먹음직스러워 보일 테고, 또 그걸 먹은 동물들이 더 넓고 다양하게 씨를 퍼트릴 가능성이 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힘들고 아픈 시간을 인내하며 점점 단단해져 간다. 그 완숙의 모습으로 ‘다재다능한, 전인격을 갖춘(well rounded)’이라는 표현을 쓴다. 성격이 모질지 않고 둥글둥글한 게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날 것 같은 홍반장 스타일이다. 와, 웃는 상에 배가 좀 튀어나왔을 것 같은 홍반장이 인류의 진화론적 결실이었다니! 비유가 좀 뭐 하지만 고등어 같은 어류들의 알도 마찬가지다. 역시 동그랗다. 수압을 효과적으로 견뎌내고 동시에 부화하는데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빛을 골고루 받으려면 당연히 둥근 게 효과적이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인격만큼 둥글둥글한 배도 나름 과학적인 이유가 있지 싶다.

그럼 희망도 반전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또 뱅크시한테 벌어졌다. 방독면을 쓴 채 손에 빨간 소화기를 들고 있는 여성을 그린 작품이 도난될 뻔한 사건이 그것이다. 벽에 그려진 작품을 훔치려던, 그것도 우크라이나 출신 일당이 경찰에 잡히는 바람에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벽에 그려진 작품을 통째로(!) 들어내려다 현장에서 잡힌 모양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당 지역 주지사는 ‘뱅크시의 작품은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투쟁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반드시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한다. 역시 위기를 통해 희망은 공처럼 더 동그랗고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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