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절터에서 봄을 느끼다

이종기 시민 기자 / 2023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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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일을 마치니 점심때다. 혼밥을 해야하는 데 어디서 먹을까?
생각 중에 흥무공원에 있는 ‘금산재 칼국수집’이 떠올랐습니다. 김유신 장군묘 근처에 있는 경주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에요. 맛에 대한 끌림보다는 몇 해 전 경주에 근무할 때 들리던 집으로, 그간 어떻게 변했을까하는 궁금에 더 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송화방지 비석, 연리지 나무 등 역사 이야기꺼리도 보고 싶었고요. 더욱이 오늘 봄날 같은 따스한 날씨도 내 발길을 산골 나들이로 향하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 금산재 칼국수 집.


(1)송화산 아래 ‘금산재(金山齋) 칼국수집’에서

칼국수 집 건물 주변은 옛과 같으며, 대문 앞쪽 채소밭은 잔디밭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흥무공원 주차장에서 내려 철로 지하 굴다리를 통해 맛집에 가는 코스도 전과 마찬가지. 식당 대문으로 들어가니 큰 마당에 대형 평상과 테이블들이 놓여있습니다. 칼국수, 부추전, 수육, 막걸리가 주된 메뉴였어요. 값도 시중보다 저렴한 편으로 차림표 아래 ‘정성을 가득 담았습니다’라고 예쁘게 적혀있는 글귀에서, 주인장의 맛갈스런 손맛과 다정한 친절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 송화방지 비석.


(2)김유신 장군가의 원찰, 송화방 비석 이야기

칼국수 집 뒤편에 ‘송화방지(松花坊址)’라고 새겨있는 비석도 그대로 있습니다. 「김유신 장군」 가문의 원찰 터 자리라고 표시되어 전해오는 비석입니다. 삼국유사 ‘김유신 조’ 편에 의하면 김씨 집안 「재매부인(財買夫人)」이 죽자, ‘청연상곡’ 골짜기에 제사 지내고, ‘재매곡’이라 불렀고, 해마다 봄이 되면 집안의 남녀들이 여기서 잔치를 열었는데 이때쯤 송화가루가 골[谷] 안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김유신 장군이 돌아가신 후 재매부인이 여기에 절을 짓고, 출가하여 「송화방」이라고 이름 지어 김씨가문의 원찰로 삼았고, 장군의 명복을 빌며, 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고 전해오는 곳입니다.


↑↑ 금산재 연리지 나무.


(3)금산재 연리지 나무

송화방지 비석 옆에 100년쯤 되는 큰 팽나무 연리지 한그루가 잎을 죄다 떨어트리고 서 있습니다. 그 앞 안내판에, 이 나무는 한가지 소원은 들어주는 나무로, 왼쪽을 돌면 아들을 낳을 수 있고, 오른쪽을 돌면 딸을 낳게 해준다는 전설이 있는 나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녀가 손을 잡고 같이 돌면 ‘100년 해로’ 한다고도 해요. 아마도 김유신 장군에 대한 재매부인의 간절한 사랑의 기운이, 송화방 주변에 서려 있어 그런 것 아닌가 생각돼요. 튼튼한 가지들을 불끈 안고 기운차게 버티고 서 있네요. 봄이 되면 젊은 부부들이 많이 찾아와, 이 사랑나무인 연리지를 보며 데이트를 한다고 합니다.

↑↑ 칼국수집 내부 마당.


(4)식당 아줌마의 손맛과 후한 인심

들깨 칼국수와 부추전을 먹고 카드로 결제를 하려고 하니, ‘손님 현찰로 주면 좋겠습다’라고 하며 ‘모두 그렇게 받습니다’라고 한다.
 
현금이 없어 난감해하자, 아주머니 말이, ‘그럼 다음 오실 때 주시든지, 아니면 계좌이체 하면 된다’고 하며 계좌번호가 적힌 명함을 줍니다. ‘지금은 그냥 먹고 가고, 나중에 밥값을 주면 된다’는 외상허락인데, 오히려 그쪽에서 상냥스럽고 느긋한 표정입니다.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해 어물거리며 칼국수 집을 나왔어요. 그리고 곧장 은행 ATM기를 찾아 시내로 차를 몰았습니다. 서천(西川) 물길 따라 불어오는 강바람이 모처럼 겨울 훈풍이 되어 어정쩡하던 내 기분을 부드럽게 감싸줍니다. 이야기가 있는 옛집에서 구수한 칼국수 맛과 식당 아줌마의 넉넉하고 유연한 인심에, 그리고 봄의 기지개까지 보았으니, 오늘 여기 잘 왔다 싶습니다.

이제 곧 봄이 되면, 이 송화산(松花山) 계곡에는 송화가루 향기 가득해지고, 벚나무 울창한 흥무대로에는 흰 꽃잎이 만발, 흩날릴 것입니다. 역사 있는 절터에 사랑 짙은 나무와 좋은 맛집이 있으니, 이보다 더한 힐링 장소가 또 있을까? 봄이 기다려집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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