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우리만치 파격적인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김용목 선생 “내 춤과 음악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박근영 기자 / 2023년 0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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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월에 등장하는 파격적인 애니메이션 중 한 컷

↑↑ 처용무 이수자
김용목 선생
음악이 종합예술의 밑바탕인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오페라와 뮤지컬, 연극과 영화는 물론 각종 공연에는 반드시 음악이 들어간다. 대중음악에서 앨범을 선전하고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프로모션 필름이 ‘뮤직 비디오’라는 독자적인 이름으로 통용된 것은 1980년대 초부터라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1979년에 발매된 영국의 락 그룹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1965년 결성)의 ‘더 월(The Wall)’은 이미 당대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뮤직비디오로 손색이 없다. 


아니, 오히려 명칭을 초월한 최고로 파격적이고 선동적인 뮤직비디오라는 평가를 들을 만한 영상음반이다.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이수자로 경주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처용무 보급과 우리춤 알리기에 바쁜 김용목 선생은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상물로 뮤직비디오 ‘더 월’을 꼽는다.


“제가 더 월을 만난 것은 대학시절 음악을 하면서였습니다. 당시 부산 경성대에서 무용을 전공하면서 락 음악에도 매료되어 있었고 가끔씩 보컬로 참석하기도 했지요. 이 무렵 음악하는 선배들이 몰래몰래 틀어놓고 보던 뮤직 비디오가 ‘더 월’이었습니다”


우습게도 더 월은 금지곡이었다. 1980년대 초의 대한민국은 아직도 군부독재의 서슬이 맹위를 떨치던 때이고 금서(禁書)와 금지곡(禁止曲)이 문화계 전반을 짓누르고 있을 때였다. ‘더 월’은 그런 사회 분위기에 정면으로 맞서서 오히려 그런 사회를 철저히 까뒤집고 놀려대는 가사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뮤직비디오는 일반적인 시선에서 봐도 오싹할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시대 이 정도로 대담하고 획기적인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엄청난 스케일의 인원 동원에 온갖 영상 트릭과 애니매이션이 총동원되었다. 더구나 영상들의 내용이 대담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다. 내용들은 전쟁과 군대를 비판하고 특정 집단의 잇속에 의해 정형화된 인간을 생산하는 교육을 과감히 때려 부순다. 


그 교육의 주체는 학교와 가정으로 나누어지고 학교의 선생과 가정의 엄마를 어긋난 교육의 가해자로 설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거대한 벽을 구성하는 단지 하나씩의 보잘것없는 벽돌들일 뿐이다. 핑크 폴로이드는 그 벽을 과감히 깨부수라고 맹렬히 선동한다. 심지어 뮤직비디오에는 독재자들이 횡행하는 영상내용이 적나라하게 포함되었다. 세뇌교육을 통해 독재와 장기집권을 꿈꾸던 군부독재에게 이 뮤직 비디오는 눈엣가시가 아니라 마치 핵폭탄 같은 도발이었을 것이다. 독재자들에게는 금지곡 안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어려울 수준이었다.


“이 뮤직 비디오를 보면서 창작에 대한 제 마음가짐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평범해져서 안 된다는 생각과 새로운 도전에 과감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어요. 제가 다소 진보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던 것도 다분히 더 월의 영향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김용목 선생은 당시 많지 않았던 남성 무용수로서 자신의 춤을 최대한 변화시키려 노력했고 음악적으로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했다고 회고한다. 그런 그가 처용무를 이수한 것 역시 그런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의 결과였다. 처용무는 그 중요성에 비해 그것을 익히고 전수 받으려는 사람들이 흔치 않았다.


“처용무는 음양오행의 원리가 들어 있는 매우 철학적인 춤입니다. 철저히 규칙적이기도 해서 반드시 이대로 추어야 하는 춤이지요. 그러나 법고창신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전통을 지켜나가는 한편 현대적으로 접목하고 적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이런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때문에 김용목 선생은 우리춤을 이론화 하고 새롭게 연출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문화재학으로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김용목 선생은 새로운 시선을 문화재활용사업에 접목, 3년 연속 우수사업으로 선정된 배경에도 더 월에서 얻은 충격이 스며있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경주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실전(失傳)된 사자춤을 연구하는 것도 그만의 독특한 도전이다. 핑크 플로이드가 다른 뮤지션들이 다룰 수 없었고 함부로 언급하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폭발적인 고발을 행한 것을 김용목 선생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문화장르로 승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아직도 그 내용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젖는 김용목 선생, 그의 도전 역시 더 월처럼 파격적일 수 있다면 그 춤과 음악 역시 경주 문화사에 놀라운 획을 그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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