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의 귀환

경주신문 기자 / 2023년 0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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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의 귀환


                                          유홍준

쇠고기 한 근을 샀다
하얀 목장갑 낀 정육점 여자의 손이
손에 익은 한 근의 무게를 베어 저울 위에 얹었다
주검의 일부를 받아 안은
저울 바늘이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저울이
내게 물었다 인간들의 약속이란 고작
이 한 근의 무게가 모자란다고 보태거나 넘친다고 떼어내는 것?
맞아 저쪽 봉우리에서 더 먼 저쪽 봉우리로
주먹만한 고깃덩어리들이 고단한 날개를 저어 날아가는 황혼녘
국거리 쇠고기 한 근 담아 들고
부스럭대는 비닐봉지 흔들며 늙은 어머니를 찾아가면
저울을 떨게 만든 이 한 뭉텅이 주검의 무게가
왜 이렇게 가벼운가 문득
저울대가 된 나의 팔이여
모든 것을 들어냈을 때 비로소 평안을 얻는
빈 저울의 침묵이여 나는 제로에서 출발한 커다란 고깃덩어리
주검을 다는 저울 위에 올라가 보고서야 겨우
제 몸뚱어리 무게를 아는 백 열 근짜리
사지 덜렁거리는 인육


저울에 올라야 하는 인간의 불우

↑↑ 손진은 시인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무게는 무엇일까? 바로 ‘두근 반 세근 반’이다. 동명의 시에서 유홍준은 그것을 “너 처음 나에게 오던 무게/나 처음 너를 만나던 무게”, “심장이 견딜 수 없는 머리가 감당할 수 없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무게”, “결코 죽지 않는 꽃눈의, 꽃향기의 무게”라고 하였다. 그러나 생이 늘 그런 화양연화의 꽃그늘 아래 있을 수만은 없는 법이다.

삶의 고단함이나 일상의 비루함을 헤쳐나가는 불모의 도시적 삶 가운데, 우리는 끊임없는 죽음의 무게를 조우한다. 시인은 정육점에서 만난 고기에서 도살된 소의 ‘토막난 죽음’을 보고, “소고기를 뒤집고 소뼈를 고아마시”는 나 역시 “토막난 존재”(「토막난 나는, 돌아다닌다」)임을 인식한다. 얼마나 기괴한가?

어머니에게 갖다 드리기 위해 산 쇠고기 한 근을 소재로 하는 이 시는 더욱 리얼하다. 인간을 무슨 고상한 존재가 아니라, 그냥 거대한 욕망 덩어리쯤으로 여긴다. 그러니 시는 ‘주체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정육점 여자가 한 근의 무게를 저울 위에 얹자, 이번에는 저울 바늘이 부르르 진저리를 치며 내게 묻는다. “인간들의 약속이란 고작 이 한 근의 무게가 모자란다고 보태거나 넘친다고 떼어내는 것?” 이런 비아냥은 내가 끊임없이 저울에 시달려야 하는 존재임을 여지없이 깨닫게 한다. 나뿐 아니다. “저쪽 봉우리에서 더 먼 저쪽 봉우리로” “고단한 날개를 저어 날아가는” 새들도 “주먹만한 고깃덩어리들”일 뿐이다. 말하자면 세상은 고깃덩어리들로 들끓고 있는 곳이다. 국거리 쇠고기 한 근을 들고 늙은 어머니를 찾아가며 시인은 문득 “저울대가 된 나의 팔”을 의식하며 “한 뭉텅이 주검의 무게가/왜 이렇게 가벼운가” 자탄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본래 왔던 곳으로 생각을 몰고 간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제로에서 출발한 고깃 덩어리”이고, “모든 것을 들어냈을 때”, 빈 저울일 때 비로소 평안을 얻을 수밖에 없는, “주검을 다는 저울 위에 올라가 보고서야 겨우/제 몸뚱어리 무게를 아는 사지 덜렁거리는” 66kg짜리 고기일 뿐이라는 것. ‘저울의 귀환’은 생을 반추하는 저울이 되어 모태인 늙은 어머니를 찾아가는 모습을 넘어, 본래 있던 곳으로 귀환할 무렵에야 겨우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되는 인간의 불우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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