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에 생명 불어넣은 한원석 작가의 꿈

파파게노 리드림
목동현대백화점에서 19일까지

박근영 기자 / 2023년 1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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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원석 작가의 작품 '파파게노 리드림' 파파게노는 모짜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새장수 이름이다.

대백화점 목동점, 7층 고객들의 안식을 위한 공간으로 할애한 ‘보타닉 하우스’에 뜻밖의 전시가 펼쳐져 있었다. 보타닉 하우스답게 여러 가지 식물들의 심어진 공간사이로 자연스러운 톤의 파이프들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세로로 적당한 간격으로 심어진 모습이다.

주변을 돌며 휴대폰 셔터를 누르는데 간간이 새소리가 울려 퍼진다. 언뜻 파이프들 사이에 동그란 작은 구멍들이 뚫어져 있다. 오후 1시 30분 무렵의 백화점 7층, 한창 영업 중인 만큼 사람들이 하우스에 딸린 커피점 근처에 둘러앉아 담소 나누는 소음 속이라 새소리가 희미하기도 하지만 잠깐잠깐 맑고 우렁찬 소리도 들린다.

조금 더 앉아 있으려니 어디선가 피리소리도 들려온다. 낮게 웅성거리던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대화에 몰입해 있지만 일부는 대화를 멈추고 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소음들이 없다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곳이 백화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겠다 싶다.

보타닉 하우스에 올라와 있는 고객들을 둘러보았다. 더러는 파이프에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둘러 보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대화에 열중해 있다. 다만 새로 올라오는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작품을 훑어보고 연신 고개를 기웃거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기자처럼 작은 구멍을 발견하고 살펴보는가 하면 바닥에 깔린 안내문과 하우스 이곳저곳에 설치된 전시회 안내판에 눈길을 주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후 다시 파이프들을 둘러보고 커피점으로 들어간다.

↑↑ 버려진 마대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한원석 작가


시율 국악음악가 피리소리, 70개 새소리 윤희찬 작가의 하모니 속 자연스럽게 서 있는 지관이 주는 감동 !

경주가 좋아 경주 양동마을로 와 4년째 경주사람으로 살고 있는 건축가이자 설치미술가인 한원석 작가와 국악 피리 연주자 시율 작곡가, 전국을 돌며 70여종 새소리를 채집한 윤희찬 작가의 콜라보 전시회 ‘파파게노 리드림(Papageno ReDream)’이 지난 10월 25일부터 11월 19일까지 현대백화점 목동점 7층 보타닉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 백화점의 고객 서비스 라운지에 설치된 전시인 만큼 고객과 작품, 음악과 새소리가 동화(同化)되는 자연스러운 컨셉의 전시회다. 전시회 안내판만 아니라면 백
화점 고객들이 전시회 중이라는 사실조차 모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광고와 예술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관의 색조가 자극적이지 않다는 기자의 질문에 한원석 작가가 대뜸 물어온다.

“광고는 자극적이지만 예술은 감동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감동은 조화를 이루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라 믿고요!”

↑↑ 담배꽁초를 모아 만든 한원석 작가의 작품

그래서 굳이 눈에 띄는 자극적인 색은쓰지 않았고 그런 차원에서 일부러 새소리나 피리소리도 억지스럽게 넣지 않고 볼륨을 높이거나 고객들에게 귀를 기울이라고 제안하지도 않는다고 설명한다. 백화점이라는, 자극을 지속적으로 주어야 할 광고의 총아인 상업적 공간에 이런 낭만적 감동의 코드를 심었다는 것에서 신선한 충격이 느껴진다. 이럴 때는전시에 몰두한 작가들도 작가들이지만 이런 전시를 흔쾌히 유치한 백화점 관계자들의 품격이 더 놀랍다.

그런 의미에서 한원석 작가는 ‘세련되다’는 말에 대해서도 다소의 이질감을 느낀다. 세련되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신선함이고 이는 다분히 서양적 관점에서 두드러지는 표현이기 믿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은 편하고 부드러운데 그게 우리의 고유 심성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파이프들이 지관(紙管)인 이유는 한원석 작가의 오래된 자연주의, 환경에 대한 남다른 애착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이번 전시회 제목이 리드림(ReDream)입니다. 숲에 있었을 수많은 나무들이 나고 자라고 쓰러지는 가운데 그나무들이 인간의 목적에 따라 잘려 나갔고 그런 나무들이 언젠가는 쓰임을 다하고 버려지지요. 그중 아주 일부가 이렇게 지관이 됩니다. 이 지관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다시 사람들 속에서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한 것이 이번 전시회의골자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원석 작가의 작품 전반에는 철저할 정도의 자연철학과 환경에 대한 신념이 녹이 있다. 보타닉 하우스한쪽에 마련된 한원석 작가의 또 다른전시회에 나온 작품들도 한결같이 그런철학과 신념이 서려 있다. 담배꽁초를 모아 만든 작품들, 마대 포대를 활용한 작품들, 다분히 역겹고 지저분한 소재들은 따지고 보면 인간의 욕심이 만든 산물들인 한편 인간의 무책임으로 버려져 쓰레기가 된 것들인데 이런 것들을 모아 ‘단순한 재활용품’이 아닌 ‘대단한 예술작품’으로 되살린 것이다. 

↑↑ 반대쪽에서 감상하는 파파게노 리드림


보수적인 곳은 불편할 수밖에 없어. 
주가 지킨 우리 민족의 자연과 환경에 대한 심성 세계에 알리고 싶어

이런 철학은 한원석 작가의 경주와 관련한 화제작들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경주엑스포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버려진 스피커를 붙여 만든 대종 작품이나 서울의 청계천과 경주시, 순천시를 비롯,경북도청 원당지 등에 전시 중인 폐자동차의 헤드라이트로 만든 첨성대 작품 등은 함부로 자연을 훼손한 인간들이 그자연에 대해 미안해 하는 반성과 화해의 마음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종에서 나오는 소리나 그 첨성대에서 발현되는 빛들은 단순히 재생된 기계의 소리나 빛이 아닌, 인간의 욕심과 오만을 때리고 일깨우는 겸허하지만 큰 울림의 ‘뇌성벽력’인 셈이다.

한원석 작가는 그 많은 도시 중 경주에 안착한 이유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소개한다.

“경주는 우리 민족이 자연과 환경을 아껴온 심성이 온전히 보존된 도시입니다. 경주에 있는 자체로 조상들의 현명한 지혜와 숨결을 배우게 됩니다. 어느 도시보다 보수적이지만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경주가 그만큼이라도 지켜져 왔다고 믿습니다”

한원석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작품활동과 건축작업으로 중국에서도 오래 살았고 영국에서도 머물고 있는 것을 비롯 세계 곳곳을 다니지만 결국은 그것이 우리 문화를 알리는 작업이라 설명한다.

그래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서울은 세계속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거점이고 경주는 한옥의 선이나 봉황대의 능선에서보듯, 우리 민족의 세련되기보다 익숙하고 편안한 심성을 알리는 문화적 거점이라고 서슴없이 주장한다. 그래서 다소불편한 점이 있어도 기꺼이 경주에서 자신의 마지막 인생을 보내겠다고 단언한다. 인구절벽 시대, 갈수록 사람이 줄고 한다하는 사람들은 경주를 떠나지 못해 안달인데 이처럼 경주의 속성을 깊이 이해하고 편들어 주는 예술가가 경주에 와있다는 것이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한원석 작가가 뜻밖에 책을 한 권 내준다. 1989년부터 2019년까지 자신의 건축과 공간작업, 설치미술,회화 등 수많은 작업들이 기록된 책이다. 그중 눈에 띄는 한 구절이 이번 전시의 의도에도 그대로 녹아 있는 듯하다.

“누군가는 버리고 / 누군가는 줍고 /누군가 흩트리면 / 누군가는 쌓고”

그 많은 누군가들이 버리고 흩트렸을, 원래는 숭고하던 자연들을 하나씩 줍고 쌓아 현대백화점에 구현한 한원석 작가의 꿈은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꾸어야 할 꿈일 것이다. 한원석 작가의 전시회를 가보는 것으로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버려진 쓰레기들에 대해 작게나마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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