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낙지와 떡볶이

경주신문 기자 / 2023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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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박찬욱을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만들어 준 작품은 〈올드보이(2003)〉다. 동명의 만화를 원안으로 한 작품으로 그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탔던 걸로 기억한다. 머리로는 말이다. 하지만 내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하는 방식은 좀 다르다. 자그마치 20년이 지났지만 한 장의 사진처럼 마음속에 딱,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산낙지 씬이다. 살아 꿈틀대는 낙지를 입에다 욱여넣는 그 장면 말이다. 질겅대는 억센 이빨 사이로 삐져나온 다리가 얼굴을 감싸는 모습은, 유혈이 낭자하는 그 어느 장면보다도 공포스러웠다.

외국 관객들이 꼽은 가장 잔인하고 충격적인 씬이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가장 역겨운 식품 관련 장면”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서양은 문어, 낙지나 오징어 같은 두족류(頭足類)에 대해서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미신이기도 하겠지만 그들 머릿속에 살아(!) 있는 문어는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으면 제일 먼저 와서 뜯어먹는 공포스러운 이미지가 강하다. 그나마 해산물 요리가 발달한 지중해 연안 남유럽은 문어를 먹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익혔을 경우다. 영화에서처럼 살아 있는 낙지라면 유럽 사람들이라도 좀처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거다. 어쩌면 고소를 당할 수도 있겠다. 두족류는 인간과 비슷한 고통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동물 학대로 해석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막상 써놓고 보니 나도 무서워져 지금이라도 전개 방식을 바꿔야 하나 고민이 된다. 사실 ‘외국인 입에 떡의 식감은 너무 이질적’이라는 걸 써보려는 의도였는데 너무 강한 도입으로 이젠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다. 내가 듣고 아는 바로는 우리 떡이 서양인들 입에 너무 찐득(sticky)하다는 거다. 가령 찹쌀로 만든 떡처럼 식감이 강할 경우 얼마나 오래 씹어야 할지, 그래서 언제 삼켜야 할지를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니 떡은 우리 기대와 달리 외국인들에게 호불호가 선명히 나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하기야 그것 말고도 흥미롭고 재미난 한국 음식이 많은데 굳이 떡을 정복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웬걸, 나의 근거 없는 기우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거슨 BTS가 떡볶이 먹방을 찍은 사건(?)이다. 우리 지민 오빠가 전 세계 아미 팬들을 상대로 “여러분들, 크리스마스에는 떡볶이예요!” 하고 입을 맛있게 오물거린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여태 칠면조 가슴살을 먹었는데 이제부턴 떡볶이닷!’ 정도는 아닐지라도 한국 하면 떠올릴 음식 리스트에 떡볶이가 추가되었으리라.

입 속이라는 지극히 내밀하고 주관적인 감각 환경에 이견이 허락되지 않는 강력한 기준을 우리 지민 오빠가 만들어 준 셈이다. 받아들이기에 좀 이질적이었던 감각이 한순간 ‘아, 이것이 한국인들의 소울푸드 맛이구나’ 하고 한국인들의 소울(soul: 魂)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희유한 경험으로 이끈 그들 능력이 신기하다. 입천장에 잘 들러붙은 떡이 갑자기 옳고 갑자기 맛있어진 것이다.

달콤한 떡고물과 쫄깃한 식감으로 한국인들의 주전부리 역할을 해왔던 떡은 떡볶이로 변주되어 외연을 넓히고 있다. 또한 산낙지라면 질색하던 외국인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혐오 음식이던 산낙지가 ‘가장 먹어보고 싶은 이색적인 한국 음식’ 1위로 꼽히기도 했다.

한국에 오면 도전하고픈 음식으로 산낙지를 꼭 맛본다고 한다. 이게 문화의 힘이다. 혐오가 호감으로도 바뀔 수 있지만 그 반대도 가능한 게 문화의 매력이다.

요즘 김밥이 전자의 경우다. 지난 8월 미국 초대형 할인점인 ‘트레이더 조(Trader Joe’s)’에서 판매를 시작한 한국 김밥이 2주 만에 완판되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제발 그만 좀 사가라. 매일 사러 가는데 갈 때마다 품절”이라는 하소연을 할 정도란다. 보통 김밥은 수분이 많고 실온에서 잘 상할 수 있어 냉동 제품 상태로 수출한다.

이걸 한국계 음식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레인지에 돌려먹는 영상이 빵 터져버린 것이다. 경북 구미의 어느 식품업체에서 생산된 이 제품은 포장지에 큼지막하게 kimbap이라고 쓰여 있다. 김밥이라는 우리 발음으로 팔리는 거다. 바로 밑에 제품 소개로 ‘한국식 두부(Tofu)와 야채, 그리고 김으로 만든 라이스 롤(Rice Roll)’이라고 쓰여있다. 이제 우리의 목표를 수정할 때다. 일본식 토푸를 우리식 두부로 되찾아와야 한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고 세상을 지배하는 소프트 파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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