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감옥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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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작년 여름이었다. 미국 텍사스주 의회 앞에 간이 시설물이 놓여있는데, 에어컨도 없이 좁고 답답한 감옥을 체험해 보라고 NGO 활동가들이 세워둔 것이다. 실제 이 교도소 수감자의 말에 따르면 감옥의 실내 온도는 섭씨 46도를 상회한다고 했다. 세면대 물을 종일 틀어 바닥을 식히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라고. 감옥이라기보다 차라리 달궈지고 있는 ‘오븐’이라고 표현했다. 너무 더웠던 여름이라서 그랬는지 나도 거대한 오븐 속에서 사는 건 아닐까 상상해 본 것 같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감옥이 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남의 시선을 느껴야 더 공부가 잘되는 변이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공족도 그중 한 부류다. 이젠 카페 말고 유튜브에서 공부하는 세상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면서 공부한다고 한다. 궁금해서 살펴본 두어 개 영상에는 정말이지 아무런 대화나 움직임도 없다. 볼펜으로 뭘 쓰고 페이지 넘기는 소리뿐이다. 도서관 한복판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고나 할까. 아마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격리가 불가피해지자 생겨버린 변종 문화가 아닐까 싶다. 졸릴 때마다 모니터 너머 열공하는 다른 친구들을 의식하며 졸린 눈을 비빈다. 몸은 홀로지만 가상 공부방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신세다.

아들 칫솔에서도 그런 흔적은 발견한다. 새 걸로 교체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칫솔모가 닳아 있다. 특히 뒷부분 모가 심하게 누웠다. 우연히 양치하는 아들 뒷모습을 보고는 궁금증이 확 풀렸다. 녀석은 유튜브를 시청하며 양치하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인간은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 한다. 한참 게임에 빠져 있는 아들 코가 라면 냄비 타는 냄새를 감지하지 못하는 원리와 같다. 아니 손이 왜 두 개인가! 한 손으로 칫솔을, 다른 손으로는 치약을 짜라고 두 개다. 한 손으로 칫솔질을, 다른 손으로는 컵을 들고 있으라고 두 개인 거다! 현란한 동영상에 눈을 고정해 두고 닦는 흉내만 내다보니 그 흔적이 고스란히 칫솔모에 남겨진다, 비슷한 영상을 계속 추천해 주는 맞춤형 서비스 때문에 ‘양치하는 척 동영상 시청’ 습관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 중에 프*글스라고 있다. 빨간색 기다란 통에 담긴 감자칩인데 아들도 사족을 못 쓴다. 그 과자 광고송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일단 한번 뚜껑을 따봐, 그럼 멈출 수가 없을 거야(once you pop, you can’t stop)” 이것의 우리나라 버전이 “손이 가요 손이 가~ 새*깡에 손이 가요~”하는 노래일 테다. 과자를 배부르게 먹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TV를 보면서 우물거리다 보면 어느새 배가 불러온다. 뚜껑 열기까지가 귀찮고 첫 번째 과자를 입에 넣기가 번거롭지, 일단 시작하면 무의식 중에 계속 입에 털어 넣는다. 달콤하고 짭짤한, 빠져나오기 힘든 감옥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충치가 생긴 아들 녀석하고 치과병원엘 갔더니 의사 선생님 왈, 요즘 이런 친구들이 많다고 위로해준다. 물컵 대신 핸드폰 들고 양치하는 친구들 말이다. 녀석의 표정을 살폈지만 전혀 부끄러운 기색이 없다. 어쩌면 그 의사 선생님도 드라마 몰아보기 영상이나 영화 줄거리 요약 영상의 열성팬일지 모른다. 감옥은 어디에나 있고 아주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노래 한 곡 한 시간 듣기나 정치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극성 정치 영상물 등으로 감옥은 그 외연을 키우고 있다.

감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없지 않다. 그중 하나가 카*오톡 단체 채팅방 탈퇴다. 우리는 ‘OOO님이 채팅방을 나갔습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손절(인연을 끊는 것)’로 받아들인다. 학교 선후배 단톡방에 가입했다 치자. 200명 이상 속한 대규모 단톡방에 학교 이야기는 온데 간데없고 실없는 정치 얘기만 방을 채운다. 탈퇴하고 싶지만 그러질 못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알림 소리에 피곤하다. 대다수는 침묵하고 말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 소수가 선동하는 듯한 느낌도 싫다.

문자 하나 잘못 보내면 또 어떻고! 급한 마음에 얼른 지우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라는 문자가 뜬다. ‘뭐지?’ ‘무슨 내용이길래 급하게 지웠지?’ 단톡방은 삽시간에 삭제된 글이 뭘지 앞뒤 맥락으로 파악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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