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아이도 챙겨 볼 수 있어야 진정한 어른이다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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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욱
문화와 나눔 대표
리얼리즘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은 현재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여러 가지 단면으로 제시하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의 작품 중에는 다소 무거운 소재들을 다룬 것도 많다. 그런 그의 영화 중에도 무겁지 않은 소재로 시작해서 다소 코믹한 전개를 보여주는 영화가 하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화면이 오를 때에 남겨지는 여운이다. 그 여운은 결코 단순하다고 할 수 없는 감동을 남겨 준다. 우리말로는 ‘천사를 위한 위스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지만, 원제는 Angel’s Share, ‘천사의 몫’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스코틀랜드의 한 젊은이가 찌질한 청소년기를 보낸 결과로 재판정에 서게 된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의 앞날에는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보일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절망적이다. 그런 상태로 성인기로 진입한 그의 주변에 있는 이들 역시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보일 것 같지 않은 찌질한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바닥의 삶을 살던 청년이었지만 자신을 돌봐주는 한 명의 어른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주인공의 삶이 우연히 얻어진 기회를 통해 놀라운 반전을 한다. 그리고 그 재능을 바탕으로 삶을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찌질한 젊은이가 우연한 것처럼 보이는 기회를 만나는 과정이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나락에 떨어진 삶을 살고 있던 그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는 그를 편견 없이 챙겨주는 한 어른의 보살핌에서 마련된다. 그리고 그에게 ‘우연’이 될 기회도 만들어진다. 나약하고 방황하는 젊은이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기회를 제공해 준 그 과정은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된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의 따스한 마음에서 시작된,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보살핌에서 시작이 된 것이다.

한 사람의 재능은 운 좋게 일찍 발견되어서 그 재능을 단련시키는 과정을 거칠 수도 있지만,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될 수도 있다. 어떤 특정한 기회를 통해서 재능이 우연히 발견되는 삶의 장면은 단순히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작위적인 장면이 아니다. 심리학자 크롬볼츠는 그의 우연학습이론에서 이와 같은 맥락으로 ‘계획된 우연’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우연’이라는 것과 ‘계획’이라는 모순된 개념으로 구성된 이론이지만 진로 결정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이론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리고, ‘계획된 우연’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그 우연을 만들고 잠재적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그의 행동을 촉진하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맞고 있는 현재의 집단적 교육 환경 속에서는 진로 선택이 획일적이고 몰개성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환경에만 의존한다면 한 아이의 진로 선택 과정에서 ‘계획된 우연’을 만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아이들의 흥미와 적성을 파악하는 것은 철저하게 개별화되어야 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데에는 부모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다수 부모는 아이들에게 노력만을 강조하고 있다.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오래된 고정관념에 의존해서 말이다. 이렇게 부모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를 대신해서 객관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지원해 주는 이웃 어른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 역할이 바로 멘토의 역할이다.

‘멘토’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다. 전장에 나가는 오디세우스가 자기 아들을 친구 멘토르에게 맡겨 이른바 부모를 대신할 마을의 어른 역할을 하도록 한 것에서 시작이 된다. 좋은 멘토로서의 역량은 한순간에 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생각보다 쉽게 그 역량을 가질 수 있다. 이미 사회생활을 충분히 경험한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이 가지지 못한 자기만의 삶의 경험이 충분히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내 아이뿐만 아니라 남의 아이들도 챙겨 보겠다는, 이른바 선한 의지만 추가한다면 역량은 모두 갖추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나라의 모든 어른들에게 꼰대의 자세를 버리고 멘토로서의 역할을 하는, 든든한 마을 어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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