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사자*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8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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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사자*


                                                                  강현덕


나는 꿈을 수집하는 사자라고 해둘게

초원을 오래 걸어 당도한 원시의 사막

​지금은 만돌린을 타던 집시가 잠들었군 

꿈이라면 집시의 것이 가장 순결하지

세상을 떠돌다 만난 날것만 가졌으니

바람이 물 항아리를 엎기 전 재빨리 채취해야지

포효는 내 게 아니니 달은 떨지 말기를

몽환을 담당하는 밤의 정령에 의해

발톱도 거친 이빨도 진즉에 다 뭉개졌으니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에 있는 사자.




‘사자’와 ‘집시’에서 ‘샤리아르’와 ‘세에라자드’를 떠올리다

↑↑ 손진은 시인
연일 뙤약볕이 이글거리고 있다. 보름 전만 해도 장마 이재민들 뉴스가 나왔는데, 온 나라가 태양신전이 점령한 전쟁터 같은 열기에 휩싸이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은 아프리카 평원에 하얗게 남은 짐승의 뼈를 비추어준다. 이럴 때 이 여름밤을 시원하게 보내라고 우리 어깨를 툭 치는 작품이 있다. 강현덕의 「사막의 사자」다. 풀 한 포기 나지 않고, 영겁의 회의와 죽음만이 주인일 것 같은 황량한 사막! 하지만 사막이기에 오히려 환상은 작동한다. 『천일야화 Alf laylah wa laylah』가 바로 그 산물이 아닌가.

 이 작품은 그만큼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시인은 이 작품이 앙리 루소의 그림 「잠자는 집시」에서 발상했다는 각주를 붙인다. 기실 강현덕의 작품은 앙리 루소의 그림만큼이나 환상적이다. 하지만 루소와의 차별성은 첫째 수 초장에서 “나는 꿈을 수집하는 사자라고 해둘게” 라는 출발부터 드러난다. 꿈 수집가 사자!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사자의 이야기로 우리를 몰입하게 한다.

시인은 우선 자신의 경험하지 않은 일을 시로 형상화함에 있어, 자신을 대신해서 발화해 줄 만한 화자를 내세우는데, 놀랍게도 ‘사막의 사자’가 자아를 연기하는 화자로 등장한다. 독자들은 사자로 나타나는 화자의 언술 때문에 상위주체는 시인임을 뻔히 알면서도 더 가까운 거리에서 그 정서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중장 “초원을 오래 걸어 당도한 원시의 사막”의 주체는 사자일 수도, 만돌린을 연주하며 방랑하다 잠든 집시 여자일 수도 있다. 그들은 이미 ‘초원’이라는 생활공간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 사자는 찬찬히 집시를 보다가 “세상을 떠돌다 만난 날것”으로 가득한, 가장 순결한 꿈을 채취할 생각에, “바람이 물 항아리를 엎”어 말라버리기 전이라는 시간을 떠올리며 마음이 바빠진다. 그러면서 하늘에 뜬 만월을 향하여는 “포효는 내 게 아니니 달은 떨지 말기를”이라는 말을 남긴다. 시의 공간성이 확장되는 순간이다. 천지를 호령하는 사자의 용맹을 벗어버렸다는 선언이다. 이미 “몽환을 담당하는 밤의 정령”에 적신 영혼으로 상승되어 있는 것이다.

아라비아 설화 『천일야화』에는 어떤 아내든 첫날밤을 지낸 뒤에는 죽이겠다고 맹세하는 술탄 샤리아르와, 첫날밤 재미있는 이야기로 술탄의 관심을 끌어 목숨을 보존하는 데 성공하고, 마침내 술탄이 자신의 맹세를 포기하게 하는 세에라자드가 나온다.

이 시를 찬찬히 읽다보면 꿈 수집가 사자는 어느새 술탄(특히 “발톱도 거친 이빨도 진즉에 다 뭉개졌”다는 표현에서)으로, 세에라자드는 집시 여인(가장 순결하다는 꿈 이야기를 뿌린다는 의미에서)으로 화하는 지점이 있다. 우리의 미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다운 시를 만나는 기쁨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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