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측소이다(2)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11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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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의 구조와 수리적(數理的) 의미

↑↑ 하성찬 시민전문기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선덕여왕 때에 돌을 다듬어 대(臺)를 쌓았는데, 위는 모나고 아래는 둥글다. 높이는 19척이며 그 속은 비어서, 사람이 속으로부터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한다’는 기록이 있다.

기록의 신뢰성에 의문이 있기는 하나 『석씨계보(昔氏系譜)』에 의하면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에 석탈해왕의 16세손인 석오원(昔五源)이 첨성대 건축을 감독하여 돌을 다듬고 쌓아 올려 만들었다고 한다.

첨성대의 형태는 원주형(圓柱形) 구조물로서 높이가 약 9.48m, 밑지름 4.9m, 윗지름이 2.8m이고, 기단석으로부터 4.16m 높이에 거의 정남쪽으로 한 변의 길이가 약 0.95m의 정사각형 창문이 나 있다.

전체적 구조는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가 올려지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가 얹혀진 모습이다. 이와 같은 구조의 상징성을 살펴보면 아래는 네모지고 위가 둥근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의미한다.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것이다.

기단부 아래의 땅속에는 잡석과 받침돌, 그리고 기단부 서쪽으로는 일렬로 자연석이 놓여 있다. 기단부는 남쪽 변이 정남에서 동쪽으로 19도 정도 돌아서서 있는데, 이 방향은 북두칠성을 바라보는 방향과 일치한다. 또 13단에서 15단에 걸쳐서 정남에서 동쪽으로 약16도 되는 방향을 향하여 정방형의 창구가 나 있다. 창구의 내부 아래쪽은 잡석으로 채워져 있으며 그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는 형태이다.

19단과 20단, 25단과 26단에 동서남북으로 2개씩 장대석이 걸쳐 있어 정(井)자를 이루고 있다. 제27단의 원통 부위에는 각 4개씩으로 짜여진 정자석(井字石)이 두 단에 걸쳐 놓여져 정상부의 사각형을 이루는데 기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 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이것은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정상부의 정자석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자리를 바로 잡아서 떨어지지 않게 수리를 했다고 한다. 수리를 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때 방향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나, 현재는 남쪽 면이 정남에서 서쪽으로 약 8도 정도 돌아가 있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첨성대는 우리 민족의 수리적 탁월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종류의 구조물은 동아시아 3국 중 우리가 유일하다.

첨성대는 27단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선덕여왕이 신라 제27대 왕임을 상징한다. 여기에 맨 위에 얹혀진 정(井)자 모양의 돌을 합치면 28단, 즉 기본 별자리수인 28수(宿)가 된다. 그리고 또 첨성대를 받치고 있는 맨 밑의 기단석을 합치면 29가 되는데 이는 음력의 한 달에 해당한다.


기단 부분은 12개의 돌로 되어 있는데 이는 1년 12개월을 의미한다. 몸체 중앙의 네모 난 창을 기준으로 보면 창 위로 12단, 아래로 12단이 된다. 이는 일 년 열두 달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이 둘을 합치면 24가 되어 24절기가 된다. 1단에서 27단까지 사용된 돌의 개수 362는 음력 1년의 날 수와 같다는 주장도 있다.

또, 양력 1년의 날수와 맞추어 본다면 정자석과 기단석을 제외하고 1단에서 27단까지 362매, 남측 문주 2매, 상단(27단)의 판석 1매를 합하면 정확히 365매가 되어 1년의 날수와 같게 된다. 종래 석재의 수는 365개로 1년의 날수와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문주와 상단 판석 포함 여부에 따라 달라지므로 정확히 365개는 아니다.

1962년 당시 국립경주박물관장 홍사준은 기단부를 제외한 1단에서 27단까지 362매, 지대석 8매, 상부의 정자석 8매, 남측 문주 2매, 27단의 판석 1매로 도합 401매라고 주장하고 있다.

밑받침의 돌은 동서남북 방향이고 맨 위의 돌은 8방위에 맞추었으며 창문은 정남향이다. 정남으로 향한 창은 춘분과 추분에 태양이 정확하게 남쪽에 있을 때 햇살이 첨성대 밑바닥까지 환하게 비친다. 그러니까 동지와 하지에는 창문 아래 부분에서 광선이 완전히 사라지는 분점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지금도 정확하게 맞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그 당시 신라의 수리적 정밀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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