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활산성 정비사업 착착 진행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지구

이성주 기자 / 2007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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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는 22일 오후 2시 영상회의실에서 문화재 위원과 전문위원, 시 관계공무원 등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명활산성(明活山城) 정비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보고회 및 자문회의를 가졌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경주역사지구 명활산성 정비사업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시는 오는 2016년까지 10년간 사업비 400억원을 투자해 천군동 산334번지 일원에 소재한 명활산성을 연차적으로 정비해 보문단지와 연계한 탐방코스 개발로 문화재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주력키로 했다.

명활산성 복원으로 천년수도 방어선을 재현하고 세계에 신라문화의 우수성을 선양하고자 추진하는 이 사업은 명활산성 9.5km중 사업비 305억원을 들여 석성 4.5km를 복원 정비하고 26만7천300㎡의 사유지 매입 및 발굴사업에 95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이에 따라 시는 올해 사업비 1억원을 들여 용역기관인 한국전통문화학교에 의뢰해 명활산성 정비 기본계획을 이 달 말까지 수립키로 하고 내년도에 사업비 3억원을 들여 명활산성 일대 수목제거 사업과 문화재 발굴 및 실시 설계에 들어갈 방침이다.

사적 제47호로 지정된 명활산성은 경주의 동쪽 명활산 꼭대기에 쌓은 신라 산성으로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신라 실성왕(實聖王) 4년(405)에 왜구가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만들어진 성임을 알 수 있다.
원래 토성이던 것을 진흥왕 때를 전후한 시기에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발견된 진흥왕 12년(551)에 세운 명활산성작성비로 보아 석성 축조년대를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성을 쌓는 방법에서도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한 신라 초의 방식을 보이고 있고 눌지왕 15년(431)에는 왜구가 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는데, 이는 이 성이 신라의 수도인 월성을 지키는데 중요한 곳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월성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했던 자비왕 14년(475)~소지왕 10년(488)까지의 13년간은 임시 궁궐로 사용되기도 했다.

진흥왕 15년(554)에 다시 쌓았고, 진평왕 15년(593)에는 성을 확장했으며, 선덕여왕 16년(647)에 상대등 비담과 염종 등이 이곳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김유신장군이 평정한 이 산성은 경주의 서쪽에 있는 서형산성(西兄山城), 남쪽의 남산성(南山城), 북쪽의 북형산성(北兄山城)과 함께 신라의 도성을 지키기 위해 경주의 동쪽에 마련된 산성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지금은 많은 부분의 성벽이 무너져 부분적으로 옛 모습을 볼 수 있으나 토성과 석성의 흔적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명활산성은 2000년 12월 2일 남산지구(南山地區), 월성지구(月城地區), 대릉원지구(大陵苑地區), 황룡사지구(皇龍寺地區)와 함께 경주역사유적지구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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