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은 지역사회의 힘'-[5]도초마을

율동 도초마을 버스 노선 변경으로 주민들 큰 불편

경주신문 기자 / 2015년 0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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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로 오가는 버스 노선이 멀어져 외출 한 번 하기 어렵다는 도초마을 어르신들.
ⓒ (주)경주신문사


율동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초마을은 신라 시대 경주에서 남으로 길을 따라 나오면 풀이 있는 곳이 처음으로 보인다 하여 불려진 곳이다. ‘경주풍물지리지’에 따르면 마을이 산의 베개와 같은 모양이라 하여 ‘뒷침이마을’로 불리우다가, 조선 초기부터 ‘뒷초(草)’로 고쳐 불렀으며, 일제 때 ‘도초’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당목은 두 그루의 포구나무로, 제관은 복(服)을 입지 않은 마을사람 중에서 정한다. 제물은 거두어서 마련한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경주톨게이트를 지나 100미터 즈음에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이 곳 도초마을은 복합영농을 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토마토와 벼가 주 작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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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초마을을 오른쪽으로 끼고 조금 거닐다 보면 시원하게 트인 전경과 형산강 물줄기가 나온다. 최근 이곳은 시원한 경치를 찍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곳은 100세대(250-300여명)가 살고있으며, 마을 주민들간의 단합이 자랑이다. 노인회장의 연락 한 통이면 언제든지 모이고 마을잔치나 행사가 있으면 참여도가 높다.

↑↑ 단합이 잘되는 마을인 만큼 이날 건강프로그램을 다같이 즐겁게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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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시급한 것은 마을을 오가는 교통문제, 작년 10월 24일부터 버스노선이 너무 길어져
도초마을 어르신들의 가장 큰 민원사항은 바로 마을로 들어올 때의 교통문제라고 했다. 어르신들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4일부터 버스의 노선이 바뀌어 시내에서 마을까지 들어오는 시간이 대략 한 시간이 넘는다고 한다.

↑↑ 최병조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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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조(83) 노인회장<인물사진>은 “마을입구가 고속도로 톨게이트 출입구 근처에 있다 보니 버스가 유턴 하기가 어려워져 노선이 바뀌었다. 바뀐 노선이 너무나 멀어져 노인들이 시내 다녀오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고 했다.

실제로 도초마을의 입구는 경주톨게이트의 하이패스차량의 출입구라인과 일직선으로, 차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다니기 때문에 버스가 유턴을 해서 마을로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마을의 어르신들은 경주시에 민원을 많이 제기했다고 한다. 경주시에 따르면 도초마을의 입구는 톨게이트 출입구와 인접해 경주로 들어오는 차량의 교통정체를 막기 위해 신호등을 달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상황에 따라 버스노선은 180도로 바뀌었다. 우선순번이던 도초마을이 노선의 마지막 종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 어르신은 “노인대학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항상 걱정한다. 바뀐 노선으로 인해 중간에 내려서 걸어올 경우, 그 거리가 너무 멀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최근 폭염으로 인해 조금만 걸어도 우리 같은 노인들은 위험하다. 마을주민들과 여러 번 민원을 넣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며 토로했다.

현재 도초마을로 쉽게 진입하기 위해 톨게이트 주변에서 도로확장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언제 완공될지 몰라 마을 어르신들은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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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피해, 방범용 CCTV도 없어
마을 어르신들은 또 다른 문제점으로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들었다. 너구리와 고라니 등의 야생동물이 자주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야생동물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포획할 수도 없고, 노인들이 많은 마을이다 보니 대응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산과 형산강을 끼고 있는 도초마을의 자연환경 특성상 야생동물의 피해가 잦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마을 어르신들은 “우리마을은 CCTV도 없어서 인근 마을 청년회에서 방범순찰을 돌아주고 있다. 시에서 대책을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도초마을 자랑은 오도화 할머니의 자식농사라고 한다. 오도화 할머니의 아들인 김형천 씨는 현재 부산에서 부장판사, 손자 김현재 씨는 변호사를 하고 있다. 마을어르신들은 모두 입을 모아 오도화 할머니의 자식농사를 자랑하며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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