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은 지역사회의 힘'-[8]송선1리 경로당

어르신들의 노여움 진심어린 사죄로 풀어야

경주신문 기자 / 2015년 09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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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적한 시골마을 건천읍 송선리에서는 ‘똥 공장’이라는 큰 파도가 지나갔다. 고비는 넘겼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 (주)경주신문사


송선리는 경주군 서면 지역에 편입돼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송전리, 선동리, 사동리, 창리, 우중리를 통합해 송전리와 선동의 머릿 글자를 딴 선동리라 정했다. 이후 1973년 건천읍에 편입됐으며 송전과 선동, 달래창, 선성을 송선1리로 절골과 우중골을 송선2리로 정했다. 송선리에는 마애불상군이 유명하다. 산89번지에 있는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은 국보 제199호로 지정돼있다.

통일신라 이전의 작품으로 높이가 약 12m의 암석이 ‘ㄷ’자 형으로 솟아 거대한 자연석실을 형성하고 있다. 북쪽 바위의 여래상을 중심으로 동쪽 바위에는 보살상, 남쪽 바위에는 보살상과 명문이 조각돼 있으며 삼존의 형식을 이루고 있다.

송선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처음 이곳 경로당을 찾았을 때 경로당에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르신들로 가득할 줄 알았던 경로당에는 한 두 분의 어르신만이 경로당을 지키고 있었다.

↑↑ 이기축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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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축 이장<인물사진>은 “날이 좋아 어르신들이 다들 일하러 갔다”며 이곳 어르신들은 할 일이 많아 바쁘다고 귀띔했다. 이곳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지만 건천의 특산물 중 하나인 버섯을 재배하는 농가도 많고 논농사 등도 많아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일거리에 매달려 있어야만 했다.

이 이장은 “비가 오는 날에 다시오면 경로당에 어르신들이 많을 겁니다. 아니면 매월 1일은 온 동네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 다 함께 식사하고 회의하는 날이니 그때 오시죠”라고 말을 건넸다.

이장의 말에 따라 다시 찾은 지난 1일 송선1리 경로당은 거하게 점심을 마친 온 동네 어르신들로 작은 경로당은 엉덩이 하나 붙일 곳이 없을 정도였다. 할머니들은 식사를 준비하고 마무리 설거지까지 나눠서 하고 있었다.

할아버님들은 다른 방 한쪽에서 여유롭게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식사 후 설거지를 맡아야만 하는 요즘 남자들로선 여간 부럽지 않은 모습이다. 송선리 어르신들은 옹기종기 둘러 앉아 동네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이 동네는 장수촌이야! 내가 91세인데 아직 위에 형이랑 누나가 있으니 말이야. 송선리는 물이 좋고 공기가 좋아 그런지 다들 오래 사는 것 같아”

어느 할아버지의 말처럼 송선리는 예로부터 물이 맑은 곳이었다. 이곳의 물은 상수원으로 건천 지역민의 식수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단석산 밑자락에 자리해 공기 또한 맑다.

“예로부터 선녀가 사는 동네라고 불렀어. 그래서 지금도 선녀들이 많이 있다구”라는 어느 할머니의 말에 “선녀들 다 죽었구먼”이라 받아치는 할아버지의 한마디에 경로당은 한바탕 웃음이 넘쳐났다.

어르신들은 누군가 경로당을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자 어느새 환하던 웃음은 원망과 분노로 변하고 있었다. 누가 이처럼 순박한 어르신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을까?

↑↑ 송선리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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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공장은 막았지만 가슴 속 억울함은 뚫리지 않아”

2011년 송선리 어르신들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선동리 주택 10m 앞에 분뇨처리장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처음엔 당시 이장이라는 사람이 신재생에너지 공장이 들어설 거라며 보상해준다고 말해 그대로 믿었지. 똥 공장인 줄 알았으면 누가 허락했겠어”라고 말했다.

마을 앞에 들어설 분뇨처리공장을 막기 위해 어르신들이 나서야만 했다. 처음 건천 주민들의 도움으로 비용을 마련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송비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송선리 주민들은 조상들이 마련해 놓은 마을소유의 땅을 팔아 소송비용을 마련했다.

“그 땅은 대대로 내려온 마을 공동의 땅이었지. 그 땅에서 생산된 작물을 팔아 온 동네 주민들이 다 함께 일 년에 한 번씩 여행 다녀오고 했어. 하지만 소송비용이 부족해 두 필지 중 하나를 매각해야만 했지. 똥 공장이 들어와 마을을 망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어”

어르신들은 이제 일 년에 한 번 가던 여행을 자주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을을 지켰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쓴웃음을 보였다. 송선리 분뇨공장을 둘러싸고 지루하게 이어온 소송은 결국 대법원이 송선리 주민의 손을 들어주며 일단락 된듯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한이 서려 있었다.

“상수원이 흐르는 곳에 똥 공장을 설치하려는 업자는 물론 그것을 허락해준 시도 명백한 잘못이 있다. 결국 소송에서 이겨 마을을 지켜냈지만 남은 건 소송에 들어간 빚뿐이다”

↑↑ 똥 공장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의 모습이 생생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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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죄송하다 사죄하지 않아”

송선리 어르신들의 분노에는 단지 소송비용 등의 금전적 손해가 아니다. 시 차원에서의 진심 어린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실수는 할 수 있다. 실수했다면 진심 어린 사과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와 시장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송선리에 폐기물 공장을 허가내 주었다. 똥 공장에 이어 폐기물 공장까지 시가 송선리 주민을 무시하고 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듣던 기자가 그들을 대신해 ‘죄송합니다’라는 건넸다. 아무런 관련없는 이의 사과였지만 그토록 화를 토해내던 어르신들의 얼굴에 금세 밝은 미소가 번졌다. 죽은 이들의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송선리 주민들에게 그토록 필요한 ‘진심 어린 사죄’는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까? 씁쓸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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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필혁 기자 / 사진=엄태권 대리
진행=이성주 편집국장, 이종백 서부지사장, 엄태권 대리 / 이원조 전문강사
자료참조=경주풍물지리지(김기문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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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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