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철도 어떻게 할 것인가?-해외 폐철도 활용 사례2

폐철로 성공 열쇠는 시민

이필혁 기자 / 2016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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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차 밖으로 두 다리를 뻗을 수 있는 퍼핑 빌리 열차는 멜버른 지역 단테농의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어 관광객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 (주)경주신문사


경주 중심부를 관통하는 철도로 시민들은 많은 것을 감내해야만했다. 주민은 철도로 인해 생활의 단절은 물론 소음 등의 주거환경의 문제와 도로교통의 단절 등을 격고 있지만 이런 현실은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당연한 것이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2003년부터 시작된 부산과 경주, 포항 간 복선전철 사업이 오는 2018년이면 완공돼 기존 선로를 폐선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2020년 건천~현곡을 잇는 중앙선 경주구간도 폐선될 예정이다. 폐선으로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도의 기능이 상실되지만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는다.

여기에서부터 폐철도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폐선부지의 방치나 난개발은 오히려 경주의 미래발전을 가로막게 된다. 폐철도 부지와 철도역사가 경주의 미래 발전을 견인하는 공간으로 재창출될 수 있도록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활용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에서 폐철도 활용 사례로 시민 참여로 공원화를 이룬 ‘광주 푸른길’과 상업개발 방식인 정선 레일바이크를 소개했다. 이번 회에서는 호주 퍼핑 빌리가 세계적 관광지로 성장한 원동력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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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년의 역사를 지닌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퍼핑 빌리는 호주 멜버른의 외곽에 위치한 철도다. 오래된 철로와 수려한 자연풍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증기기관차 등은 관광객의 향수를 자극한다. 하지만 오래된 향수만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모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퍼핑 빌리도 마찬가지였다. 퍼핑 빌리 노선은 1962년 멘치스 크리크 노선을 시작으로 처음 10만8000명이 증기기관차를 이용했다. 이후 1965년에 에메랄드 노선이 개통되자 퍼핑 빌리를 이용하는 관광객이 12만4000명으로 늘어났다. 1975년에 레이크사이드 노선 개통된 이후에는 이용자가 16만2000명 선으로 증가했으며 1998년에는 젬브루크까지 전 노선 개통된 이후에는 연간 20만 명 이상의 이용객이 꾸준히 퍼핑 빌리를 방문했다.

↑↑ 자원봉사자들은 관광객과 함께 퍼핑 빌리를 즐기고 있다.
ⓒ (주)경주신문사


꾸준한 이용객 증가에도 불구하고 연간 수입은 그리 높지 않았다. 퍼핑 빌리 열차 요금이 오르기 전 퍼핑 빌리를 찾는 이용객의 1인당 지출은 10달러 정도였다. 1991년 연간 이용자가 20만 명 가까이로 증가했지만 퍼핑 빌리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200만 달러로 우리 돈 17억 원에 불과했다. 이 수입은 노후된 열차를 보수하고 유지하는 비용, 철도 정비공, 기차 운전수 등 기술이 필요한 인건비 등으로 쓰였다.

하지만 퍼핑 빌리에는 풀타임 근로자와 파트타임 근로자 등 급여를 받는 50여 명에 종사자 이외에도 600여 명의 종사자들이 근무하는 곳이다. 일 년 363일, 하루 7회에 이르는 열차 시간에 맞춰 기관차 운행과 역사 근무, 식당, 티켓, 신호원, 상품 판매원, 안내 등의 일이 이들의 몫이다. 이들은 바로 퍼핑 빌리를 움직이는 자원봉사자들이다.

↑↑ 자원봉사자들은 관광객과 함께 퍼핑 빌리를 즐기고 있다.
ⓒ (주)경주신문사


“자원봉사자들의 혜택은 따뜻한 커피 한잔”
퍼핑 빌리에 종사하는 자원봉사자는 약 600여 명으로 퍼핑 빌리와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봉사자도 있지만 대부분 차로 1시간 이상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한 달에 2회에서 3회가량 퍼핑 빌리에 출근해 자신이 맡은 임무를 묵묵히 해내고 있다. 봉사자들이 퍼핑 빌리에서 근무하며 생기는 금전적 수입은 전혀 없다. 오로지 따뜻한 커피 한잔이 이들에게 주어지는 전부다. 하지만 봉사자들은 퍼핑 빌리에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말한다.

↑↑ 슈퍼바이저로 근무중인 피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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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그레이브 역에서 관광객에게 열차 탑승과 안내를 도와주는 마이크 씨는 퍼핑 빌리에서 근무한 지 10개월 된 초보 봉사자다. 퍼핑 빌리 봉사자가 되고 싶어 서류와 면접 등의 절차를 거친 뒤 다양한 교육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는 마이크. 그는 퍼핑 빌리에서 근무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원봉사를 하기 전에는 풀타임으로 일하다 은퇴를 했습니다. 은퇴 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죠.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루하지 않은 일이요. 그리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더욱 좋죠. 그런 점에서 퍼핑빌리는 저에게 특별한 곳입니다. 전 세계의 행복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고 행복을 전해줄 수 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행복합니다. 퍼핑 빌리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죠”

이 곳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위해 봉사를 선택했다. 이들은 봉사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지역 경제도 살린다는 자부심으로 자원봉사를 이어간다.

↑↑ 맨 왼쪽 로스 패팅턴 소장.
ⓒ (주)경주신문사


멜번 외곽에 사는 로스 패팅턴 씨는 올해 74살의 고령의 봉사자다. 13년째 퍼핑 빌리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는 그는 판매원, 차장 등을 거쳐 이제는 벨그레이브 역의 소장으로 임명됐다.

“제 임무는 옛날 방식 그대로 수동으로 열차 시각표를 변경하고 열차 출발 전 승객의 안전을 살피고, 종소리로 열차 출발을 알리는 등 열차 운행에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은퇴 후 아직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르실 거에요. 이곳에서 봉사하기 위해 1시간 이상 운전해 옵니다. 기름 값도 들고 식사도 직접 해결해야 하죠. 봉사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따뜻한 커피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퍼핑 빌리가 제공해주죠. 그래서 더 열심히 봉사합니다”

↑↑ 퍼핑빌리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 봉사자들.
ⓒ (주)경주신문사


봉사자들은 대부분 은퇴 전 준비한 은퇴연금으로 은퇴를 맞이한다. 호주에서는 법적으로 주급의 일부를 연금으로 납부하게 돼 있다. 풀타임과 파트타입을 구분하지 않고 고용주가 연금 일부를 함께 적립하는 형식이다. 그들은 퍼핑 빌리가 세계적 관광지로 성장하고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라 말한다.

↑↑ 퍼핑빌리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 봉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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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핑 빌리가 유명해지면 인근에 커피전문점이 생기고 피쉬앤 칩스 가계의 매출이 조금 더 오르겠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기 위해 멜버른을 방문하고 호주를 방문하는 데 있습니다. 퍼핑 빌리를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게 보전하는 것에 있습니다. 거기에 시민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지켜내고 보존해가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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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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