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특별인터뷰/경주최부자 주손 최염 선생

2019년, 갑질 사라진 건강한 사회를 위해…

박근영 기자 / 2019년 01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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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것이 세상살이 현명한 원리!!”

“갑질이라는 것은 권력이건 부건 많이 가진 사람이 적게 가진 사람에게 가하는 가혹행위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가장 현명한 원리인데 이를 놓치고 있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대한항공가의 갑질 사건과 양진호 씨 갑질 사건을 비롯해 지난 2018년은 어느 해보다 심각한 갑질문제가 사회이슈가 됐고 이에 대한 저항으로 각종 인터넷상 고발과 제보가 빗발쳤다. 여기에 여성들에 가해진 성폭력과 성희롱 등에 대한 미투 고발도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중요한 해결과제로 부상했다.
이런 사회적 이슈에 대해 세대를 이어가며 나눔과 상생의 정신을 지켜온 경주최부자 가문의 주손(胄孫) 최염 선생(87,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명예회장)은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표현한다.
“저희 집안 가훈이 사회현상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말씀들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자중하게 됩니다. 조상님들이 오래도록 부와 명예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어떤 일이건 은연 중에 조용히 행해왔기 때문인데 후손된 입장에서 우리 집안이 잘났다고 떠드는 것은 오히려 조상님들께 누가 될 수 있습니다”
최염 선생은 그렇지만 요즈음의 사회 현상에 굳이 대입하자면 남들은 7할도 모자라 8~9할의 소작료를 받던 시대에 과감히 반분작(50:50분할)으로 소작료를 정한 파격적인 결정이 가장 주목받을 만하다고 추천한다.
↑↑ <좌> 경주 교촌마을 전경.<경주시 제공> <우> 최염 선생.

“그러고서도 이앙법이라는, 당시로서는 아주 특별한 농사기술을 도입해 실제 거두는 소작료는 훨씬 많아진 것이 부자가 되는 원동력이었지요”
최염 선생의 말에 비춰보면 요즘 같이 경기가 어려울 때일수록 기업들이 기술개발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화된 기술이야말로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임을 부를 이루던 초기 선조들의 지혜에서 배울 법하기 때문이다.
“권력이건 부건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에 기대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것도 어쩌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심리작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심리가 결국 자신과 집안을 망치는 단초가 되지요”
최염 선생은 본가 사랑채에 ‘대우헌(大愚軒)’과 ‘둔차(鈍次)’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교촌의 본가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이 현판의 의미를 한 번쯤 되새겨 볼 것을 권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리석게 보일 만큼 나누며 산 최부자 선현들, 앞에 서서 돋보이기보다 뒤쪽에 슬쩍 숨어 자신을 낮춘 채 약하고 가난한 세상과 소통한 최부자의 정신이 이 현판들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문의 정신과 갑질 문제에 대한 해법만을 논하기에는 최염 선생 안색이 아무래도 어두워 보인다. 최염 선생은 한 해 한 해 고령에 이를수록 조바심이 일어난다고 역시 조심스럽게 털어놓는다.
“아직 영남대학교가 할아버지의 소원에 부합하는 참된 교육의 장이 되지 못한 채 그릇된 권력의 희생물로 남아 있습니다. 생전에 학교가 정상화 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조상님들 뵐 면목이 없을 것입니다”
영남대학교는 과거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통령 시절 권력을 앞세워 합병한 아픈 역사의 산물이다. 대구대학은 최염 선생의 할아버지이신 독립운동가 문파 최준(1884년~1970) 선생의 주도하에 대구영남의 유지들이 함께 설립했고 이후 경주최부자 가문의 전답과 임야는 물론 사는 집터와 선산까지 문자 그대로 모든 재산을 희사한 대학이다. 이런 학교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력 아래 합병 된 것도 모자라 그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사로 재직하며 학교의 실권을 쥐고 있던 기간에는 학교에 기부된 경주최부자 가문의 재산이 대거 싼 값에 매각됐음은 물론 심지어 선산마저 후손들 모르게 팔려나갔다.
“그런 재산을 돌려받자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아직도 이 학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사진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고 그로 인해 많은 폐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새마을운동 정신 연구, 박정희 리더십 연구 같은 일들로 대학재정이 피폐해지고 명예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학발전을 위해 단 한 푼의 비용도 내놓지 않은 부녀가 오랜 기간 학교의 주인행세를 한 것도 모자라 아직도 그들의 세력이 지배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대학입니까?”
그래서 2019년은 여느 해보다 더 분주해질 지도 모르겠다는 최염 선생에게서 ‘할 일은 많지만 시간이 없음’을 의미하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의 고사가 떠오른다.
완연한 백발의 노선생이 일평생 지켜온 경주최부자 정신이 2019년 우리사회를 울리는 경종이 되기를 바라며 영남대학이 문파 선생의 뜻에 부합하는 참된 대학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교육당국과 사회각계의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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