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인생 60년·도예 30년, 세계 누비던 ‘이종능’ 작가-마침내 고향 예술혼에 비춰 보려는 토흔의 바람

한국 도예의 변천 만큼이나 다양한 변화와 연이은 성공

박근영 기자 / 2019년 03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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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예가 지산 이종능 작가.

우리나라 도예사(陶藝史)에서 지산(芝山) 이종능 작가를 능가할 만큼 도전적이고 그런 한편 성공적인 작가를 찾기란 쉽지 않다. 토기(土器)에서 도기(陶器)로 도기가 청자, 분청자, 백자, 청화백자 등으로 진화하는 순간의 모험과 내적 갈등, 그 결과에 탄성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순간의 변화 과정만큼을 이종능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그러면서도 그 변화가 언제나 만족할 만한 평가로 귀결됐고 도자기 애호가들의 선택을 유도했다.

그렇다고 토흔(土痕)으로 대별되는 그의 기본적 작품관이 흔들린 것은 아니다. 흙과 불, 유약의 만남이 제각각 자신의 특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중재하는 작가 특유의 작법은 이미 오래전 일가(一家)를 이뤘다. 달항아리의 풍족함과 토흔의 질박한 비대칭, 물방울 다기류의 소담스러움과 과감하게 평면을 구사한 최근 작품들까지 그의 변화는 완고하면서도 파격적이다.

30년 도예 외길의 성과는 그가 대한민국 대표 도예가라는 이름으로 이벤트화 된 것으로 인정받았고 세계 각국의 한국 문화원이 그를 초청해 전시회를 연 것으로 그 가치가 증명됐다.

국내외 유명 소장가들의 애장품으로 그의 작품이 각광 받는 것으로 토흔의 현실적 위상도 각인됐다. 다른 예술장르와 달리 유독 척박하고 소외된 도예분야에서 ‘이종능’ 이름 세 글자를 각인하고 고액의 작품가를 부를 수 있게 된 것 자체만으로도 현대 도예가(陶藝家)에서 기록할 만한 일이다.

2004년 세계 각국 글로벌기업 최고 경영자들의 찻잔을 제작한 것에서부터 2007년 대영박물관 백자 달 항아리 특별전, 이후 도쿄, 오사카, LA, 뉴욕, 워싱턴에서 열린 초대전 등을 굳이 거론하는 것은 노파심 때문이다. 오사카 역사박물관과 우리나라 대통령실 등 내로라하는 곳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한 사실들을 열거하는 것 역시 지나친 부연설명이다. 그의 작품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은 국내외 평단의 소감을 말하고 싶지만 그 역시 큰 의미가 없다. 예술가는 오로지 자신의 작품으로 말할 뿐, 그의 작품을 대하는 순간 공통적으로 느낄 만한 감흥이야말로 그간의 유명세나 평단의 평가에서 떠난 맨몸 그대로의 이종능과 토흔으로 각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키운 산천이야말로 가장 큰 스승임을 자각한 듯 자신의 기량을 그 산천에 비추어 보려는 심정.
그러나 이 모든 사족(蛇足)들이 고향 경주에서 전시회를 구상 중인 그에게는 다 필요한,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달되기 바라는 노심초사의 단면들일 뿐이다. 5월 중순 경 이종능 작가는 그의 인생 60년, 도예인생 30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 방문전을 기획 중이다.

“고향에서 작품전을 연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경주에도 뛰어난 예술혼을 가진 도예가들이 계실 것이고 신라의 후예답게 수준 높은 안목을 가진 애호가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분들의 시각에서 제 작품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을 것입니다”
다른 어떤 곳에서의 작품 전시회보다 고향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그의 소망은 금의환향류의 자만의식이 결코 아니다.

자신을 도예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이 어려서부터 눈 익게 보아온 경주의 예술과 유적과 산천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다. 마치 오랜 동안 집을 떠난 아들이 온갖 데 떠돌며 세상을 공부하다 홀연히 고향의 넉넉한 품이 그립고 그를 키운 산천이야말로 가장 큰 스승임을 자각한 듯 조심스럽게 자신의 기량을 그 산천에 비추어보려는 듯한 모습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깊이 생각해서 하나씩 마무리 지어나갈 예정입니다. 다만 연말에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에서 전시회가 예정돼 있으므로 시기를 고려할 때 상반기 중에는 경주에서 전시회를 열고 싶습니다”

만으로 예순, 중노(中老)의 나이지만 그의 몸과 정신은 다행히 굳건하고 그의 열정 또한 젊은이 못지않다. 30년 넘은 작품기간은 어쩌면 고향에서 이립(而立), 또 다른 성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때문에라도 그의 작품에 쏠릴 경주의 평가가 몹시 궁금하다. 경주사람과 경주에 잦아있는 신라 예술혼은 그를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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