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시인 조희길 선생-서울 시인이 경주 선비와 통하면 벌어지는 일

인품과 작품에 반한 시인 시집표지에 기증한 선비의 소나무 그림!

박근영 기자 / 2019년 0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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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 도록을 펼쳐 보며 담소 나누는 최병익 선생<좌>과 조희길 선생<우>.

전문 경영인이자 세계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시인 조희길 선생, 중봉(中鋒)의 경지에 이르러 붓의 묘리를 유감없이 떨치는 선비 서예가 남령 최병익 선생. 서울과 경주에서 제각각 활동 중인 두 거장이 지난 8일 오후 조희길 선생의 ‘나이스 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21일까지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일주일간 열릴 작품 전시회 준비로 상경한 남령 선생이 조희길 선생을 방문한 것.

치열하게 바쁜 서울생활, 더구나 2000명 가까운 직원들과 온갖 외부 인사들을 만나느라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기업체 사장에게 뜬금없이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는 남령 선생 모습이 어이없었다. 사전 약속도 없이 무턱대고 만나자고 하는 것은 서울사람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런데 전화기를 타고 오는 목소리에 반가움이 철철 넘친다. 짧은 전화를 끝낸 남령선생. “오라 카시네···” 하고는 차에 오른다.

“하이고, 다른 분도 아니고 제가 무지 존경하는 남령 형님이 오셨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 봬야지요!!”

경주 사람들 행사, 경주사람 일이라면 소홀히 여기지 않는 조희길 선생이지만 이렇게 각별할 줄은 예상 밖이다.

“오래 전 후배 한 명이 형님 전시회에 와보라 해서 갔다가 형님 작품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나는 글씨를 잘 볼 줄 모르고 그림에도 문외한이지만 ‘턱’ 보니까 ‘딱’ 와 닿더군요. 그 자리에서 당시의 내 경제수준에 맞을 법한 그림 한 점을 사고 싶어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생각보다 훨씬 가격이 높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중략) 결국 그 그림은 제 것이 되었지만 그때부터 형님과 형님 작품을 흠모했지요!”

그런 인연으로 고향 경주에 들렀다가 시간을 쪼개 남령 선생의 집이자 서실인 필소헌(筆笑軒)을 방문해 정담 나누고 그때 심상이 하도 좋아 필소헌을 소재로 시까지 썼다는 조희길 선생.


필소헌에서

                                                               
                                                   조희길


먹향
솔바람
길이 아닌 길은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 같은 청빈
그윽한
선비 미소

꼿꼿한 검정고무신의 생활
울타리 없는
적당한 크기의 마당
순종 잘할 것 같은
백구
한 마리

맘속으로
슬쩍 손이 가는
자칫 도둑맞기 좋은 참한 함지박 돌이
마당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건너편 고택와당에서
희미하게 전해오는
봄의 소리···

그래,
이래
살아도
좋을 듯하구나



이런 조희길 선생의 시심 넘치는 정성에 남령 선생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조희길 선생이 2017년 6월 낸 두 번째 개인시집 ‘시조새 다시 날다’ 표지 디자인을 위해 기꺼이 선생의 대표작인 소나무 그림을 허락한 것. 이 시집표지는 당시 많은 방송과 신문의 뉴스의 문화동정을 장식하며 조희길 선생의 시와 함께 자연스럽게 남령 선생의 작품까지 세상에 알렸다.

특히 이 시집 출판기념회 당일 조희길 선생은 시집 표지를 설명하며 ‘이 그림이 경주출신의 대한민국 최고 서예가 남령 최병익 선생의 작품’이라 극찬하며 마침 남령 선생을 대신해 기념식에 참석한 남령 선생의 딸 최재희 양에게 ‘필소헌에서’를 낭독시켜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물했다.
서로 다른 정점의 만남과 소통!

-‘인사동 남령 전시회’ 홍보 전령사 자청한 조희길 선생, 약속 차곡차곡 이행
이날 남령 선생을 만난 조희길 선생은 사무실, 남령 선생의 소나무 그림 밑에서 업무를 봐가며 남들에게 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고충을 토로하는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담소를 나눴다. 남령 선생은 조희길 선생의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번민을 선비다운 차분함으로 감싸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음(知音), 두 거장이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는 모습 자체가 한 편의 시요 솔향 가득 풍기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서울시인과 경주선비, 아니, ‘셔블시인과 서라벌선비’의 만남은 급기야 술자리로 이어졌다.

마침 이날은 조희길 선생이 하루 전의 과로로 허리통증이 심해 한방치료를 예약해둔 날. 그러나 이 병마조차도 두 지기의 정담을 막지는 못했다.

“형님 만나 말씀 나누다 보이 허리 아푼 게 다 날아가삐랬네요. 인자 진짜 가뜬합니더”

조희길 선생이 아이 같은 웃음을 흘리며 숫제 허리를 뒤틀어 보이기까지 한다.

“내가 머라꼬, 내 같은 촌사람을 영명한 시인이 이래 좋게 봐주이 이게 보통 영광이 아니라···”

이날 두 예술인은 무려 10시간 넘게, 자리를 옮겨가며 붙어 앉아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막걸리가 몇 통 없어졌는지 시간이 어떻게 흐른 지도 몰랐다.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이라도 꼭짓점에서는 서로 소통된다는 말이 실현되는 현장이었다.

경주와 서울에서, 시와 서예에서 서로 다른 정점을 향해 달려온 이들이 찰나의 순간에 합치되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자리에서 조희길 선생은 자신의 사업상 친분 두터운 방송·언론사들에게 남령 선생의 작품전시회를 충분히 보도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고 경주 출향인사들을 비롯한 많은 지인들에게도 전시회를 소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한 치도 틀림없이 바로 실행됐다.

이튿날, 남령 선생은 예정보다 하루를 더 서울에서 머물렀다. 조희길 선생의 소개로 중요한 인사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하루가 더 지나고 나서 여러 방송·언론 매체들이 남령 선생의 전시회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조희길 선생의 주선에 따른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진심 어린 시인이 담백한 선비를 만나면 이런 일이 다 벌어지는 것이다.

마침 조희길 선생은 본지 서울지사가 본격 가동한 후 제13회 세계문학상 수상이란 큰 사건으로 첫 번째 보도된 주인공이다. 최병익 선생은 지난 15일 부터 열리고 있는 서울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이 코너를 장식한 18번째 초대손님이다. 이런 두 예술인의 인연이야말로 ‘셔블&서울·경주 사람들’이 찾은 최고의 미담이자 이 코너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특종 그 자체다. 이들의 바탕에 ‘경주’라는 깊고 푸른 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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