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품격 높인 조희군 시인-경주문학지도 완성으로 문학도시 경주의 또 다른 발견

경주를 노래한 시와 시인, 잊혀진 명사들 흔적 찾아 빛내는 경주 문학의 파수꾼

박근영 기자 / 2019년 0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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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문학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조희군 시인.

서양에서는 도시의 품격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소재로 문호(文豪)를 꼽는다.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그 도시에서 나고 자랐거나 그 도시에서 작품을 남겼다면 그가 살던 집이나 머물렀던 호텔은 반드시 명소가 되어 세계 도처에서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최근 우리나라도 이런 기류에 적극적이다. 훌륭한 학자나 시인을 숭배하고 문학가의 생가를 복원하거나 표석 세우기에 바쁘다. 심지어 상징적인 문학가가 없는 도시에서는 현존하는 작가의 기념관까지 지으면서 도시의 문화적 우월성을 과시하고 이를 중심으로 외래 관광객들이 몰려오도록 마케팅에 열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풍조 이전에 경주에는 이미 경주의 문학 알리기에 혼신을 다해 온 시인이 있다.

경주가 유적만 남은 박제된 도시가 아니라 1000년 문화적 자양분이 넘쳐흐르는 보고임을 증명하는 지도가 지난 2018년 10월 조희군 시인에 의해 세상에 나와 있다. 이름하여 ‘경주문학지도’. 경주를 문학으로 밝힌 주옥같은 시비들을 모은 경주문학의 보물지도다.

“경주는 신라 유적들이 너무 많아 이들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있지만 반대로 이로 인해 다른 시대의 유적이나 다른 장르, 특히 문학적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왔습니다. ‘경주문학지도’는 감추어져 있던 ‘문화도시 1번지 경주’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드러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지난해 경주에서 개최된 국제 펜클럽 회의에 맞추어 제작된 이 지도는 조희군 시인이 몇 년에 걸쳐 일일이 책을 뒤지고 현장을 방문해 만든 땀의 결정이다. 평생 시를 접하고 어렸을 때부터 경주를 남달리 살피며 쌓아온 독보적인 내공의 결과이기도 하다. 모두 31개의 명소들이 시대를 벗어난 문학의 향기를 품은 채 시인묵객들의 발걸음을 맞고 있다.

이 지도 제 1호는 신라향가로 찬기파랑가가 시비로 서 있는 계림으로부터 시작해 안민가비 2호, 처용가비 3호 등 향가 순으로 이어졌다. 경성박물관 관장을 지내며 경주에 대한 고고학적 가치를 실현한 고유섭의 대왕암 시비를 4호로, 김동리 문학비와 시비, 생가 5·6·25호, 박목월 노래비와 시비, 생가 7·8·9·10·26호, 동리목월기념관 27호, 유치환 시비 15호 등 영원한 경주의 혼들을 소개했다. 이어 경주 출신 시인 박주일 12호, 서영수 13호, 이경록 16호, 이근식 17·18호, 정연길 21호와 현곡면 출신으로 가요 ‘바다가 육지라면’ ‘마지막 잎새’를 작사한 정귀문의 노래비 19·20호도 포함돼 있다. 외지 시인으로 에밀레종을 노래한 박종우 11호, 첨성대를 노래한 조동화 22호, 완행열차를 노래한 허영자 23호가 포함돼 있다. 시비와 별도로 경주 건천 출신 소설가 이종환 선생과 평북 박천 출신의 소설가 성학원 선생의 경주 행적도 담았고 경주의 고려문인 오새재의 오언율시 14호도 담았다. 이밖에도 동리목월문학관 27호, 국제 펜클럽 개최와 관련한 문정헌 28호와 무녀도의 무대 애기청소위에 세워진 금장대 29호, 문학의 보고 불국사 30호와 금오신화의 산실 남산 31호도 지도의 목록에 넣었다.

-친형 조희길 시인 롤모델로 문학 꿈 키워, 지극한 경주사랑으로 경주예술상 수상도
이런 조희군 시인의 업적과 별개로 조희군 시인의 작품도 문학인들 사이에서는 호평이다. 특히 지난해 세계 문학상을 수상한 조희길 시인은 조희군 시인의 바로 위 친형으로 아우인 조희군 시인의 시에 대해 ‘현실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감성’이라며 찬미해왔다. 세 살 터울의 두 형제 시인은 암곡동에서 경주시내로 나와 함께 자취생활하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학업과 문학의 꿈을 키워냈다.

조희군 시인은 2000년 순수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지만 안타깝게도 자신만의 작품집을 내지는 않았다. 이는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보다 문학도시 경주를 알리기 위한 일에 더 매진해온 탓. 실제로 조희군 시인은 경주의 문학을 알리기 위한 작업으로 경주 인터넷신문에 ‘시가 있는 경주’를 연재하며 경주를 노래한 시인들의 시를 알렸고 경북신문에 ‘서라벌 연가’를 연재하며 자칫 잊혀져버릴 지도 모를 경주 출신 명사들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아냈다. 뿐만 아니라 2001년부터 매년 10월이 되면 일요일마다 고향인 암곡마을에서 ‘시가 있는 무장산 음악회’를 열어 왔는데 이것도 벌써 30회가 넘었다. 이런 공로로 2011년 제3회 경주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도 국제펜클럽 경주지역위원회 사무국장과 동리목월기념사업회 이사로 활동하며 경주의 문학을 알리는데 여념이 없는 조희군 시인은 동국대 경주병원에 재직하며 병원행정을 살피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사는데 바빠 시작 활동에 소홀하다’는 조희군 시인의 말과 달리 지극하게 사랑하는 고향이자 알려야 할 사람과 장소와 문학이 지천으로 쌓인 경주이기에 그 사명을 다하느라 여념이 없는 시인이 오히려 빛날 뿐이다. 어느 먼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문학도시 경주의 높은 품격을 알려온 조희군 시인의 시비 역시 경주 어느 풍광 좋은 곳에 서 있지 않을까?

그의 시 ‘만찬’은 아버지의 말년을 모시며 읊은 조희군 시인의 절절한 마음이 녹아 있어 소개한다. 이 한편의 시만으로도 조희군 시인의 시인으로서의 참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좋은 시는 아무리 짧아도 길다.


<만찬>

                                         조희군

아부지요
많이 잡수이소

미음 한 숟가락에
눈물 한 방울

그래
니도 많이 묵아라

꼭꼭 씹히는
눈물의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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