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양전통시장 특집 르포-자양시장을 보면 중앙시장의 내일 열린다

37도 폭염에도 고객들 발길 줄이어

박근영 기자 / 2019년 0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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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양시장 쉼터와 도서관.

37도의 폭염이 쏟아지는 지난 9일 오후 3시경 서울 광진구 자양동 자양시장, 마침 지난 7월 30일 오후 2시경 잠깐 방문한 경주 중앙시장에서 본 ‘완전히 텅빈 시장’과 더위에 찌들고 장사 안 돼 속상한 상인들의 ‘침울한 표정’을 떠올리며 자양시장도 이런 모습이면 헛걸음한다는 염려가 들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냥 평범한 전통시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시장을 들어서자 그런 걱정이 사라졌다. 더운 열기는 느껴졌지만 시장 온도는 바깥보다는 확연히 차이 날 만큼 낮았다. 온도기 앱을 실행해 보니 31도다. 바깥보다 무려 6도나 낮다. 시장 안쪽으로 폭 4미터가 넘는 메인 통로가 시각적으로 시원하게 보였다. 이 메인 통로에 노란 색 실선이 그어져 있어 점포들이 이 선 밖으로 물건들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장 보러 온 고객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시장 초입에는 족발, 닭강정, 꽈배기, 분식점 등 음식점들이 한 눈에 보기에도 시중 가격보다 훨씬 싸게 팔고 있었다. 5000원 미니족발, 1000원 4개 꽈배기와 도넛, 2000원 김밥···! 상인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선입견을 배제하고라도 활기로 넘쳐 보인다. 자양시장 취재에 부쩍 흥미가 동했다. 무엇이 40년 된 전통시장을 이처럼 활력 있게 지탱해줄까?

전체적으로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업종의 다양함이 눈에 띄었다. 전체 점포 수 130개 중 횟집, 반찬가게, 한방 약재상, 다양한 종류의 식당, 피자가게, 분식점, 신발가게, 옷가게, 정육점, 생선가게, 야채·과일가제, 슈퍼마켓 등 일반적인 품목은 당연히 들어 있고 네일 아트, 부동산 중계업체, 카페, 미용실, 귀금속상품점 등 다른 시장에서는 보기 힘든 업종들도 당당히 들어와 있다. 가게에 들여다 보니 어지간한 점포는 대체적으로 에어컨 시설이 다 되어 있다. 음식점은 100% 에어컨이 가동 된다. 시장은 경주 중앙시장처럼 높은 돔 아래 설치되어 있다. 바깥은 폭염이고 가게 안에서는 에어컨이 가동되는데 시장 온도가 이렇게 낮은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특히 눈에 뛰는 것은 시장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새마을 구판장’이다. 들어가 보니 시원한 매장에는 쇼핑하는 고객들이 계산대에 줄 섰다. 시장 안에 대형 할인매장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이런 여러 가지 의문은 잠시 후 자양시장 박상철 조합장<인물사진> 인터뷰에서 곧 해소되었다.

박상철 조합장.

-싼 가격과 친절은 기본, 에어컨 설치위해 점포주와 세입자간 5년 간 임대료 동결 합의도.

“자양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경쟁력 있는 가격과 상인들의 몸에 밴 친절입니다”
박상철 자양시장 조합장은 근처에 이마트와 하나로마트 등 대형할인매장이 있지만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근본적인 힘을 이 두 가지에서 찾는다. 상인들이 일일이 주변 할인매장 가격을 알아보고 이익을 대폭 낮추거나 산지와의 직거래 등을 통해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한 것이 고객들의 발길을 이끌었고 이렇게 붙든 고객들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대함으로써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객층을 사로잡아왔다는 것.

또 하나의 강점이 계절적 요인에 크게 위축되지 않은 자양시장의 냉난방 시스템이다. 방금 위에서 언급했듯 자양시장 내 상당수의 상가들은 별도의 에어컨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에어컨이 방출하는 또 다른 열기는 집열관들을 통해 건물 천정으로 빠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시장 선진화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폭염과 에어컨 가동에도 돔형 시장이 뜨겁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상가들이 처음 에어컨을 설치할 당시에는 점포주인과 세입자인 상인들 사이에 만만치 않은 갈등을 극복해야 했다고. 점포 주인들은 여하간 세만 받으면 되는 입장이었지만 세입 상인들은 에어컨 시설을 하고 나서 임대비를 올릴 경우 이중고를 겪을 수 있었던 것. 이에 양자는 에어컨 설치 후 5년간은 임대료를 올리지 않는다는 것에 전격 합의, 지금처럼 많은 상가들이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타협을 통해 시장을 활성화 하는 힘을 만들었다.

-16년간 100억 지원, 매월 지역직구 특판, 어린이 고객 쿠폰에 축제까지, 자발적 참여의지와 지자체 지원이 자양시장 변화의 밑거름, 연간 20시간 교육도
여기에 시장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한 것도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양시장은 추석과 설을 중심으로 시의적절한 축제와 고객맞이 이벤트를 열고 있다. 시장축제는 지역시장들이 어디나 열고 있는 것이니 별반 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매월 넷째 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자양 시장가는 날’행사는 자양시장만의 특별함이 돋보인다. 이 날은 제철 농수산물을 산지 직거래로 대량구입해 선착순 200명의 고객들에게 마진 없이 판매한다. 시장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일요일에 대한 기대심을 주고 구매욕을 높이는 것은 당연지사. 실제로 넷째 주 일요일은 이 행사를 염두에 둔 고객들로 인해 시장을 찾는 고객이 훨씬 많다고 한다. 선착순 200명에 든 고객은 만족감에서 또 다른 구매를 하고 선착순 200명에 들지 못한 고객도 시장에 나온 걸음에 밥을 먹든 쇼핑을 하건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행사품목과 겹치는 상인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오랜 경험상 이 행사가 주는 긍정적 요인이 더 크게 부각되면서 상인들도 흔쾌히 이 행사를 지지한다고.

선진화 사업 우선 대상 시장인 자양시장에 대한 실질적 지원도 의미 있다. 대표적인 것이 관내 유치원·어린이 집과 결연된 ‘전통시장 체험행사’다. 이 행사는 서울시가 어린이 1명당 5000원~1만원까지 쿠폰을 지급해 시장에서 직접 물건을 사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행사다. 이 행사로 자양시장은 연간 관내의 2천~3천 명의 어린이를 맞이하고 있다고. 이 쿠폰은 정해진 기간 동안 쓰지 않으면 소멸해버리는 만큼 실제 매출에도 기여하지만 그보다는 어린이들에게 시장의 넉넉함과 재미를 맛보게 함으로써 잠재고객으로 육성하는 효과가 더 크다고.

역시 시장 선진화 사업의 일환으로 연간 20시간씩 시장상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시장을 현대화하고 상인들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바꾸는 계기다. 각계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강사진이 원가절감, 마케팅, 친절, 환경, 위생, 소통 등 다방면에서 진행하는 교육은 낡은 사고방식에 젖어 있기 쉬운 전통시장 상인들이 급변하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알려준다고.

자양시장은 전통시장 선진화 사업의 우선대상 시장으로 선정되어 있어 이와 관련한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 2003년부터 시작한 이 사업에서 자양시장은 지금까지 약 100억 정도의 실질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그 지원으로 시장 환경을 청결하고 위생적으로 바꾸고 구획정리도 진행하고 환기시스템도 설치하는 등 다른 시장과 차별화된 개선을 단행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시장상인들의 자발적인 노력 역시 다른 시장에 비해 과감했기에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박상철 조합장의 설명이다.

“100억이나 되는 돈을 그저 지원받기는 힘들잖아요. 그 지원비는 국비와 시비, 구비가 다 들어가 있지만 그 중에서 10%, 즉 10억은 시장상인들이 스스로 부담하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무턱대고 해주기를 바라지 않고 스스로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시장을 바꾸는 노력을 한 것이 시장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자양시장은 매월 기본 점포 1곳당 3만원의 관리비를 징수하고 있어 이 비용으로 조합관리비와 각종 사무적 기능을 유지한다. 점포수는 130개이지만 실제 상당수 점포가 매장 2~3개를 합쳐 놓은 면적이므로 조합관리와 사무실 운영, 각종 행사를 치르는 정도에는 문제가 없다고.

여기에 서울시 경제팀과 광진구청 일자리창출 팀 등 지자체에서 시장활성화를 위해 꾸준히 아이디어를 내고 상인들과 협의하는 것 역시 자양시장 활성화의 숨은 동력이다.

↑↑ 시장안에 자리잡은 새마을 구판장, 고객을 끌어 당기는 심장역할을 한다

-‘온누리 상품권’이 효자시스템, 카드단말기 설치 70%대, 새마을 구판장이 고객확보의 심장, 고객쉼터와 도서관 운영도

여기에 정부가 시행하는 온누리 상품권 역시 전통시장인 자양시장을 부양하는 효과가 크다. 온누리 상품권은 구매하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5%의 할인효과가 있고 시장에서는 현금과 똑 같은 가치로 살 수 있기 때문에 고객들의 사용량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라고. 이 상품권은 오직 전통시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양시장 역시 이를 ‘효자품목’이라 손꼽고 있다.

-자양시장은 다른 시장에 비해 카드 단말기 사용률이 현격히 높은 것도 특징. 현재 전체 점포에 보급된 카드 단말기 설치 및 사용은 약 70%선.
“아무래도 오래전부터 장사해 오신 연세 많은 상인분들도 계시고 그 분들은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어렵거나 번거로워 하시지요. 또 그 분들에게는 그 분들에게 맞는 고객들도 계시고요” 박상철 조합장은 그러면서도 카드 단말기가 일반화 된 것이 자양시장을 ‘젊은 시장’으로 만드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현금 사용보다 카드 사용에 훨씬 익숙하고 카드사용에서 나오는 적립금이나 포인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세대들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으면 더 이상 장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양시장은 ‘어떤 품목에서건 카드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결코 불편하지 않을 만큼 카드가 활성화 되어 있다’며 아무런 걱정 말고 자양시장으로 오라고 권한다.

자양시장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곳이 새마을 구판장이다. 시장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이 구판장은 규모면에서나 매출면에서 시장의 다른 상가들보다 훨씬 앞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구판장은 일체 시장상인들에게 외면받지 않는다. 오히려 구판장의 존재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그 이유는 구판장에서 판매하는 가격이 다른 할인마트에 비해 경쟁력이 있어서 이 구판장을 찾는 고객들이 동시에 시장을 이용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구판장에서 판매하는 각종 공산용품과 식료품을 사러오는 고객들이 구판장에 없는 제품들을 시장에서 구매하는 효과가 검증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젊은 구판장 경영진들이 수시로 대고객 문자메시지를 보내 고객들을 유인하고 SNS활동을 통해 자양시장의 장점을 부각시켜 시장 활성화의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상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이를테면 새마을 구판장이 자양시장 고객 확보의 심장인 셈이다.

이 외에도 자양시장의 특별함은 또 있다. 자양시장에는 다른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고객쉼터’와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장보러온 노인들이 쉬기도 하고 아이들 데리고 장 보러 나온 엄마들을 위해 아이들을 돌봐주는 기능도 하고 있다. 조합사무소 바로 옆 건물에 자리잡은 도서관과 고객쉼터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상주하고 있고 냉난방 시설과 각종 휴게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날씨와 상관없이 쉬어갈 수 있다.

↑↑ 오후 5시경, 더운 외부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붐비는 자양시장.

-오후 5시 분당 50명 고객, 대 이은 장사 자양시장의 내일은 밝다.

박상철 조합장에게 전국의 지역 시장을 위해 자양시장의 경험에 비추어 조언을 해달라고 청했다.
“자양시장은 서울 시장인데도 직거래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합니다. 이런 것은 지역 시장들이 더 강점이 있겠지요. 또 온누리 상품권이 의외로 덜 알려져 있는 만큼 이 상품권의 효용성을 지자체나 시장 상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친절하고 깨끗하고 쾌적해야 하겠지요.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시장을 둘러보고 인터뷰하기까지 2시간 남짓 지났다. 인터뷰를 마친 기자는 다시 한 번 시장을 둘러보면서 눈에 띄는 대로 쇼핑을 해봤다. 미리 근처 대형할인매장에서 몇 가지 품목의 가격을 체크해간 기자의 눈에 자양시장은 ‘쇼핑천국’이었다. 각종 반찬류와 음식가격은 근처 상가나 할인매장에 비해 10~20% 저렴한 편이었다. 집근처 할인마트에서 100당 1150원 하는 냉동삼겹살을 950원에 사기도 했다. 시장안 새마을 구판장의 여러 가지 공산품류 식료품들 역시 할인매장과 비슷하거나 쌌다.

쇼핑하는 사이 시장 안이 달라져 있었다. 오후 5시 경, 저녁시간 밑이어서인지 처음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보다 4~5배는 많아 보이는 고객들이 시장에서 쇼핑하고 있었다. 시장기 느낀 기자가 시장 안 어떤 분식점에서 한 줄에 2000원 하는 시장표 김밥을 사먹으며 카운터 해보니 1분 동안 그 분식점 앞을 지나간 고객이 평균 50명이 넘는다. 60석 정도의 분식점에는 사장님으로 보이는 할머니를 포함한 네 명의 종업원이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들고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한다. 물어보니 계산대를 맡은 젊은 아주머니는 할머니의 며느리란다. 자양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 중 상당수가 대를 이어 장사하고 있다던 박상철 조합장의 말이 떠오른다. 시장의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시장을 둘러보고 시장 주차장에 돌아왔더니 주차장 사용료 4000원이 나왔다. 명목상 주차비는 10분에 500원이지만 1만원 이상 구매시 30분 무료, 2만 원 이상 구매시 1시간 무료다. 1시간 초과 이후에는 10분당 500원이 나오는 것이다. 기자가 시장에 머문 시간이 모두 2시간 20분, 시장 두 바퀴 둘러보고 간식 먹고 쇼핑하고 인터뷰까지 했으니 단순히 쇼핑하고 밥 먹고 나왔다면 주차비 걱정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주차장 건립이 오래 전이라 약간 좁은 것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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