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경주에 비해 볼 곳 없다??-서울 5대 궁궐만 해도 경주 유적들 다 덮을 정도!

중세와 근·현대가 교차하는 서울,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야!

박근영 기자 / 2019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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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전경 사진.

지난 주, 한 경주 출향인사가 기자에게 한 말이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경주 사람 아입니까? 노천 박물관 경주에 비해 서울에 볼 게 뭐 있습니까?”

이 말을 듣고 어이없어서 혹시 조선시대 궁궐을 가봤느냐고 물었더니 아주 오래 전에 잠깐 한 번 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 난 걸음이라 그 궁궐 하나만으로도 경주를 다 덮고도 남는다는 말을 해주었다. 물론 과장된 말이지만 조선의 궁궐을 제대로 알고 나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석조 유구를 제외하면 잔존 유적보다 재건(흔히 복원이라 잘못 쓰지만) 유적이 훨씬 많은 경주를 인정한다면 일제 강점기의 침탈 속에서도 어렵사리 버텨낸 조선의 궁궐들만으로도 경주와 필적할 유산을 가졌다 강변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궁궐은 경복궁을 필두로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 등 5대 궁궐이 있다. 경복궁은 태조 이성계의 건국으로 지어졌다. 종묘와 사직이 이 무렵 함께 건축되었다. 태종 때 개성으로 일시 옮긴 수도를 다시 천도하며 창덕궁을 지어 이궁(離宮)으로 삼았다.

성종 때 여러 윗대 왕후들을 모시기 위해 창경궁을 지었다. 임진왜란 이후 피난 갔던 선조가 돌아와 보니 위 세 궁들이 불타고 없어져 월산대군이 살던 사저를 임시로 궁으로 썼는데 이게 우리가 덕수궁으로 아는 경운궁이다.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했다. 역시 광해군 시기에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살던 새문동 집터에 왕기가 서렸다는 말을 듣고 세운 궁궐이 경덕궁인데 이게 후에 경희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궁들의 대지면적과 건물 칸수를 따지면 궁궐 하나만으로도 경주의 여러 사찰들과 주요 한옥 건물들을 모두 합쳐 놓은 것보다 훨씬 넓을 것이다. 여기에 사대문과 안쪽에 포진한 여러 유적들, 특히 인사동 북촌에 산재한 한옥들과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패권을 다투며 남긴 유적들까지 더하면 엄청난 유적들이 존재한다.

경주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 눈에는 서울도 제대로 들어온다. 경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궁궐조차 제대로 가보지 않은 채 정도 600년 넘은 서울, 지금도 진행형인 수도 서울을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된다.

중세로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역사적 공간을 가졌고 특히나 세계 10대에 드는 메트로폴리탄이다. 세계인들이 놀랄 만한 현대식 건축과 건물, 눈부신 시스템들이 스며있고 그보다 더 다양한 문화양식과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녹아 있다. 경주시민이나 출향인사들이 경주만 최고라는 우물안 개구리식 사고에서 벗어나 서울을 제대로 벤치마킹할 때 경주가 더 발전할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분당에서 치러지는 경주천년나들이 행사에 들리고 다음 주부터는 가을의 궁궐을 즐겨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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