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10의 세상, 누가 마지막 1℃를 끌어올렸나?-이현세vs강문수, 두 신화의 불꽃 튀는 랑데뷰!!

지도자, 교수의 역할이란? 마지막 1도를 끓게 하고 각성의 순간을 알려주는 것

박근영 기자 / 2019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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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이 도전해 90명은 죽고 10명이 겨우 살아나는 만화와 스포츠의 세계, 그 차원을 넘어 마지막 1% 혹은 그 이상, 전설을 넘어 신화가 된 경주 출신의 두 인물, 88올림픽과 2004아테네 올림픽 탁구 금메달과 숱한 승리대회의 산파 강문수 감독(대한항공)과 자타공인 우리나라 최고의 만화가 이현세 화백(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지난 19일 강남 모처에서 두 거장을 함께 만났다. 경주고 2년 차 선후배(강문수 감독이 선배)로 서로 가장 친한 사이이자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장본인들임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기에 가능했던 동시 인터뷰다. 또 다른 차원에서 90:10을 말하며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 준 두 거장의 같은 듯 다른 치열하고 ‘의외로 지나치게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 가장 친근한 선후배 사이인 강문수 감독과 이현세 화백.

#모두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소감을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강문수 감독: 우리나라 탁구를 세계 정상에 올린 보람 크다.

한 때 우리나라 탁구를 세계 정상으로 올렸다는 점에서 보람이 크다. 많은 선수들을 지도해왔고 그들이 명성을 얻는 모습을 보면서 자부심도 느낀다. 최근 들어 다시 지도자 생활로 돌아왔다. 다행히 좋은 성적을 거둬 이름값을 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최근 들어 우리 탁구가 중국이나 일본에 눌려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탁구 전반에 여러 가지 극복해야 할 요인들이 쌓여 있다.

-이현세 화백: 만화 잘 그리는 놈이 공부도 잘 한다. 신선한 충격 !
요즘은 만화애니메이션 학과가 일반전형으로 바뀌면서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대거 입학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전교에서 수석하던 제자가 들어왔다.  그 친구 말이 “공부 잘하는 놈이 만화도 잘 그린다는 말보다 만화 잘 그리는 놈이 공부도 잘 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하더라.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근 60명 가까운 학생들의 작품에 대해 공개 평가회를 가졌는데 긴장감 넘치고 중요한 시간이었다. 이들을 대하면 생동감이 느껴진다.

↑↑ 강문수 감독.
#천부적인 재능과 지도자의 노력, 비중을 몇 %정도 둡니까?

-강문수 감독: 마지막 1도를 끓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몫이다

90:10으로 본다. 90이 자질이다. 탁구를 좋아하고 심취하고 즐기고 잘 하는 선수들을 어릴 때 발굴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100%에 이를 수 없다. 지도자가 그 10%를 채워줌으로써 비로소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 물과 같다. 물은 99도에 가도 끓지 않는다. 그러나 100도가 되면 끓는다. 그 최후의 마지막 1도를 더하는 것이 지도자의 몫이다.

-이현세 화백: 각자 나름의 멘토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각성한다.
같은 생각이다. 90:10이다. 그러나 스포츠와은 조금 다르다. 교수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가르치는 것일 뿐 결국 좋은 작품을 내기 위해서는 각성이 필요하다. 그 각성을 위해서는 좋은 멘토가 필요한데 그 멘토는 학교 교수일수도 있고 실연의 상처를 준 연인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때로는 갓난 아기가 될 수도 있다. 아기가 너무 예뻐서 육아일기를 썼는데 그게 대박 터지면 그 갓난 아기가 멘토인 것이다. 어떤 사건이 되기도 한다. 교수가 할 일은 그 멘토의 존재를 자각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두 분이 신화가 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이현세 화백: 만화 그리는 것보다 재미있는 것을 찾지 못했다.
만화는 특히 지구력이 중요하다. 만화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사람이 오래 만화를 그린다. 재능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히트작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만화 그리다가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만화를 도중에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한다. 만화 그리다가 예능인이 된 작가들은 만화보다 그게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한 작품을 가지고 끝까지 가는 작가도 있다. 그것은 돈이고 밥이라 내려오기가 두렵기 때문에 익숙한 장르를 안정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학원물이다. 나의 경우 수없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그리고 싶어서 못 배겼다. 끊임없이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결국 그런 사람이 오래 만화를 한다. 나도 영화배우, 감독 등 수없이 많은 직업으로 바꿀 수 있었지만 만화를 쓰고 그리는 것보다 재미있는 것을 찾지 못했다.

-강문수 감독: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이것 밖에 없었다.
이 화백과는 좀 다르다.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이것 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밥을 먹어야 했고 이것으로 살아야 했다. 다른 지도자들과 달랐다면 이기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구하고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뿐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전에는 강도 높은 훈련으로 거세게 몰아붙였다. 운동도 지구력이 필수다. 요즘은 특히 여자선수들에게 이 지구력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남자들의 운동과 여자들의 운동은 분명히 다른 것이 있다. 여자 선수들에게는 시간을 두고 꾸준히 자신들에게 맞도록 지도함으로써 좋은 성과를 얻었다고 믿는다.

↑↑ 이현세 화백.
#어떤 이유에서 만화나 탁구가 그만큼 재미있었던 것인가요?

-이현세 화백: 내 마음대로 독선적으로 할 수 있는 세상이다.
만화는 단독 작업이다. 나는 종이에 펼쳐지는 나만의 공간연출을 너무 좋아한다. 나만의 세상이란 것은 매우 독선적이고 구체적이다. 누구의 간섭이나 도움, 협의 없이 내가 연출해 나가는 나만의 세상이 좋다. 만약에 영화를 한다면 제작자는 제작자대로 ,배급자는 배급대로, 배우는 배우대로, 각 파트의 감독들은 또 그들 나름의 의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화는 오로지 내가 쓴 스토리를 중심으로 내가 구현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다. 협업을 해도 내가 모든 것을 이끌고 내 마음대로 끌고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대신에 그 책임 역시 온전히 내가 진다. 그것을 기본으로 우주로 스포츠로 온갖 세상으로 달려 나간다. 좋은 이야기만 있으면 몸이 괴로워도 충분히 달려갈 수 있다.

-강문수 감독: 나는 탁구에 희열을 느끼지 못한지 오래다.
내 경우 처음에는 재미로 탁구를 치기 시작했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는 안 하면 안 되는 일이 돼버렸다. 내 능력으로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탁구였다. 그래서 최소한 한 번은 국가대표를 지내야 했고 어떻게든 이 것으로 밥벌이를 해야 했다. 지도자가 된 것도 마찬가지다, 내게는 다른 재능이 없다. 지도자가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능력일 뿐이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희열이나 재미가 없었다. 다만 목표로 한 게임에서 승리하고 팀이 이겼을 때 기쁨과 성취감이 나를 달려오게 한 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 역시 능력일 뿐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살기 위해서 이겨야 했고 이기기 위해서 혼신을 다해 달려왔을 뿐이다.

#만화와 탁구에서 힘든 일이 있다면 ?
-이현세 화백: 같은 그림을 수 천 번 그리는 지겨운 작업.
만화는 그리는 것 자체가 굉장히 지루한 일이다. 일반 회화작가들은 꿈도 꿀수 없다. 만화 한 편에 몇 천 번 똑같은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건 일반 회화를 하는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지겨운 작업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웹툰 작가들의 작화가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가성비 높은 작업을 하다보니 생긴 일일 것이다. 더구나 요즘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사람과의 스킨십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의 지적 소유권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니 작화에서 같은 공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캐릭터를 단순화 하는 것이다. 최근 만화계에 고교 환타지가 많은 이유는 중요한 소비자들이 고교생들인데다 학원물은 한 번 캐릭터를 그려 놓으면 더 이상 복장이나 배경 등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가성비가 높다는 말이다.

-강문수 감독: 선수에만 신경 썼지 지도자의 중요도에 소홀하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엘리트 선수 위주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기에는 전반적인 여건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너무 열악하다. 적어도 중국은 1:1 훈련으로 집중도가 높아졌고 일본도 개인코치 위주로 바뀌었다. 우리는 아직도 감독 아래 코치 한 명이 2~3명의 선수를 돌보는 형태다. 이런 기반 자체가 벌써 우리와 다르다. 특히 중국은 스폰서 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특정 외국 선수를 이기거나 목표를 이루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충분히 해준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최고의 에이스 선수만 대접받는 정도다. 그러나 유남규, 현정화, 김택수, 안재형, 유승민 이후 스타성 있는 선수들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탁구는 지도자를 너무 소홀하게 여긴다. 그러다보니 과거 스타 선수들은 자신의 스타성에 만족해 어려운 지도자 생활을 하려 들지 않는다. 이래서는 안 된다. 야구나 축구처럼 스타 감독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호 : 페부커들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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