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식 시인의 경주인문학산책] 그림자 없는 탑과 그림자 못<無影塔과 影池>

경주신문 기자 / 2022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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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는 영지 전경.

경주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 작품들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빙허 현진건의 장편소설 ‘무영탑’을 꼽을 수 있다. 그것도 경주를 대표하는 불국사, 불국사를 대표하는 석가탑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작품의 배경 또한 당연히 경주, 서라벌 땅이다.

소설 ‘무영탑’은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이 극에 달하던 시기에 쓴 소설이다. 1930년대는 내선일치 구호 아래 창씨개명과 각종 징집령이 내려지던 험한 시기였다. 작가는 암울했던 시대적 분위기에 현재와 동떨어진 역사적 시간 속으로 이야기를 설정하여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작가로서의 책무였는지도 모른다.

이에 앞서 현진건은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근무 중이던 1936년 8월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일장기 말살 사건에 연루되어 1년간 복역하였고 신문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직장을 잃은 그는 양계업을 호구지책으로 삼으며 소설을 썼다. 1938년 7월부터 1939년 2월까지 총 164회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한 작품이 바로 ‘무영탑’이다. 1939년 박문서관에서 초판이 간행되었다.

우리나라 사실주의 대표적 작가인 현진건은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등 뛰어난 단편들을 많이 발표했다. 다수의 작품이 교과서에 수록되어 친숙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장편소설 ‘무영탑’은 분량이 많다 보니 읽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간략하게 내용을 살펴본다.

 신라 경덕왕 시절,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을 세우기 위하여 서라벌로 뽑혀온 부여의 장인(匠人) 아사달에게 서라벌 귀족 이손 유종(唯宗)의 딸 주만(珠曼, 일명 구슬아기)은 마음을 빼앗긴다. 부여의 아내 아사녀 때문에 괴로워하던 아사달도 마침내 주만의 열정을 받아들이지만, 이들에게는 험난한 장애가 가로막는다. 주만을 짝사랑하던 당학파(唐學派) 금지(金旨)의 아들 금성(金城)의 훼방이 그것이다.

더구나, 주만의 아버지 유종은 금성을 피하기 위해 경신(敬信)과 혼약을 정한다. 한편, 3년이나 아사달을 기다리던 아사녀는 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달려드는 팽개(彭介) 무리의 겁탈 위기로부터 벗어나고자 무수한 고통을 겪으며 서라벌로 달려온다. 드디어 아사달의 석가탑은 완성되었으나 주만은 경신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실행(失行)의 죄가 탄로 나서 화형(火刑)당하게 된다. 또한, 아사녀는 탑이 완성된 것도 모르고, 중과 뚜쟁이의 행패 때문에 남편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그림자못(影池)에 빠져 죽는다. 이에 아사달은 두 여인을 합하여 원불(願佛)의 조각을 새기고는 역시 물에 빠져 죽는다.

↑↑ 현진건의 장편 소설 무영탑의 소재가 된 영지.

현진건은 이 소설을 쓰기 10여 년 전 1929년 동아일보에 고도순례-경주 기행문을 한 달간 연재했다. 고도 경주의 유적지들을 둘러보면서 남긴 글들이다. 이중 무영탑과 영지에 관한 글에서는 소설과는 달리 백제에서 온 여인이 아닌 당나라에서 온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관한 기록은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라는 조선후기 승려 동은이 불국사의 역사적 배경과 유물·유적 등을 수록하여 1740년에 간행한 사적기가 존재한다. 원본은 동경대학(東京大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여기에 언급된 이야기에서 ‘석공은 이름 없는 당(唐)나라 사람이고, 그를 찾아온 사람은 누이동생 아사녀(阿斯女)’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진건은 ‘고금창기’와 오사카 긴타로와 오사카 로쿠손가 영지에 관한 전설을 정리한 ‘무영탑 전설’을 바탕으로 소설 ‘무영탑’을 발표했다. 소설에서 현진건은 석공과 부인을 부여 사람으로 묘사하고, 석공의 이름을 아사달이라 했다. 이 역시 역사의식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사달은 바로 단군 왕검이 도읍으로 정하고 다스린 지명이기 때문이다. 당나라 사람이 아닌 부여 사람으로 설정된 것 또한 현진건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반영된 것이다.

 소설 ‘무영탑’은 설화를 바탕으로 했고 일부 각색을 하였다. 예전부터 구전되어 오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형되기 마련이다. 모든 구비문학은 완벽한 전승은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형, 각색되기 마련이다.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로 넘어가듯 자연스레 가감되거나 가공되기도 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 홍길동과 심청을 두고 지자체 간 서로 자기 고장 인물이라고 주장하며 대립하는 것도 사실이다. 모두 자기 고장의 이야기로 스토리텔링하고 관광 자원화하기 위한 싸움인 것이다. 석유를 두고 바다 싸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원조 논쟁은 이른바 선점 효과를 통해 문화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한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연계되기 때문이다.

다른 도시에 비하면 경주에는 문화 콘텐츠가 차고 넘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아무리 좋은 것도 활용하지 않으면 그냥 책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책 속에 갇혀있는 것을 꺼내어 상품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번 정도 경주를 찾을 것이지만 두세 번씩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는 새로운 신상품들을 창출해내어야 한다.

소설 무영탑은 여러 가지 형태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주연의 ‘무영탑’과 김수용 감독의 신영균, 김지미 주연의 ‘무영탑’은 모두 현진건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여러 편의 창작 오페라가 만들어졌고 무대에 오른 바 있다. 비록 옛날 노래이기는 하지만 가수 이인권이 부른 ‘무영탑 사랑’이라는 대중가요가 만들어져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 저미게 한다. 또 국악계에서도 무영탑이라는 거문고 연주곡 4악장이 널리 연주되고 있다. 경주고에는 무영탑이라는 동아리가 60년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시대를 초월하여 무영탑과 아사달과 아사녀가 등장하는 시들도 여러 편 찾아볼 수 있다.

↑↑ 석공 아사달이 아사녀를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 영지석불좌상. 현재 석불은 남아있는 것보다 닳아 없어진 부분이 더 많다.

조선 후기 초의선사가 불국사에 와서 머물기도 했는데 이때 당시 불국사를 회고하며 노래한 9수의 시들 가운데 무영탑과 아사녀가 등장하는 시가 있다.

승천교 밖의 구연지에는
칠보 누대가 물 밑으로 옮겨졌네
무영탑 바라보니 도리어 그림자 있어
아사녀가 지금 와서 비춰보는 것 같네.


​그리고 소설 속 아사달과 아사녀의 고향 부여 출신 시인 신동엽(1930~19690)의 대표작이기도 한 시 ‘껍데기는 가라’ 시 중간에 다음과 같이 아사달과 아사녀를 노래했다. 다행히 영지 주변에 조성한 공원에 이 시를 돌에 새겨 놓고 있다.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 일부


한수산 필화사건에 휘말려 불운한 생을 살다간 박정만 시인 또한 장시 ‘떠오르는 탑’에서 아사달과 아사녀를 테마로 사설 연작시를 월간 문학에 연재하기도 했다. 그의 시 전집 속에서 여러 편의 시를 만나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많은 작가들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무영탑은 시대를 떠나 영감을 가져다주는 존재임은 확실하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는 영지 주변에는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영사(影寺)라는 절을 지었고 석불좌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지석불좌상은 석공 아사달이 아사녀를 위해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띠고 있는 이 석불은 남아있는 것보다 닳아 없어진 부분이 더 많다. 세월을 건너온 흔적이 역력하지만 슬픈 설화를 곁들여 바라보다 보면 희미한 부분이 뚜렷하게 되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작년 겨울 어느 날 영지를 찾았을 때 얼음판 위로 뛰어다니고 있는 수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멸종위기 동물을 아름다운 영지에서 만나는 행운을 가질 수 있었다. 다정스럽게 놀고 있는 그들이 마치 아사달과 아사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곳은 설화공원이라는 테마로 공원과 둘레길을 조성하여 놓았다. 뭇사람들에게 그 옛날 비련의 주인공들을 회상하며 걸을 수 있는 즐거움을 제공해주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의 지고지순한 연인들이 불국사 그림자 없는 탑을 둘러보고 그림자 못에서 사랑을 언약하면 그 사랑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억지 소문이라도 내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림자 없는 탑과 그림자 못을 찾아 경주를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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