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때 무엇을 했나요?”

인터뷰, 고구마 줄기 캐는 자서전의 필수과정 !!

박근영 기자 / 2022년 0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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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바랜 한장의 사진도 훌륭한 인터뷰 대상이 될 수 있다.

자서전 쓰는 분들이 벽에 부딪히는 대부분의 경우는 아무리 돌아봐도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지난 호에서 말했듯 자신의 인생에서 자꾸만 거창한 무엇을 찾으려고 해서다. 남들이 다 공감하고 깜짝 놀랄 만한 일은 정말 드물다. 그런 것은 정말로 큰 사건이나 사고가 있어야 기억날 만한 일이다. 보통은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거나 대단한 자격증을 땄다거나 힘겹게 승진했을 때 등인데 인생에서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되겠는가?

그게 아니면 큰 사고들이다. 연탄가스 중독이나 교통사고, 화재, 물난리 같은 끔찍한 일들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자신에게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고 대단한 변화의 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정말 인생에서 몇 번 일어나지 않을 만큼 귀한 사례다.

또 한 가지 자서전의 단골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성공 신화다. 인생에서 빛나는 성공의 순간은 영광이자 자랑인 것은 당연하고 마땅히 기록할 만한 특급 소재다. 그런데 의외로 공감지수에서는 떨어져도 아주 많이 떨어진다. 오히려 어지간히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뻔하게 들어있는 소재들이라 상투적으로 보일 정도다.
 
다시 말해 그런 순간은 본인에게 매우 중요하고 각별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공부 잘하는 샌님들의 뻔한 자기 자랑일 뿐 공감하기에는 마땅치 않은 소재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대필해드린 주인공들 중에서 행정고시, 사법고시에 걸린 분들이 몇 분 되었는데 그분들의 합격기는 거의 똑같았다. 하루에 몇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정말 죽을 만큼 혼신을 다해 공부했다.

일차에 합격하고 나서 이차는 어떤 식으로 공부했다. 고시에 합격하고 나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연수원 시절은 어떠했다. 연수원 시기부터 이곳저곳에서 혼담이 밀려들었다. 이건 정말이지 듣지 않아도 쓸 수 있는 너무나도 빤하고 공식처럼 똑 같은 말들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공부의 귀재들이고 기억의 천재들인 고시 합격자들이 자서전 쓰기에 앞서 한결같이 기억나는 일이 없다고 손사래 친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평생동안 학교와 집을 오가며 공부만 하던 분들이니 특별한 기억들이 없을 법하다.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들이 그 정도일진대 고시공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왔다고 믿는 분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도무지 기억나는 일이 없을 법하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인터뷰를 통해 자신조차 잊고 있었던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다.
기억나는 일은 없고 거창한 일들은 하나둘뿐인데 그럼 무슨 재주로 자서전을 쓰나?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인터뷰’다. 직접 쓰건 대필로 쓰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인터뷰다. 뭐라고? 인터뷰는 두 사람 이상이 만나 정보를 얻기 위해 나누는 대화인데 혼자서 무슨 인터뷰인가? 라고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예를 보자.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아래 질문을 보면서 자신에게도 함께 인터뷰를 진행해보자?

“엄마(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초등학교(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어른이 되어) 엄마(아버지)를 기쁘게(슬프게, 화나게, 미안하게) 한 일은 없는가?”
“그때 그 일로 내 마음의 변화가 있었는가?”
“지금 나는 엄마(아버지)에게 어떤 존재인가?”
“나는 좋은 엄마(아버지)인가?”

괄호 속의 물음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인터뷰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다른 소재를 찾는 열쇠가 된다. 괄호 속 대상은 형제나 자매가 될 수도 있고 친구나 엉뚱한 제 3자가 될 수도 있다. 아래 한 예를 더 보자?

“생각나는 친구는 누구 누군가?”
“그 친구와 무엇을 하며 놀았나, 가장 기억나는 일은?”
“그 일 후 친구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나?”
“지금 그 친구와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는가?”

이렇게 무언가를 정해서 파고들면 분명히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그 친구를 중심으로 다른 친구도 떠오르고 또 다른 친구와 그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화들도 떠오를 것이다. 한 예를 더 들어보자

“고교 시절 존경하는(혐오하는) 선생님이 있었나?”
“그분을 존경하는(혐오하는) 이유는?”
“그분과 따로 생각나는 기억은?”
“졸업 후에 따로 찾아뵌 적은 있나?”
“다시 만나면 드리고 싶은 말은?”

기억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또 다른 선생님이 떠오르고 다른 선생님과 얽힌 사연들이 또 하나씩 드러난다. 초중고, 대학이나 대학원 그 이상까지 기억에 나는 선생님과 교수님들에 대한 이야기로 책 한 권이 나올 수도 있다.

또 하나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드라마틱 한 경험 한 가지를 더 들어보자.

“첫사랑은 언제 겪었나?”
“대상은 누구였나?”
“그(그녀)와 그때 진행된 일은?”
“왜 헤어졌느냐?”
“그때의 마음이 어땠는가?”

첫사랑이 있다면 당연히 그 다음의 연인이나 배우자의 이야기까지 이를 수 있다.
이렇듯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고구마 줄기 캐듯 기억이 굴러 나온다. 기억 저 편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던 소중한 추억들이 하나씩 되살아나고 오래 잊고 있었던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 자체로 자서선 쓰기는 스스로에게 감동을 주고 새로운 삶의 활력을 준다. 실제로 자서전 쓰기를 통해 기억해낸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고 오래 잊고 산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주인공들도 자주 보았다.

‘나’에게서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면 나의 주변인들에게 똑같은 식으로 인터뷰할 수도 있다. ‘그때 내가 어땠지요?’, ‘그때 우리가 무얼 먹고 살았고 무얼하며 놀았지요?’, ‘그 시기 나와 함께 지내면서 특별히 나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없나요?’ 이런 물음을 통해 나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내가 대필해준 그 천재적인 공부벌레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과정을 통해 자서전을 냈다.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그들은 스스로에게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자신에게 그렇게 놀라운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이구동성 고백했다. 심지어 오래 잊고 있었던 감동적인 사연을 꺼내놓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다.
 
그것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대필자의 능력이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보석 같은 이야기들의 잔뜩 숨겨져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어보자. 그러면 자신조차 몰랐던 오랜 기억들이 샘솟듯 달려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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