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 14~17 단어!! 을·를과 한자어를 줄여볼까요!!

똥·오줌을 소변·대변이라 가르친 어느 초등학교 교사와
찾아가면서 쓰신 백기완 선생님의 우리말 사랑

박근영 기자 / 2022년 0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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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장에서 문장을 짧게 써야 한다는 말을 했지만 구체적으로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짧게 써야 한다는 말인가? 많은 글쓰기 자료들을 통합해서 평균적으로 권고하는 길이가 있다. 한 문장에 들어가는 단어 수로 14~17개 사이가 가장 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장을 다루다 보면 이 평균은 일상적인 상황을 그려낼 때는 몰라도 그렇지 않을 때는 굳이 14~17개를 맞출 필요가 없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빨리 전개되는 상황을 설명하려면 단어수를 가급적 줄이는 것이 속도감을 주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느긋하고 편안한 상황을 쓰려면 단어 수 역시 자연스럽게 늘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총알이 빗발치는 급박한 전투장면에서 상황을 묘사한다고 해보자.

‘전장의 한 가운데로 적군이 물밀듯 밀려오는 가운데 선두에는 적군 지휘관으로 보이는 장교가 권총을 뽑아 들고 병사들을 향해 진격하라고 고래고래 고함치며 자신도 혼신을 다해 앞으로 달려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 문장을 좀 속도감 있게 그려보자

‘전장의 한 가운데로 적군이 물밀듯 밀려왔다. 적군 지휘관이 권총을 뽑아들고 진격을 외쳤다. 그 자신도 달려 나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윗글과 아랫글에서 느껴지는 긴박감이 확연히 다를 것이다.
반대로 느긋한 장면을 딱딱 끊어서 묘사하면 글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푸른 하늘에는 종달새가 높이 떠 지저귀고 있었고 종달새 뒤로는 금방이라도 닿을 듯 하얀 뭉개구름이 때마침 불어오는 실바람에 흐트러지며 하늘 속으로 자멱질하고 있었다’
이 표현을
‘푸른 하늘에 종달새가 높이 떠 지저귀고 있었다. 종달새 뒤로는 금방이라도 닿을 듯 하얀뭉개구름이 떠 있다. 때마침 불어오는 실바람에 구름이 흐트러지며 하늘 속으로 자멱질하고 있었다’
식으로 끊어서 쓴다면 글맛이 전혀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14~17개의 단어가 편안한 경우는 대체적으로 설명문이나 논설문, 기행문 등 일상적인 상태에서 쓰는 글에 적용하면 어울린다. 자서전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쓰는 대부분의 글에는 이런 설명형식의 글들이 대부분이고 이런 구조는 생각보다 자주 되풀이된다. 때문에 억지로 맞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쓰다가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단어 수를 그렇게 맞추어 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상황에 맞게 단어 수를 자연스럽게 조절해야지 억지로 14~17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면 글 쓰는 스트레스 때문에 더 못 쓰게 될 것이다.

글을 쓰면서 의외로 조사와 접속사, ‘~하게 되었다’를 남발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도 글을 맛없게 하는 잘못된 버릇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생각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그와 전혀 다른 엉뚱한 결정을 해서 극심한 혼란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 글과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전혀 엉뚱하게 결정해 극심한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글을 비교해 보면 어떻게 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지 알 수 있다. 위 문장에서 ‘~을’, ‘~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을 해서’,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등이 뭉텅 빠져나갔지만 위 문장보다 아래 문장이 훨씬 매끄럽게 보일 것이다.

또 하나, 역시 앞 장에서 한자어를 쓰는 것보다 우리말을 쓰는 것이 뜻이 잘 통하고 글이 부드럽다는 말을 했는데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겠다.

“천상에 암운이 겹겹이라 지척을 분간하기 난감해 부득이 목적성취에 실패했습니다!”

옛날 무협소설에 이런 한자어가 잔뜩 들어간 문장이 아주 많았다. 이것을 우리말로 옮겨보자.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몇 글자 더 쓰긴 했지만 뜻이 훨씬 쉽게 와닿는 것을 느낄 것이다.

가만 보면 ~을, ~를이나 한자어는 습관처럼 쓴다. 분명히 ~을 ~를을 붙이면 모양새가 좋지 않은데 이게 자연스럽게 입에도 베고 글에도 베어 자기도 모르게 쓴다.

한자어를 쓰는 것은 오랜 기간 한자문화권에 익숙해진 탓도 있고 특히 50대 이상 중년들의 경우 고등학교 때 배운 온갖 고문들과 근대 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이 크다. 달달 외우다시피 했던 국민교육헌장에 얼마나 많은 한자어가 쓰였고 기미독립선언서에는 또 얼마나 많은 한문이 써였는가?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이 자주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이런 글을 찬양하는 사이 어느 새 한자어가 유식한 표현이고 우리말은 저급하다는 생각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의 경우 우리말을 저급하게 취급하는 교육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들으며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에게 오줌 좀 누고 오겠다고 했다가 대놓고 ‘오줌이 뭐냐, 소변이지!’라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 그러면서 칠판에 ‘오줌=소변, 똥=대변’이라고 커다랗게 쓰고는 아이들에게 따라 읽으라며 몇 번이나 되풀이했고 심지어 얼떨결에 오줌, 똥을 말했다가는 교봉으로 두들겨 맞기도 했다. 그때부터 내 의식 속에서 오줌과 똥은 거의 반생 동안 소변과 대변에 그 고유한 자리를 내준 채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금기어로 여겨졌다.

이랬던 내가 온갖 한자어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세종대학교 다닐 때 학보사 기자 노릇을 하면서부터였다. 세종대 학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이기도 하고 가로 쓰기 전용 신문이기도 했다. 당연히 우리말에 대한 관심도 여느 대학교 학보사보다 컸다. 그 당시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는 우리나라 현대 한글학의 대부격이었던 허웅 교수님이 계셨으니 이런 분위기도 우리말 사용에 한몫 했을 것이다.

나에게 우리말의 중요성을 더 체계적으로 일깨워 주신 분은 민주운동가이자 문학가이신 고 백기완 선생(1932-2021)의 영향이 컸다. 그렇다고 내가 백기완 선생님을 잘 알고 모셨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강연을 통해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고 선생님이 쓰신 책을 읽으며 우리말의 묘미를 알아갔을 뿐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거나 책을 보면 우리말을 얼마나 열심히 찾아 쓰고 아껴 쓰고 바꾸어 쓰신 분이 세상에 또 있을까싶을 정도로 선생님의 우리말 사랑이 느껴졌다. 비록 그 범주에는 들지 못하지만 우리말을 골라 쓰기 시작하면서 글이 훨씬 좋아보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너무 낯설어서 어느 때는 우리말로 쓰면 오히려 뜻을 모르거나 굳이 각주를 달아야 할 정도면 슬며서 한자어를 쓰는 것이 편하기도 하다.
 
아무리 우리말이 좋아도 대중 속에서 두루두루 쓰이지 않으면 그 말은 죽은 말이다. 선생님께는 무지 송구스럽지만 언어의 사회성을 외면하면서까지 우리말을 찾아 쓸 만큼의 성의가 나에게는 없다. 그래도 그렇지 오줌과 똥을 소변과 대변에 내주는 바보 같은 글은 절대로 쓸 생각이 없다. 이글 읽는 독자님들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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