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질 스톱! 한 주제에 집중하고 곁가지 치지 말라

대부분 행사가 꼰대질로 도배되었다
요즘 젊은이들의 문제가 아니고 위력자들의 독식·독백이 문제다

박근영 기자 / 2022년 0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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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내가 짝사랑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시내 모 여중에 다니는 초등학교 동기생으로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 살아서 꽤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 여학생은 집안에 언니가 둘 여동생이 또 넷 끝으로 남동생이 하나인 칠 공주 한 아들 집 셋째딸이었다. 그 시대 다 그랬지만 그 부모님은 아들 하나 낳기 위해서 계속 자식을 낳았는데 결국 7공주나 낳았고 천우신조 끝에 아들을 낳아 동네가 떠나가도록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그 잔치에 돼지를 두 마리나 잡았는데 그 돼지들이 그 동네에서 가장 크고 살찐 돼지들이라 동네 사람들이 잔치를 제대로 열었다며 사흘이나 그 집에 들락이며 부어라 마셔라, 집안에 기둥뿌리가 뽑힐 정도로 흥청댔다. 그래도 그 집이 동네에서 소문난 알부자라 그만큼 걸판진 잔치를 치르고도 끄덕 없을 정도였으니 그 헐벗고 굶주리던 시대, 자식을 그만큼 두고도 쪼들리지 않고 딸들 공부에 아들 공부까지 까딱없이 시켰다. 특히 그 여학생 밑으로 둘째 여동생은 공부를 잘해 뒤에 서울대학교 법대를 나와 판사를 지냈고 막내 여동생은 피아노를 잘 쳐서 독일까지 유학하고 돌아와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 여학생도 그런 부모님 혜택을 제대로 받아 부잣집 셋째딸 아니랄까 귀한 것 모를 정도로 잘 차려입은 데다 타고난 미모가 있어 곁에 가면 빛이 환하게 날 정도로 귀태가 흘렀다”

근래 들어서 선배님들과의 대화가 부쩍 줄었다. 특히 한 10년 넘어가는 선배님들과는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겁부터 나서 어지간히 잘 아는 선배님이 아니라면 일단 핑계를 대고 만나는 것을 자제한다. 대화란 것이 오고 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야기하면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대화이고 죄다 옛날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한번 시작하면 어렸을 적 옆집 돌이와 순이, 앞집 강아지 이야기에 사돈에 팔촌 이야기까지 밑도 끝도 없다. 혹시라도 서로 아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면 그 사람의 행적과 그 주변의 또 사돈의 팔촌과 어렸을 적 뒷집 영자와 건너편 철수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래서는 대화 자체가 힘들다.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하다 보니 가끔 글 좀 쓴다는 분들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서 책으로 내겠다며 원고를 보낸다. 이런 분들 공통점이 문장도 어느 정도 되고 문법도 맞추는데 하나 같이 이야기 전개에 서툴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기억력을 자랑하려는 듯 이야기에 곁가지를 치고 또 쳐서 한참 읽다 보면 처음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린 것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위에서 예로 든 내용이 바로 그런 것이다. 독자님들이라면 위의 글, 짝사랑한 여학생의 묘사를 어디에서 끊을지 물어보겠다. 과연 어디서 멈추어야 할까?

‘그냥 읽어도 재미 있는데’라고 한다면 딱히 할 말 없다. 관심이 갈 만한 내용을 나열한 탓일 것이다. 그러나 위 설명을 보면 정작 짝사랑한 여학생에 대한 직접 묘사는 거의 없고 주변의 필요 없는 설명이 끝도 없이 이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설명문은 이렇게 줄이면 딱 맞다.

“중학교 때 내가 짝사랑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시내 모 여중에 다니는 초등학교 동기생으로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 살아서 꽤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동네에서 소문난 부잣집 셋째딸이라 잘 차려입은 데다 타고난 미모가 있어 곁에 가면 빛이 환하게 날 정도로 귀태가 흘렀다.”

주변의 언니 이야기와 아들 이야기, 집안 잔치 이야기는 곁가지다. 필요하면 다른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적절하게 써먹을 수 있는 재료는 되겠지만 짝사랑한 여학생을 특정 짓는 묘사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없다. 그런데 대부분 글 좀 쓴다는 분들이 이렇게 과하게 친절한 설명들을 빼곡히 적어서 들이민다.
이 경우 늘 해 드리는 조언이 ‘한 주제에 집중하고 곁가지를 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또 어김없이 처음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배경 설명을 위해 설명을 넣은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위에서 보듯 배경 설명하느라 짝사랑하던 여학생은 자칫 잊어먹을 지경인데도 말이다.

비단 자서전 쓰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불필요한 말들을 기억력 자랑하듯 주야장천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는 그들을 ‘꼰대’라고 부른다. 사실 꼰대는 말이 많아서 붙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서 꼰대라고 부르는 경우가 훨씬 많다.
 
보통 꼰대는 세대와 나이에 상관없이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에 대해 느끼는 감정상태다. ‘위력’이라는 명분을 단 채 아버지가 아들에게, 선생님이 제자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직장 상사가 아래 직원들에게 주절주절 읊어대는 잔소리나 옛날이야기는 죄다 꼰대질이다. 특히 이 꼰대질의 특징은 상대방이 무슨 말이라도 하면 ‘그게 아니고~’부터 시작해 자신의 생각을 마구 꽂아 넣으려는 경향이 크다.

이럴 때 아랫사람들은 절망적이다. 이건 대화가 아니고 바늘방석 그 자체다. 어떻게 해서건 꼰대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궁리하다가 조금만 틈이 생기면 그 핑계로 잽싸게 도망친다. 뒤에 다시 그 윗사람과 이야기할 일이 생기면 지레 겁부터 나고 마주 앉는 것이 피곤해진다. 그래서 아버지와 선생님과 선배와 직장 상사랑 멀어지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할 경우에는 어색하게 맞장구치거나 꿀 먹은 벙어리로 앉아 있다가 상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혹은 털끝만 한 찬스를 노려 빠져나온다. 그러고 나면 아버지나 선생님이나 선배나 상사는 이렇게 생각하며 입맛을 다신다.

“저 녀석은 젊은이다운 기백이 없어. 어떻게 저렇게 자기 생각들이 없을 수 있지?”

천만의 말씀이고 만만의 콩떡이다. 그 아들, 그 제자, 그 후배, 그 부하직원들이 자기들끼리 있으면 세상 무서울 것 없고 오히려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해 피가 끓어 올라 넘치는 팔팔한 청춘들이다.
우습게도 이런 꼰대질은 개인을 떠나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마비증세를 일으킨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행사들, 지자체 관련 행사와 동창회 행사, 향우회 행사, 집안 행사를 막론하고 이런 꼰대질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가득 차 있다. 어느 행사를 가나 정치적으로 유력하거나 회 내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행사의 취지나 이유와 상관없이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연설문을 늘어놓고 온갖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인사시키고 자기 업적을 자랑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꼰대질로 도배되어 있다. 인사말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행사와 큰 상관 없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말들 대부분도 행사의 취지와 큰 상관 없다. 인사말들은 30초에서 1분이면 족할 것을 주절주절 6~7분 넘긴다.

그러니 그런 꼰대질 행사에 젊은이들이 참가하거나 관심 가질 턱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개인적 성향이 강한 젊은이들이 위력이나 날리고 나이 자랑만 일삼는 이런 꼰대 행사에 오고 싶겠는가? 당연히 행사란 행사마다 마지막 교복 세대로 규율과 집단의식, 막연한 충성의식으로 세뇌당해 꼰대질마저 꼰대질인 줄 모르는 50대 후반 이상, 늙수그레한 세대들이 주역이 되어 독식(獨食)하고 독백(獨白)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행사장을 외면하는 젊은이들을 이렇게 단정해버린다.

“요즘 젊은것들은 동창이나 고향 중한 줄 몰라”
“갈수록 젊은이들의 시민 정신이 얄팍해지거든. 도대체 이웃과 사회에 관심이 없어”

자서전이 주제를 벗어나는 것은 독자에 대한 꼰대질과 같다. 자신의 찬란한 인생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다면 곁가지 치지 말고 처음 말하고자 한 주제에 집중하라. 이웃집 순이와 사돈의 팔촌 이야기는 따로 주제를 정해서 하면 된다. 소중한 자기 인생 대서사시에 꼰대질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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