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의 슬픈 공통점, 가족이 사라진 주인공들

재벌기업가, 유명 정치인의 부인들과 자녀들
믿기 어려운 일탈행위들 앞만 보고 달리다 가족 돌보지 못한 결과

박근영 기자 / 2022년 0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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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경주 출신 유명 기업가가 변호사로 출발하는 딸에게 보낸 카톡 메세지.

지난주 토요일, 나보다 꽤 선배이신 어느 선생님 부부와 만나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이 자리에서 우연히 이 란에 내가 작정하고 쓴 ‘꼰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은 그 글을 읽고 자신은 혹시 아랫사람들에게 꼰대 노릇하는 것 아닌가고 깊이 헤아려 보았노라 말씀하시면서 꼰대 되지 않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 고백하셨다.
 
다행히 그 선생님은 당신 부부보다 젊은 우리 부부를 연령을 뛰어넘어 친밀하고 편안하게 대해주실 만큼 전혀 꼰대 같지 않은 분이다. 특히 사모님에 대해 각별히 자애로우셔서 우리 부부에게 멋진 귀감이 되신다.

선생님과 말씀 나누다 자서전 쓰는 분들에 대한 유감스러운 이야기가 문득 나왔다. 자서전쯤 쓸 분들이라면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일 텐데 무슨 유감이 있을까라고 물을 법하다. 그러나 이것은 뜻밖에도 매우 치명적인 유감이다.

자서전을 낸 사람들 대부분이 가족들과의 사이가 그다지 살갑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말인가라며 고개를 흔들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다. 자서전 내신 분들이 대부분 자신의 인생 전반에서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린 분들이다 보니 자신의 세상에만 갇혀 미쳐 가족들을 제대로 돌아볼 틈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부부 사이가 대면대면하고 자식들과의 사이도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기대되는 화목함이나 따스함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가끔 TV드라마를 보면 기업체 회장이나 고위 공직자인 아버지가 아내에게 군림하거나 자식들에게 필요 이상 엄하게 묘사되곤 하는데 자서전 낸 많은 분들의 경우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주인공이 아내와 자녀들에게 군림하는 것 못지않게 아내와 자녀들은 마치 주인공처럼 자기보다 약한 상대, 자기보다 아래 사람들에게 마치 자기 아버지처럼 군다는 사실이다.

최근 우리는 재벌기업가와 유명 정치인들의 부인·자녀들이 믿기 어려운 일탈행위로 해당 기업과 정치인을 망조로 몰아넣은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보았다. 갑질을 일삼는 부인들과 마약과 도박에 빠진 아들과 딸, 음주운전도 모자라 제지하는 경찰에게 폭행을 행사한 아들들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자서전을 보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밤낮없이 달린 그들의 땀과 노력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빼곡이 적혀 있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이 거의 대부분 주인공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그땐 정말 시간이 부족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들어가면 밤 2~3시가 넘었다. 어떤 때는 숫제 청사에서 밤을 지새웠다. 집에 돌아가서 잠깐 눈 붙이고 옷만 갈아입고 새벽같이 출근해 다시 업무를 보았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주중에 밀린 보고서를 보아야 했고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있을 확대간부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어느 고위공직자 출신의 주인공은 자신의 업무실은 주말에도 밤늦게 불이 켜져 있었다는 내용을 자랑스럽게 책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런 노력의 이면에 자연스럽게 소외된 대상이 바로 가족이란 사실은 당사인 주인공이 늘 간과하고 있던 사항이다. 그 주인공이 직장에서 혹은 사업체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동안 배우자와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배우자나 부·모와 무관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지금의 50대 중반 이상의 연령대를 산 사람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50대 중반 이상의 세대들이 한창 젊었을 1980년대 이전은 대한민국이 성장일로였고 누구나 일을 우선으로 하면서 살던 시대였다. 직장인이건 공무원이건 맡은 직분에 몰두하는 것이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최선인 줄 알고 살았다.

그중에서 가장 열심히 산 사람들이 바로 자서전의 주인공들이다. 기업에서 공직에서 사업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자서전이라도 한 권 내 볼 깜냥을 가질 만큼 성공한 것이다. 다행히 그들이 이룬 성공이 좋은 영향력을 발휘해 배우자를 현실적으로 풍요롭거나 명예롭게 하고 자녀들에게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락감을 제공했을 테지만 아쉽게도 상호관계라는 측면에서는 의문부호가 생겼다.

또 하나 공통점이 자서전 주인공들이 더 이상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좀 나쁘게 말하면 자서전을 내는 사람들 상당수가 과거의 영화로움에 발이 묶여 현실의 만족이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고위 공직자 출신의 주인공들은 자서전을 자신의 과거 영광을 검증하는 타임머신쯤으로 아는 경우도 흔하다.

내가 한창 여행업에 종사할 당시 어느 군단장 출신의 장성은 군시절의 영화를 잊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명령조로 말하다가 급기야 룸메이트와 방을 쓰지 못하고 인솔자인 나와 같이 방을 쓰기도 했다. 그 예비역 장성은 한때 자기 말 한 마디면 수만 명 군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는데 퇴직하고 나니 아내와 자식들도 자기 말을 안 듣고 심지어 현역 때 늘 자기에게 굽신거리던 친구들조차 예전과 전혀 딴판이더라며 여행 내내 군시절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자서전 주인공들의 이야기에는 이상하리만큼 가족들에 대한 언급이 적다. 아내의 이야기는 지극히 형식적이고 아들과 딸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없거나 한두 단원에서 그치기 일쑤다.
물론 그렇지 않은 주인공들도 당연히 있다. 최근 펴낸 어느 시장의 자서전에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몇 단락이나 들어 있었고 실제로 그 아내분이 그 시장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어디서나 혼신을 다해 시민들과 소통하는 살가운 모습도 보았다. 어느 기업가는 부인과 자녀들과의 사이가 좋은 것을 떠나 심지어 그 부인이 기업 내 임직원들을 대하는 품위나 그 자녀들이 차리는 예절을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오기도 했다. 그 기업가가 다른 곳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딸에게 보내는 조언(사진)이 어찌나 인상적이었는지 일부러 페이스북에 소개한 적도 있었다.

요컨대 아무리 자기분야에서 괄목할 업적을 쌓았어도 가족과 동떨어진 삶이라면 그 훌륭한 업적을 온전히 만족스러운 삶으로 규정짓기 힘들다는 뜻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매우 주관적인 입장일 뿐 실제 자서전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을 수 있고 당연히 그것을 존중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드라마가 있듯 누구에게나 살아온 삶에 부여하는 의미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와 담소 나눈 선생님은 가족과의 살가움이 훨씬 성공한 인생이라 단언하셨다.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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