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나누기로 책 읽는 성취감과 재미를 주자

시간적 배열 업적과 신념의 반영에
디자인의 요소까지 포함함 단락 나누기

박근영 기자 / 2022년 0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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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락을 나눈 후 디자인한 속표지들의 다양한 사례.

12장에서 잠깐 자서전 단원 나누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보통 대부분의 자서전은 5~6개의 단원으로 나누는데 그때 소개한 이영만 선생님은 무려 13개의 단원으로 나눌 만큼 구분이 명확하면서도 다양한 글들이 있다고 말했었다. 더 기억력이 좋은 분들은 그 이전에 내 블로그가 다양한 단원으로 무려 1500개 넘는 글이 들어 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거기에는 큰 단원이 15개고 그 속에 작은 단원이 45개나 있다. 그 속에 평균 잡아 30개의 글이 들어 있으니 이게 전부 자서전의 자료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 자서전 쓰는 분들은 막상 자서전을 꾸며놓고 나면 5~6개 단락을 나누기조차 버거울 만큼 글이 적은 적을 알게 된다. 물론 찬찬히 생각해보면 쓸 수 있는 내용들이 더 많이 생기겠지만 대개의 경우 갑자기 기억력을 총동원해 책을 펴내다보니 단기간에 그 세세한 기억들을 다 꺼내지 못할 뿐이다. 그렇다보니 보통 40~50편 정도의 글로 자서전을 펴내고 그것을 토대로 공통분모를 모아 단원을 설정하게 된다.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단원 나누기는 시간적 배열이다. 자서전 주인공이 50대라면 유년기, 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로 구분 짓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것을 학교에 맞추어 유년기, 초등학교기, 중고등학교기, 대학기, 직장생활, 사업기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직장생활이란 일반 기업 생활, 공직 등이 망라된다. 특별한 체육인이나 예술인, 학자들은 입문기, 단련기, 숙련기, 전성기, 은퇴기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인데 이 역시 따지고 보면 시간적 배열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시간적 배열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내가 펴낸 모 국회의원의 자서전은 제목이 ‘절차탁마 OOO의 길’이었는데 단원나누기를 절, 차. 탁, 마, 길로 꾸몄다. 이 역시 시간적인 배열이었지만 각 단원을 시각적으로 디자인해 일반적인 시간배열이라는 느낌을 덜고 조금 더 전문적인 듯한 모습을 취했다.

시간적 배열이 무시되어도 좋은 경우도 물론 흔하다. 자서전을 당연한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이다 보니 정치인들의 책 분류는 일반의 범주에서 조금 벗어난다. 그들은 보통 자신의 인생 이야기는 정말 뚜렷하게 어필할 만한 특별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쓰는 한편 대부분 자신의 정치적 업적이나 능력, 자신의 정책이나 비전, 사람들과의 소통에 대해 쓰려는 경향이 많다. 또 이런 분들은 언론이 비춘 자신의 모습이나 방송에 나온 경험 자기의 정치경력에 보탬이 될 만한 또 다른 문화인이나 자신보다 우위의 정치인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글들도 곧잘 쓴다.

이런 정치인들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인생에 대한 정리, 지금까지의 업적, 신념과 철학에 대한 단상, 소통해온 사람들, 제시하는 미래비전, 화보 등의 순으로 단원이 나뉘어진다. 위의 모 국회의원의 경우도 시간의 배열과 함께 이런 기반을 바탕에 두고 단원을 배열했다.

역시 내가 펴낸 어느 정치인의 자서전에는 이런 경향을 여과 없이 반영했다. 공무원 출신으로 서울의 어느 구에서 부구청장까지 지낸 경주 출향인의 책이었는데 그 단락이 1. 집안을 책임진 아이’ 2. 공직 그 막중한 의미의 시작, 3. OO에서 뛰다. 4. 공복의 자세, 5. 화보 식으로 꾸몄다. 그 책 제목이 ‘당신이 있어서 행복합니다’였는데 마지막에 그 제목에 대한 상세한 신념을 설명하는 것으로 단원 하나에 단락 하나를 넣어서 마무리했다.

최근에 펴낸 어느 지방 도시 시장의 자서전은 가장 앞에 그 시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업적과 미래의 비전으로 제시한 정책을 따서 ‘GTX시장OOO(OOO은 이름)’이라 했고 주인공을 ‘언제나 청년’이라는 의미에서 청년 OOO, 정치이력에 따라 시의원 OOO, 시장 OOO, 그 시장의 모토를 따라 사람중심 OOO, 부록 등으로 꾸몄다. 이것은 다분히 전략적인 분류였는데 정치인들의 자서전은 이렇게 전략적인 부분이 고려되기 십상이다.

다시 말해 단락 나누기는 책 속의 책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구분점이다. 그러니 단락이 많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책을 구성하는 내용이 다양하고 풍요롭다는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단락은 책 내용을 주제나 상황에 맞게 나누어주는 의미도 있지만 책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오래전 책들은 이런 단락을 생각하지도 못했고 디자인의 중요성도 몰라서 단락나누기를 거의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자서전에서만 이 단락나누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지간한 책들은 모두 적적히 단락을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단락이 있으면 책을 읽는 성취감도 각별해 질 수 있다. 어지간하면 300페이지 넘는 책들이 5~6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으면 단락을 지날 때마다 그 부분이 제시하는 내용을 파악했다는 기분이 생길 것 아닌가?

단락 나누기는 내용만큼 디자인의 요소에서도 중요하다. 따지고 보면 단락은 컬러 인쇄가 시작되면서 더 중요한 비중을 두고 다루어졌다. 왜냐하면 단락을 나누고 그 단락에 사용하는 디자인의 색상과 배열에 따라 책을 감각적이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단락의 첫 장을 출판업계에서는 아직도 우리말이 익숙하지 않아 흔히 ‘도비라〔とびら〕’라는 일본어로 표현하는 경향이 짙다. 도비라는 ‘문’ 또는 ‘문짝’, ‘속 표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책 속 단락의 첫 페이지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디바이더〔divider〕’라고 하는데 아직도 보통 ‘도비라’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상당수의 전문영역이 오랜 기간 일제강점기의 영향을 받아 그 용어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출판계도 마찬가지라 여겨져 씁쓸하다. 여기서는 ‘속표지’라고 통일시켜서 사용하겠다.

이 속표지는 표지에 못지않게 근사하게 꾸미고 색상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실력을 증명하기 어려운 것이 책 디자인인데 때문에 책을 디자인 하는 디자이너들은 이 속표지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속표지는 사진을 활용하기도 하고 디자이너 나름의 특별한 디자인 요소로 꾸미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나중에 책을 인쇄하고나 보면 속지들 사이에 단락에 따라 선들이 쭉쭉 그어진 듯 보여서 책 디자인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속표지로 디자인의 완성도를 따지기도 하고 단락이 달라지는 곳을 쉽게 구분해내는 기준으로 삼는다.

지금 당장 서가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보라. 책이 어떤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는지 속표지는 어떻게 디자인되어 있는지 알고 본다면 책을 대하는 즐거움이 조금 더 커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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