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반, 책 쓰기보다 어려운 제목 정하기

좋은 제목이 책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책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눈길부터 끌어야 한다

박근영 기자 / 2022년 0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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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어느 정도 완성하고 나면 작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어떤 제목을 붙이면 책이 좀 그럴싸하게 보이고 책 내용을 단숨에 알려줄 수 있을까?
판매를 염두에 둔다면 어떻게 이름 지으면 판매에 조금이라도 유리할까 같은 고민이다.
거짓말 좀 보태면 책 제목 정하는 것이 책 쓰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어렵게 느껴진다.

자서전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사람의 인생을 쓰는 것이고 별의별 사람들이 자서전을 펴내는 마당이니 조금이라도 눈에 띄거나 튀어 보이는 제목을 정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런 제목이 쉬운 것도 아니고 자칫 제목을 잘 못 정하면 기껏 낸 책이 성격 구분을 못 해 폭망(폭삭 망함)하는 일도 생긴다.

그 대표적인 폭망이 자서전 쓰기 강좌를 하면서 몇 번 이야기한 나의 첫 자서전 ‘니, 꼬치 있나?’다. 이 책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경주시 교촌에서 뛰어놀며 부대낀 이야기를 쓴 것이다.
 
말했듯이 그 진행이 재미있어 daum의 메인 화면에 자주 소개되며 내 블로그를 일약 ‘우수블로그’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무려 daum 30대 블로그에 들 정도였으니 글의 재미나 소재의 특별함이 증명되고도 남았다. 이를 관심 가지고 지켜본 ‘금붕어’라는 출판사가 책을 펴내자고 제안해 일사천리로 출판이 진행됐다.

원고는 이미 나와 있고 각각의 원고마다 제목까지 다 정해져 있으니 달리 손댈 게 없었다.
그러나 딱 하나, 가장 중요한 제목이 정해지지 않았다.

블로그 제목처럼 그냥 ‘386 세대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할까 하는 생각부터 시작해 아마도 한 1천 개쯤의 제목을 떠올렸을 것이다. 책의 내용과 추억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삼빡한 제목을 정할지를 책이 디자인되고 편집되는 일주일 넘게 고심했다.

나뿐 아니라 출판사에도 고민했고 내 지인들이 죄다 달려들어 고민했다. 특히 당시에 인터넷 카페가 최고조로 인기 있던 시절이었고 내가 속한 카페마다 일부러 내 글방이 따로 만들어질 만큼 인기 있었기에 카페 멤버들의 기대도 상당했다. 내가 등록된 카페마다 작은 경품을 걸고 제목 정하기 열풍에 불을 붙였다.

그러다 결국 ‘니, 꼬치 있나?’로 결정했다. ‘니, 꼬치 있나?’는 책 속 한 단락의 제목이었다. 표준말로 ‘너 고추 있니?’ 다시 말해 ‘너, 남자냐’, ‘너, 사나이 대장부냐?’라는 말이었다. 그때 교촌 위쪽 반월성 어귀에 ‘문디바우’라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담력 시합을 벌이면서 나온 말이다.

내 블로그에 이 단락이 발표되었을 때 그 글을 보고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어 글이 재미있다고 시쳇말로 난리가 났었다. 김유정의 ‘봄봄’이나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김동인의 ‘배따라기’보다 백 배 재미있다는 반응이었었다.
 
이 결정은 ‘니, 꼬치 있나?’의 뜻을 잘 아는 경상도 사람들이 강력한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예측과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일단 책을 펴볼 다른 지방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황당무계한 속셈이 곁들여진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부터 말하면 이 결정은 두고두고 후회한 최대의 오판이었다. 마침내 책이 나왔고 전국의 판매대에 올라갔지만 블로그의 엄청난 인기와 달리 책 판매가 영 시원치 않았다.
 
그나마 블로그와 온갖 카페 펜들의 힘을 입어 잠깐이나마 베스트셀러에도 올랐지만 그 정도로 끝이었다. 내심으로 최소한 10쇄는 찍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3000부 1쇄 찍고 절판됐다.
 
역시 블로그의 자체의 파워와 온갖 카페 회원들의 성원으로 그해 말 daum에서 개최한 ‘인기 있는 책 순위’에서 무려 1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 판매실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출판사와 나는 제목이 잘 못 되었다고 판단했다. 책 판매가 부진했던 데는 온갖 이유가 있었겠지만 제목이 선명하지 못했다는 점에 최후의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하필 책 디자인도 ‘너 사나이 대장부냐?’고 묻는 제목을 하나도 반영하지 못했다.
디자이너가 표지에 꽃을 잔뜩 그려 놓아서 얼핏 보면 그 무렵 유행하던 무슨 도배지나 장판지를 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애석하게도 경상도 사람들조차 이미 표준어의 거대한 물결에 밀려 ‘니, 꼬치 있나?’의 꼬치를 무슨 주점의 안주쯤으로 알았고 다른 지역 사람들은 더더욱 책 익숙하지 않아 책 판매대 가운데를 점령하고 있던 내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제목으로 폭망한 반면 제목이 좋아서 성공한 책들도 엄청 많다.
그런 예는 지나치게 많아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만 얼핏 떠오르는 제목들이 ‘마시멜로 이야기’, ‘아프니까 청춘이다’,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같은 것들이다. 사실은 책 내용보다는 책을 펴낸 저자들이 더 유명해서 성공한 책이지만 제목만큼은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책들이다. 이들은 원하는 독자층을 정확하게 타켓으로 삼아 그들의 감성을 잘 건드린 최고의 제목들이다.

내가 펴낸 어느 자서전에서 기억나는 제목이 하나 있다.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라는 제목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의 모 구청장 선거에 나가는 분이었는데 책을 다 써놓고 어느 지인으로부터 이 제목을 전달받았다며 좋지 않으냐고 물었다.
 
선거용 전략으로 딱 좋겠다 싶어 그렇게 제목을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제목에 관해 저자와 내 관점이 조금 달랐다.

주인공은 자기를 중심으로 두고 자기 자신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행복하다고 판단한 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저자가 행복하다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내가 크게 웃었다.

“아니, 선거에 나가실 분이 이렇게 자기 위주로 생각하면 어떻게 구민들의 마음을 얻겠습니까? 당연히 구민들이나 유권자들이 있어서 내가 행복한 것이어야 하지요”

내 설득에 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점이 달라지니 똑같은 제목이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와닿은 것이다. 결국 타인의 존재로 저자가 행복해진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머리말과 본문해석이 추가되었고 책이 나온 뒤 읽은 분들에게 제목 참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런가 하면 내가 경주최부자댁을 집중 취재해 쓴 책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는 제목 정하는 데만 무려 1년이 걸린 책이었다. 이 책은 경주최부자 종손 최염 회장님을 모시고 무려 3년이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각 내용에 맞추어 오랜 취재를 통해 완성했는데 막상 다 써놓고 나서 제목을 확정하지 못해 애먹은 책이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제목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는 ‘큰 바보’라는 최고의 경의를 담은 제목이었다.
 
그러나 책을 내는데 함께 참여하신 경주최부자댁 종손이신 최염 회장님 입장에서는 혹여라도 후손이 조상에 대해 불손하게 비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셨다. 이 일로 최염 회장님이나 나를 통해 의견을 주신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그중에는 독립운동사의 큰 별이신 조동걸 교수님,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이셨고 학술원 회원이셨던 박병호 교수님 같은 석학들도 계셨다.

이런 분들이 경주최부자 가문이야말로 바보 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큰 바보’라 해도 좋은 분들이라며 손을 들어주시고서야 비로소 책 제목을 정할 수 있었다. 그러느라 일 년을 넘게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도 그 책 제목을 정하기는 참 잘했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고 있다.

이렇게 제목 정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물론 제목보다 내용이 좋아야 하지만 때로는 좋은 제목 하나가 책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으므로 제목 정하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정글 같은 책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선 눈길부터 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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