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요체, 책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머리말’

책을 왜 썼는지 독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사회 전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을 쓰는 것은 마케팅에 필수적

박근영 기자 / 2022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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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을 쓰고 단원을 나누고 제목까지 잡고 나면 책을 다 끝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가 써야 할 글 중 본문만 어느 정도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본격적으로 지금부터 책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첫 번째가 머리말과 맺음말을 쓰는 것이다. 영어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라고도 많이 쓰는데 그냥 머리말과 맺음말이라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머리말을 ‘책을 내면서’로 맺음말을 ‘책을 낸 후’라고 바꿔서 써도 좋고 책의 내용이나 저자의 가치관에 비추어 별도의 제목으로 꾸며서 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주 단순한 작업 같지만 이 머리말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주 많은 독자들이 책을 구입할 때 책 내용을 먼저 보지 않고 머리말과 목차를 먼저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머리말부터 눈길을 끌어오는 ‘한 방’이 필요하다.

이 글을 쓰면서 계속 써먹는 나의 첫 책 ‘니, 꼬치 있나?’의 경우 머리말을 ‘마지막 남자들을 위하여’로 썼다. 책 제목이 ‘니, 꼬치 있나?’로 썼으니 책 제목만 보면 마치 남성성을 굉장히 부각시킨 듯 보인다. 실제로 타겟 독자층도 그렇게 잡은 것이니 머리말도 그와 상관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마지막 남자들을 위하여’는 지금 생각해도 방향을 잘 잡은 머리말 제목이었다. 그러나 머리말의 내용은 다소 욕심스럽게도 이 책을 볼 독자층들이 전방위의 세대임을 강조하기 위해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야 할 시대 이야기와 추억담이라고 주절거렸다. 그때 처음 내는 책이어서 책 머리말에 대해 중요한 것은 인식한 반면 타겟을 더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못한 셈이다.

조금 대조적이었던 책이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였는데 여기서는 머리말을 두 개로 나누었다. 책을 내는데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 최염 회장님의 소감과 저자인 내 소감을 따로 적은 것이다. 제목으로 최염 회장님 소감을 적은 머리말은 ‘최부자 주손의 세 가지 소원’이라고 썼고 내 소감의 머리말 제목으로는 ‘최부자 정신의 세계화를 위하여’라고 달았다. 최염 회장님의 소원은 후손으로서 당대에 12대에 걸친 경주최부자 정신을 책으로 남기는 것과 할아버지이신 문파 최준 선생의 행적을 제대로 기록하는 일, 영남대학교 재단을 최부자 정신에 맞게 회복하는 것이었다.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는 이중 12대에 걸친 교훈을 정리한 것이고 문파 선생님에 대한 책은 이런저런 이유로 발간하지 않고 한글파일로만 남아 있다. 내가 주창한 최부자 정신의 세계화는 당시로서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자 숙제로 여겨졌으나 역시 이런저런 여건으로 추가로 책을 발간하지 않음으로 인해 중단된 상태다.

자서전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머리말을 대부분 소통과 화합, 감사, 공감 같은 것으로 꾸미기를 원한다. 정치의 기본 덕목이 소통과 화합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게 먹힌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펴낸 대부분 정치인들의 책 머리말 역시 이런 단어들로 나열되었다. 정치인들의 책이 천편일률 밋밋한 자기 자랑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머리말 제목으로나마 공감을 확대하려는 간절함이 깃든 결과일 것이다.

머리말 내용은 위에서 말했듯 책을 특정하는 소개라고 해도 좋다. 특히 최근 들어서 마케팅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머리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책의 향방이 달라질 정도다. 책을 왜 썼는지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사회 전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에 대해 쓰는 것은 마케팅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여기에 책을 쓰면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넣어도 좋고 책을 쓰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인상적인 대목의 언급 등을 넣어도 좋다.

책 머리말을 떠올릴 때마다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이 떠오른다. 일반적인 저자들이 머리말을 작게는 한두 페이지, 많게는 서너 페이지쯤 쓰는 반면 김용옥 선생은 머리말을 원고지 100매 이상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자신의 초기 명저인 ‘여자란 무엇인가?’,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책들은 머리말이 깨알 같은 당시 책의 글씨로 4~50페이지나 될 정도였다. ‘노자와 21세기’ 같은 책도 머리말만 십수 페이지고 ‘도올 논어’는 숫제 책 3분의 1일 머리말로 꾸며졌을 정도다. 그런데 이런 머리말이 본문만큼 흥미로웠던 것이, 당시 대한민국이 격변기였고 특히 김용옥 선생의 경우 그 시대 화제의 중심인물이었기 때문에, 책 발간을 전후한 일련의 사회적 분위기와 자신에게 닥쳤던 여러 가지 주변 환경들에 대한 설명이 여간 흥미진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사회현상을 통틀어 머리말에 옮겨 놓은 것만으로 그 시대를 단정하는 중요한 저술로 여겨졌다. 책의 발간 경위와 책의 가치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김용옥 선생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김용옥 선생의 독자들에게는 매우 익숙하고 기대되는 일이었다.

자서전에서 머리말을 쓸 때는 각별히 고려할 일도 있다. 책을 발간하면서 특별히 감사해야 할 대상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자서전이라고 하는 장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지만 사람이란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므로 반드시 주변인들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일 수 있고 그들 모두가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다. 더구나 자서전은 ‘과거’라는 시점에 맞추어진 만큼 지난 세 월동안 소통한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와 은사, 인연을 깊이 나눈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머리글에서 그런 사람들을 언급하는 것은 연말 상 받는 연예인들이 소감에서 누구누구를 언급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말은 없어지지만 글은 오래 남기 때문이다. 때문에 누구에게 고마움을 전할지 미리 정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자서전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다른 장르의 책에서는 사족일 뿐이다.

머리말이 다분히 전략적이라면 맺음말은 다소 자기중심적이다. 아마도 독자들이 맺음말까지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많은 경우 맺음말 없이 머리말로 끝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맺음말은 책을 펴낸 후의 소감을 쓰는 것인 만큼 머리말에 쓰지 않았던 후일담을 쓰거나 머리말을 전략적으로 쓰느라 빼놓았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책의 내용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맺음말을 쓸 수도 있다. 다시 돌아가 ‘니, 꼬치 있나?’에서 맺음말 제목은 ‘마지막 원시시대’였다. 내용은 책의 내용을 간추려 최종적으로 우리 세대 남자들이 수렵과 어로와 채취를 마지막으로 경험한 최후의 원시인이라는 것으로 꾸몄고 자연의 혜택을 마지막으로 받은 세대인 만큼 후세들에게 이 자연을 제대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그에 반해 내가 펴낸 많은 책에서 맺음말은 생략했다. 머리말에서 필요한 말을 다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머리말은 책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책을 다 쓴 분이라면 머리말을 어떻게 하면 멋지게 쓸지 궁리해보자. 어쩌면 이게 더 어렵고 재미있는 작업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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