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필은 남의 머릿속에서 보석 찾아 내는 일

50~60개 소재로 250p~300p정도가 기본

박근영 기자 / 2022년 10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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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 들어서는 순간 여러분은 드디어 작가의 타이틀을 달게 된다. 물론 작가라고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신문이나 잡지 등의 추천이나 경연을 거쳐 문단에 데뷔하는 것이 상례지만 요즘처럼 신문사 문예 경선의 가치가 떨어지고 우후죽순, 온갖 잡지들이 난립하면서 남발하는 작가의 타이틀보다는 남의 책일망정 제대로 된 자서전을 대필하는 것이 훨씬 프로다운 작가라 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전문적인 대필작가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지만 사실 일반인의 자서전 쓰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사항이 주인공 1인칭 시점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객체에 대한 3인칭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훨씬 까다로운 과정이 수반될 뿐이다. 쉽게 말해서 지금까지는 자기 머릿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찾아서 쓰면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남의 머리에 들어 있는 남의 이야기를 마치 자기의 것처럼 꺼내서 써야 한다. 자서전 자체는 비록 대필작가가 쓰지만 대필작가는 글 쓰는 동안은 그 자신이 아닌 의뢰자의 생각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렇게 남의 머릿속에서 꺼낸 글들로 책 한 권을 엮는다는 것은 실상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 버거워할 필요도 없다. 이전, 자신의 책을 쓸 때처럼 남의 책을 쓴다고 해서 남의 인생 전체를 미주알고주알 써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의 손을 빌어 책을 내겠다는 사람들의 특징이 자기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나름대로 세상을 열심히 살아서 무언가 할 이야기가 넘쳐날 듯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떤 이야기를 중요하게 내세울지 망설이게 된다. 250~300P정도의 책 한 권 엮어낼 분량의 이야기가 되려면 적어도 50~60개 정도의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데 대부분 20개도 못 가서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다. 그러니 인생 전반을 체계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정리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어지간한 글쯤은 자신이 쓸 수 있는 기량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굳이 대필작가가 나서서 책을 써주지 않더라도 이미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책으로 펴낼 만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 어떤 소중한 보석이 들어있는지 잊어버린 채 세상을 살아왔을 것이다.

사실 대필작가의 기능은 바로 이런 한계에 부딪힌 사람들의 기억을 헤집고 들어가 형형색색의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꺼내오는 데서 제대로 빛을 낸다. 따라서 의뢰자의 기억을 파고드는 무기, 즉 이야기를 끌어내는 기술이 많은 작가일수록 좋은 이야기들을 끌어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기술은 자신의 자서전을 써봄으로써 단련된다. 자신의 책을 써보지 않았거나 최소한 자신을 소재로 혹은 남이나 특정 소재나 주제를 중심으로 책을 써보지 않은 사람은 대필작가의 기술을 가지기 힘들다. 왜냐하면 자신에게서나 특정 사안에서 체계적으로 이야기를 추려내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경험이 없다면 남의 인생에 들어가서 그것을 퍼낼 만큼의 기술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번 장 이후의 자서전 쓰기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자서전을 써본 사람 혹은 책을 한두 권 써본 사람들이 남의 자서전을 대필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했다. 따라서 이 글을 탐독할 사람들이라면 기본적인 글쓰기 실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라도 역시 남의 책을 쓴다는 것은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 만큼 교본으로 삼을 만한 지침서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부터 그것을 체계적으로 알려 드리겠다.

-대필의 시작 ‘계약’, 솔직하고 세부적으로 명시해야

가장 먼저 대필은 정확한 계약이 필요하다. 계약이란 게 달리 있을 게 없다. 대필료를 어떻게 책정하고 언제까지 얼마만큼의 분량으로 책을 내겠다는 상호간의 약속을 미리 정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한데 대필 초보자들이 흔히 일으키는 대부분의 실수가 비용을 정확하게 책정하지 않고 대충 두루뭉술하게 합의하고 책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특히 주요 일간지나 방송사 베테랑 기자 출신들이 이런 일을 자주 저지른다. 이들은 탁월한 취재 능력을 가지고 있고 문장력도 수준급이다. 더구나 보통 자신과 관련된 취재원들의 책을 대필하다 보니 의뢰자의 재력이나 평소의 관계 등을 과신해서 무턱대고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기 쉽다. 특히 기자라는 신분상 자신을 ‘갑’이라 생각하고 ‘이 정도는 받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필을 의뢰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다가다 한 번쯤은 대필시장을 탐문해 보았을 것이므로 자신이 생각하는 비용이 기자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이 책정한 비용을 기자에게 함부로 이야기하지도 않는 것이 의뢰자 역시 거꾸로 기자가 대필시장을 어느 정도 알 것이라 혼자서 단정하고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의뢰자는 기자가 이전에 이미 대필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기도 한다. 거기서부터 삐걱댄다면 대필작가를 고용할 필요도 없다. 요컨대 계약은 대필작가가 더 명료하게 선을 긋고 시작해야 하는 작업이다. 적어도 대필 시장에서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쪽은 기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어느 기자가 이런 일로 낭패 본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어느 일간지 기자가 은퇴 후 유명한 프로 골퍼의 자서전을 대필했는데 자신이 생각한 비용과 골퍼가 제시한 비용 사이의 차이가 심해 소송을 벌였다는 것이다. 기자는 골퍼의 경력이나 경기 이력 등을 조사하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 취재하는 등 나름대로 열성을 다했다. 그렇게 책을 완성한 후 억대의 대필료를 요구했는데 여기서 서로 간의 입장차이가 생긴 것이다. 기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일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글 쓴 자신만의 노력과 노하우를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뢰자의 입장에서는 시장에 나와 있는 대필료에 취재에 필요한 실경비 정도만 더 책정했을 것이다. 당연히 하늘과 땅 차이의 대필료 논쟁이 일어났을 것이고.

웃기는 것은 나 역시 처음 쓴 대필에서 이 부분을 분명히 하지 않아 곤란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내가 제시했던 대필료가 시장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의뢰자와 불편한 마찰을 빚을 뻔했다. 대필 세상에 대해 거의 몰랐던 초보 대필작가였으니 당연히 겪어야 했을 성장통이었을 것이다.

대필료 계약에는 반드시 명시해야 할 것이 있다. 대필작가와 의뢰인 모두의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항목은 대필료, 대필료 지급 방법, 대필기한, 인터뷰 시간, 원고의 량 등이 구체적으로 작성되어야 한다. 이 외에 특별한 취재, 예를 들어 위 기자의 경우에서 말한 외부 취재나 탐문 경비 같은 것을 별개의 항목으로 두는 것도 필요하다. 여기서 생각보다 중요한 항목이 대필기한이다. 상당히 많은 자서전이 지방자치단체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를 목표로 쓰여지는 현실에 빗대어볼 때 대필기한은 더 중요하다. 정치인들이 미리 느긋하게 책 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바람이 불어 부랴부랴 책을 펴내기 일쑤다. 그러다보면 생각 외로 작업이 촉박해 책이 날림으로 만들어지기 쉽다. 이것은 대필작가에게나 의뢰인이 정말 냉정하게 지켜야 할 항목이다. 그래야 나중에 다른 마찰을 빚을 일이 없어진다.

대필 시장의 구체적인 비용에 대해서는 전장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대필작가와 의뢰자간에 어느 정도의 선에서 자서전을 쓸지를 결정하고 대필료를 결정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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