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 말 것, 글만큼은 당신이 훨씬 고수다!!

의뢰인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때 좋은 인터뷰가 진행된다

박근영 기자 / 2022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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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상강의를 시작하면서 3번째 ‘인터뷰’란에서 자신에게 스스로 하는 인터뷰에 대해 소개했다, 이런 방식은 의뢰자에 대한 인터뷰에도 똑같이 적용할 만한 기본적인 방법이다. 더구나 앞 강의에서 말한 ‘취재’가 잘 되어 있다면 인터뷰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취재가 잘 되어 있더라도 마냥 인터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인터뷰는 다분히 작가가 전체적인 틀을 고려하고 그 속에서 진행되도록 이끌어야 하는데 취재 자료가 많거나 세세한 부분에 들어가다 보면 자칫 불필요한 곁가지로 인터뷰가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의뢰자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질문의 의도와 상관없이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전개되기 쉽다. 적절한 타이밍에 끊어주지 못하면 시간만 허비할 뿐 얻고자 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다.

이번 호는 대필을 의뢰한 사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작가의 의도대로 이끌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악력이다.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연히 의뢰자다. 최대한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할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의뢰자를 효과적으로 장악하고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많은 대필작가들이 의뢰자에 대해 장악력을 가지지 못해 무턱대고 끌려다니다 대필을 포기하거나 혼란에 빠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뢰자는 보통 자기 분야에 성공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사회적으로 유명인사 혹은 정치적으로 꽤나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반면 대필작가는 ‘겨우’ 대필작가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의뢰자를 장악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언젠가 내가 대필했던 모 정치인의 경우도 딱 이런 경우에 속했다. 그 정치인은 대단한 달변가이고 이론가다. 글도 꽤 잘 써서 충분히 스스로 자서전을 낼 만큼 역량 있는 분이었다, 더구나 탄탄한 기획력에 시민들을 위해 이루어 놓은 업적도 많아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빠듯한 시정 때문에 그 자신 느긋하게 앉아서 자서전을 쓸 만큼 여유 있지 않았고 내놓고 책을 쓰자니 선뜻 자신감이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럴 무렵 모 유명 출판사가 내놓고 그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써보자며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나섰다. 정치가 입장에서야 그렇지 않아도 자서전이 필요한 마당에 출판사가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나섰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출판사와 일정을 조절해 출판사에서 추천한 대필작가와 만났다.

하루종일 인터뷰하고 나서 대필작가가 돌아갔는데 며칠후 출판사에서 대필작가가 도저히 더 이상 인터뷰를 못하겠더라며 다른 대필작가를 보내겠다고 연락했단다. 한참이 지난 후 다시 대필작가가 정해져 또 인터뷰를 했는데 이번에도 또 작가가 난색을 표하며 손을 놓아버렸다고 했다. 결국 그 출판사는 자서전 작업을 유야무야 어정쩡하게 끝내버렸다고 한다.

내가 그 정치인을 만나 보니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익히 알 수 있을 듯했다. 그 정치인은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디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만큼 여간한 입심을 가진 분이 아니었다. 나를 만나서도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봇물 터지듯 온갖 이야기를 다 꺼내 놓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분의 자서전을 맡아서 써보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그렇게 약속하자 비서진들이 근처에서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 정치인도 미리 두 번이나 작가들이 왔다가 포기하고 갔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자서전 대필을 수락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내가 처음 꺼낸 말이 이것이다.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제 질문에만 답하시고 혹여 말씀 중에 제가 멈추라고 말씀드리면 반드시 그 지점에서 말씀을 멈추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번에도 책을 내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게 약속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마 첫 인터뷰에서 내가 멈추라고 하거나 ‘그만’이나 ‘됐고요’라고 한 말이 한 시간에 스무 번쯤 되었을 것이다. 멈추라고 할 때마다 그 정치인이 입이 근질거린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그 시점은 정확하게 그 정치인이 내가 물은 질문에 답하다 엉뚱한 곳으로 새는 시점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심지어 그 정치인이 ‘아, 제가 또 엉뚱한 길로 샜나 보죠?’라며 어색해하기도 했다. 첫 미팅이 끝나고 나니 배석했던 비서가 나를 배웅하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 정치인을 그렇게 사정없이 윽바지르는 사람을 처음 본다는 말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정치인의 책은 약속한 기한 내에 잘 출판되었고 그 일로 그 정치인과 흉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 후에도 그 분은 나와 이야기나누다 삼천포로 빠진다 싶으면 문득 ‘아, 제가 또 엉뚱한 수다를 떨었지요?’라며 스스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내가 대필해드린 분들이 대부분 사회적으로 매우 명망 있는 분들이었지만 그분들 중 누구도 위의 범주를 벗어난 적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일반적인 대필작가들과 어떤 점이 달랐을까?

대부분 대필작가들은 대체적으로 의뢰자보다 젊고 사회적으로는 경험이 적고 경륜 역시 얕다. 그에 반해 의뢰자들은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 부를 가진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대필작가가 의뢰자를 끌고 가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 대필작가들에 비해 내 경우는 어린 시절부터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고 유명한 사람들에 대한 내성이 강했다. 나는 6남매 중 막내인 아버지의 다섯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내 주변은 온통 열 살에서 스무 살 많은 사촌 형님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아버지만큼 나이 많은 사촌들도 몇이나 있었다. 심지어 5촌 조카들 중에 나보다 나이 많은 조카들이 열 명쯤 있었다. 이렇다 보니 나이 많은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대학에 가서는 학보사 기자를 한답시고 학내 교수님들과 학교 관계자들, 유명한 사회인사들을 쫓아다녔다. 더구나 그 시절은 학내에 최루탄이 난무하고 허구한 날 경찰들이 학내외를 감시하던 시절이었다. 고작해야 스물두어 살의 학보사 기자가 그 엄혹한 세상에서 대학신문기자랍시고 쫓아다닌 자체로 배짱에 대한 훈련이 되었다.

그러다 여행사에 입사하고 나서, 특히 젊어서부터 여행사를 경영하면서 지위 높거나 부유한 고객들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 내가 일주일 혹은 열흘씩 인솔하고 다닌 고객 중에는 유명 작가와 예술가, 명망 있는 학자, 유명 기업가들이 즐비했다. 정치적으로는 국회의장을 지낸 분도 있었고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분도 있었다. 군에서 군단장과 사령관을 지낸 분, 경찰에서는 광역시나 도단위 경찰정장 출신도 여러 명 있었다. 유명 법관이나 검찰총장 출신, 국회의원 출신의 고객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쟁쟁한 분들도 여행지에서는 결국 내가 돌봐야 할 다 똑같은 고객들이었다. 명성과 부나 지위는 한때 잘 입은 옷일 뿐 그 자체로 사람이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다 보니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나에게는 대등한 한 사람일 뿐이었다.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나 두려움이 없다 보니 누구를 만나도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고 그것은 거꾸로 의뢰인이 나를 편하게 대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젊은 대필작가들을 만나면 반드시 해주는 말이 ‘쫄지말라’는 말이었다. ‘자신이 의뢰인에게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 순간 좋은 대필을 나올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들려준다. 여기에 또 하나, ‘적어도 글만큼은 의뢰인보다 작가인 당신이 훨씬 고수라는 사실을 늘 자부하라’고 일깨운다. 설혹 그게 어쭙잖은 똥배짱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만한 기세 없이 백전노장이라 할 수 있는 의뢰인들을 장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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