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부인들은 왜 생겨날까?

고위 공직자들 자신과 부인위치 혼동 부인들, 환경에 익숙

박근영 기자 / 2022년 11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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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자 출신들 부인들의 갑질은 어쩌면 태생에서부터 시작된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변호사들을 일컬어 ‘허가 낸 도둑’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던 노변호사 한 분이 기억난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오로지 의뢰자의 입장에서 사안을 다루고 최대한 의뢰인이 유리하도록 변호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기 때문이다. 변호하는 과정에서 설혹 의뢰자의 잘못이 크다고 해도 그것을 최대한 낮춰 적용될 수 있도록 변호할 의무가 변호사에게 있는 것이다. 희대의 살인마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기꾼들이 유명한 로펌을 고용해 자신의 죄를 희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유명한 변호사가 국민적 지탄을 받는 인물들을 변호하는 것은 변호사가 윤리적이기보다 ‘누구나 변호 받을 권리가 있다’는 뻔한 수사에 더 치우치는 결과일 것이다.

대필을 하는 과정에서 의뢰자 주변의 일들을 취재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의뢰자가 나쁘게 연루된 사건이나 사고를 접하는 경우도 생긴다. 주변 인물을 취재하면서 무언가 좋은 이야기를 듣고자 찾아갔다가 오히려 ‘그 양반 겉보기와 달리 겉으로는 선한 척해도 속으로는 아주 인색하고 권위적인 사람이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의뢰자와 관계가 깊어지다 보면 뜻밖에 의뢰자 주변의 인물들이 의뢰자에게 갑질을 당하고 있거나 혹사 당하는 장면도 보게 된다. 이럴 때는 ‘과연 이 사람을 위해 이 자서전을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 경우 이런 상황에 자주 부딪히며 대필할 마음이 뚝뚝 떨어진 경험이 다수 있다. 내 기억에 경제인들의 경우보다 고위 공직 출신자들의 경우가 더 많았고 의뢰자 본인보다 의뢰자의 가족들이 그런 경우가 많았다. 내가 대필한 책들은 대부분 남성 의뢰인들의 책이다 보니 의뢰자의 부인들이 갑질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물론 그런 사안들을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다. 이 역시 대필자가 보호해야 할 의뢰인 정보에 대한 보안의 약속 때문이다.

비단 내 대필 세상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자의 도덕성 시비를 쉽게 보았다. 그뿐 아니라 후보자의 부인들이 연루돼 함께 도마에 오르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지켜보았다.

근본적으로 ‘난 사람들과 든 사람들이 된 사람까지 되지 못한 탓이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흔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 출신의 인사들 대부분은 자신들에 대한 확신에 넘친다. 인생에서 도무지 실패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학교 실력 혹은 법공부의 실력으로 일찌감치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고 젊어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직위에 있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때 이들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 합격자들에게는 ‘마담뚜’가 붙어 연수원 시절부터 혼처 상담이 치열해진다는 설도 있었다. 이런 일이 드라마나 소설, 영화의 소재가 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것은 설이 아니라 실제 그랬다는 것이 내가 만나본 많은 사법시험이나 행정시험 합격자들의 체험담이기도 했다. 물론 모두 다 그랬다는 것이 아니지만 우수한 두뇌와 풍요로운 부가 결합하는 정략적 결혼이 자주 이뤄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똑똑한 수재가 권력 있고 부유한 집안의 딸과 정략결혼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일상이니 이것을 굳이 문제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시대착오적 발상일 것이다.

이런 결혼이 부인의 갑질로 이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심지어 그것을 갑질로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부당할 지경이다. 부유한 집에서 세상물정 모르고 공주처럼 산 딸들에게 수재 남편의 그저 그런 집안의 환경은 힘겹고 성가시다. 시집을 만만하게 보지는 않아도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열악함에 시집 소리만 들어도 더럭 겁이 날 만하다.

뿐만 아니라 남편 주변의 환경은 다 만만해 보인다. 판사나 검사는 3급 공무원급으로 ‘영감’ 호칭을 들으며 공직을 시작하고 행정고시 출신은 즉시 5급 사무관으로 시작된다.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한 사람이라면 5급이 되기 위해 평균 20년은 봉직해야 하고 3급은 꿈도 꾸지 못하는 직책이다. 7급 공무원으로 시작해도 잘해야 10년 이상 근무하고 운이 따라야 꿈꿀 수 있는 직책을 ‘새파란’ 나이에 꿰차고 호령하게 된다. 그의 부인은 ‘사모님’ 소리를 역시 아주 ‘새파란’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공직사회가 윤리강령 같은 것을 따로 가르친 적 없다 보니 고위 공직자들이 자신과 부인의 위치를 쉬 혼동하고 부인들 역시 그런 환경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남편이 ‘부리는’ 아랫사람들이 부인까지 부려도 되는 아랫사람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비단 대선뿐 아니라 총선이나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치르다 보면 후보자만큼 후보자 부인들을 더 평가하려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후보자 부인의 갑질이나 오만이 종종 후보자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고 심지어 낙선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것은 좋은 후보를 고르려는 유권자들의 당연한 권리이자 매우 자연스러운 정치행위다. ‘배갯머리 송사’라고 때로는 후보자 자신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후보자 부인이 한다는 것을 익히 보아온 유권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럴 때 유권자들은 진정한 유권자의 자격을 가지게 된다.

대필 세상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진다. 대필하다 보면 어이없고 어색한 상황에 자주 부딪힌다. 의뢰자 주변의 아랫사람들이 자신의 윗사람 말을 듣고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의뢰자의 부인이 나타나 감 놔라 배 놔라 남편 일에 간섭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다 없어진다. 심지어 대필자에게조차 이렇게 써달라 저렇게 써달라 주문하는 부인들도 있었다. 이게 꼭 공직 출신이라고만 한정할 수 없지만 내 경험에 비추면 고위공직자 출신들, 사법시험, 행정고시 출신자들에서 이런 현상을 더 자주 보았다는 것이 유감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을 책에 쓸 수 없을뿐더러 일이 끝나고도 누가 어땠더라고 함부로 떠들고 다니기 어렵다. 그게 의뢰자를 보호해야 할 대필작가의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대필자는 단순히 책을 대신 써주는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이 거듭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의뢰자가 원하는 대로 써줄 뿐이고 의뢰자의 부인이 의뢰자보다 힘센 상황이라면 의뢰자 부인의 말을 들어주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건 대필자의 한계이자 숙명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되고 나면 대필하는 힘이 상당히 떨어지게 된다. 의뢰자가 인격적으로 훌륭하면 훌륭할수록 대필자는 힘이 생긴다. 좋은 의뢰인을 만나면 없던 일을 만들어서라도 잘 쓰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만 불협화음이 많은 의뢰자는 대충대충 그저 지면이나 때우고 말자는 생각이 사람인 이상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것을 뛰어넘어서라도 의뢰자의 책을 잘 쓰는 것이 진정한 프로의식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아무리 프로에게도 최소한의 동기부여는 필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대필작가의 범주를 떠나 서구사회의 ‘연대기작가’로 발돋움해보겠다고 생각한 이면에는 바로 이런 대필작가이기 때문에 느껴야 하는 씁쓸함이 깔려있기도 했다. 연대기작가들은 좋은 점 나쁜 점 가리지 않고 있는 대로 기술한다. 돈 받고 일하는 작업이 아니고 자신의 필력과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 쓰는 작업인 만큼 거리낄 일이 없다. 물론 책을 출판한 후 명예훼손이나 출판금지 같은 소송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자신이 보고 느낀 대로 쓸 수 있는 즐거움과 주체성이 보장되는 작업은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대필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좋건 싫건 사람의 속을 편안한 마음으로 들여다볼 배짱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어이없는 갑질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의뢰자뿐 아니라 의뢰자 부인의 갑질도 예상해야 한다. 반면 대필작가를 통해 자서전을 내려는 사람은 우선 자신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필자가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의뢰인이 훌륭한 점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책이 나온다. 그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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