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진짜 자료들은 의외로 찾기 쉽다!

자료의 보물창고 디지털 국립중앙도서관
네이버뉴스라이버러리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박근영 기자 / 2022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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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필작가 뿐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자료를 찾지 못해 애먹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특정 사건이나 특정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나 인물의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야 하는데 막상 자료라고 할 만한 게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가장 쉬운 자료 조사대상이 도서관이었다. 도서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은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이곳은 문자 그대로 ‘도서관의 도서관’이라 할 만큼 없는 동서고금을 망라해 책과 문헌과 기사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문서로 이루어진 모든 자료는 국립도서관이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내가 젊었을 시절 무언가 자료를 찾다가 막히면 종종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았다. 실례로 대학 4학년 때 L여행사 인바운드 부서에서 잠시 실습한 적 있는데 당시 학생인 나에게 자료조사를 자주 시켰다.

일본 관광객들 중 기술적인 방문이 필요하거나 학문적인 방문이 필요한 여행단체들은 사전에 자료부터 찾아주길 원했다. 당시 L여행사는 날마다 이런 자료를 찾는데 하급 사원들을 투입했지만 속 시원하게 자료를 가져다주는 직원들이 흔치 않은 듯했다. 문서 찾기에 경험 없는 직원들이 어디서 어떻게 자료를 찾아야 하는지 몰라서 헤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내가 학보사 출신이란 걸 기억하고는 취재에 능한 나에게 그 자료검색을 맡긴 적이 있었다. 나는 군말 없이 국립도서관에서 가서 자료를 찾아 신속하게 대령했다. 내 입장에서는 아주 쉽게 한 일이지만 일을 시킨 상급자들은 깜짝 놀랐다.

자료의 내용도 좋았지만 시간도 누구보다 빨리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그때부터 자주 자료조사를 맡았었고 그런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실습을 마치고 정사원으로 내정되는 혜택도 받을 수 있었다. 나와 다른 직원들의 차이는 단순히 자료를 어디서 어떻게 구하는지 아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는데 그것을 안 나는 특별한 대우를 받은 셈이었다.

그 당시 국립도서관을 찾을 때는 컴퓨터 시스템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일일이 검색대에서 하나하나 색인 카드를 뒤져가며 자료를 찾아야 했다. 책 따로 신문 따로 논문 따로 식이었다. 분야별로 긴 사각통에 들어가 빽빽이 꽂힌 수천만 장의 카드를 제목을 유추하면서 가나다순으로 헤집다 보면 눈이 팽팽 돌 지경이었다. 그러나 내 자료검색 역할은 L여행사에 입사하지 않으면서 오랜 기간 잊혔다. 내가 다시 자료를 찾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20년이나 더 지나 본격적으로 남의 책을 써주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거의 20년 만에 다시 국립도서관을 찾은 셈이었다.

오랜만에 국립도서관을 찾은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많던 종이 검색대는 어느 사이엔가 다 없어지고 검색대가 컴퓨터로 바뀌어져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자료를 찾는 것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편해졌다. 원하는 자료를 치면 컴퓨터에서 책이나 자료가 있는 위치를 딱 찍어서 알려주었던 것이다.

새삼스럽게 컴퓨터의 힘에 놀란 것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국립도서관 자료는 그때와도 비교할 수 없이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어지간한 책과 논문은 디지털로 전환되어 있어서 국립도서관 검색대에서 ‘디지털화자료’를 클릭하고 원하는 책이나 논문을 치면 순식간에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아주 많은 자료들이 전자책이나 전자 문서로 전환되어 있어 굳이 국립도서관까지 가지 않고 집이나 사무실에서 검색해서 다운받을 수 있기도 하다. 이렇게 놀라운 자료 활용법이 있다는 것은 자료를 찾아 글을 써야 할 작가들에게는 축복과 같은 일이다.

국립도서관에는 각종 주요 언론사들의 신문들이 날짜별로 다 보관되어 있어 내 젊은 시절에는 오래된 신문 기사를 찾기 위해서도 국립도서관을 찾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역시도 그럴 필요가 거의 없게 되었다.

네이버에서 만든 ‘네이버뉴스라이버러리’는 내가 중요한 기사를 검색하는 만능창구다. 이 사이트는 1920년 이후 경향, 동아, 매일경제, 동아일보, 한겨례 신문의 모든 신문이 전부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수록되어 있는 내용이 엄청나게 놀랍다. 모든 신문이 디지털 화면으로 복사되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게 날짜별, 면별로 한 장도 빠짐없이 다 복사되어 있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기사를 일일이 텍스트로 전환해서 다운받을 수 있게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가히 기상천외하다 못해 기절복통할 만한 일이다.

네이버뉴스라이버러리에서 기사를 검색하고자 한다면 해당 사이트에 접속해서 검색창에 사건이나 인물을 치기만 하면 된다. 불과 2초도 지나지 않아 해당 검색어에 대해 5개 일간지 전체의 기사가 뜬다. 해당 신문을 클릭한 후 다시 해당 기사를 마우스로 누르면 순식간에 텍스트로 변환시켜준다. 이런 방법을 통해 필요한 사건과 사고, 인물에 대한 신문 기사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면 우리가 아는 우리나라 역사서 전부가 해석과 함께 실려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물론 고려사 고려사절요, 삼국사기, 삼국유사 같은 것을 안방에 앉아서는 물론, 스마트폰으로 전국 어디에서나 너무나 간단하게 열람할 수 있다. 그냥 열람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고 사료의 원본은 원본대로 보면서 국내 최고의 석학들이 번역한 번역자료까지 동시에 볼 수 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는 해외에 보관되어 있거나 발간된 한국사 자료들, 외국에서 발간한 자료들도 번역해서 볼 수 있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다. 이렇게 신나는 자료들의 바다가 열려 있다는 것은 자료를 찾는 시간을 단축해주는 것은 물론 믿을 수 있는 자료를 구하는 데도 놀랄 만큼 획기적이다.

몇 해 전 한국관광학회에서 주관한 어떤 행사에서 ‘소설 목민심서’를 쓴 황인경 작가를 만난 적 있다. 당시 나는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를 써놓고 책 제목을 결정하지 못해 갈등하고 있을 때였다. ‘소설 목민심서’는 부럽기 이를 데 없는 걸작이었고 당연히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런 내게 황인경 작가는 목민심서를 쓰기 위해 10년 가깝게 자료를 찾아 헤맸다고 말하면서 책 쓰는데 얼마나 걸렸냐고 물었다. 내가 4년 걸렸다고 대답했더니 어떻게 그렇게 빨리 썼느냐고 반문했다. 방금 위에서 나열한 내용들을 알려드렸더니 당신이 오히려 탄복했다. 황인경 작가가 ‘소설 목민심서’를 쓸 당시에는 이런 자료들이 이렇게 방대하게 컴퓨터에 들어 있지 않을 때였다.
 
책을 쓰기 위해 일일이 문헌을 찾아 헤매고 답사했을 황인경 작가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황인경 작가는 그런 어려움을 토로한 뒤에 ‘지금처럼 자료가 풍성한 시절이었다면 고생도 덜 했겠지만 책도 훨씬 빨리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부럽다!’며 자신의 시대는 책 쓰기 어려운 시대였다며 아쉬워했다.

실제로 나는 자료를 찾을 때나 고증을 위해서 위에서 예로 든 디지털 사이트들을 자주 이용한다. 그때마다 이 광범위하고 깨알같은 자료들을 이렇게 친절하게 올려놓은 대한민국에 감탄하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인문학이란 것이 자료가 없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데 적어도 디지털 자료들이 이처럼 꼼꼼히 갖추어진 것은 대한민국 인문학의 미래를 밝히는 근원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자료라도 꿰어야 보배다. 이런 자료들을 활용할 줄 모른 체 인터넷에 떠도는 출처 없는 글이나 검증되지 않은 블로그의 글을 무턱대고 퍼서 인용하는 것은 책임 있는 글을 쓰는 자세도 아닐뿐더러 그래서는 좋은 글이나 책도 나올 수 없다.

대필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면 의뢰자의 기억이 생각보다 허술하거나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대부분 회고가 대강의 큰 줄기에서 그치고 세부적인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때가 바로 대필작가의 역량이 발휘될 때다. 디지털 정보의 바다에서 캐낸 주옥 같은 자료들이 의뢰자가 놓친 중요한 단서들을 꿰어 멋진 보배를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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