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돌 ‘신라문화제’ 명품 축제로 도약위한 과제는?

1977년 이후 격년제로 열리면서 점점 매력 잃어
변신 시도한 올해 신라문화제 도약 발판 될까?

이상욱 기자 / 2022년 11월 10일
공유 / URL복사
경주시가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16일까지 개최한 ‘제49회 신라문화제’가 시민 역할 확대와 지역 동반 성장 축제로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신라문화제는 ‘예술제’와 ‘축제’로 이원화해 운영한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또 시민 축제운영단을 구성해 축제 기획·홍보 등의 주도적인 역할, 지역 문화예술 인프라 활용, 주·야간 방문객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등 변신을 꾀했다고 밝혔다.

경주시가 오랜 세월 쌓아온 신라문화제의 위상과 명성을 되찾기 위해 기존 틀에서 벗어나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는 것.

공모를 통해 모집한 ‘시민축제학교’ 수강생들이 직접 기획한 난타공연, 어린이 동요 페스타 등 이색적인 프로그램이 그 중 하나다. 또 대형크레인을 이용한 공중극과 서커스, 불꽃쇼 ‘불 도깨비’도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도심 활성화를 위해 개최한 야시장 ‘달빛난장’과 ‘신라아트마켓’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특히 신라예술제에서는 한국예총 경주지회와 경주문화원, 신라문화동인회 등이 직접 주관해 축제의 한 축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신라문화제는 그동안 코로나19로 지난 2020년엔 전격 취소됐고, 지난해 제48회 행사는 축소해 개최했다. 올해 49회를 맞은 신라문화제는 코로나19 이후 첫 대면 행사였던 만큼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찾았다.

신라문화제가 최초로 개최된 것은 1962년이다. 햇수로 치면 올해로 60년, 환갑을 맞았다. 제1회 신라문화제를 시작으로 1977년 제16회까지는 매년 열리면서 지역 대표 축제로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흉년(78년, 80년)과 도민체전(82년) 등으로 격년으로 열리다 1984년부터는 아예 격년제로 변경됐다. 이후 1998년부터 경주세계문화엑스포와 연계해 매년 개최했지만 한 해는 크게, 다음해는 축소해 개최하는 등 격년제나 다름없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신라문화제는 점점 축제로서의 매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신라문화제를 국내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부활을 시도한 것은 민선 7기가 시작한 2018년부터다. 과감한 변신과 혁신을 시도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추진 동력은 쉽게 점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첫 대면 행사로 열린 제49회 신라문화제가 과거 위상과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본지 기사엔 신라문화제 역사를 담아
제49회 신라문화제가 막을 내린 시기에 즈음해 본지에 보도됐던 과거 신라문화제의 역사와 문제점 등을 되살펴봤다.

본지가 지난 1999년 9월 22일 발행한 신문(433호)에는 신라문화제의 역사를 요약했다.
‘신라문화제 그 어제와 오늘’이라는 제목을 단 이 기사에는 ‘찬란했던 신라문화를 재현하고 전통문화를 전승, 보전하기 위해 개최된 신라문화제는 1962년 제1회를 시작으로 꾸준하게 개최돼왔다.

↑↑ 본지 43호에 담긴 제22회 신라문화제 화보. 당시 신라문화제는 1990년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황성공원 일원에서 열렸다.

1회부터 13회까지 신라문화제 준비위원회에서 9~12개 종목으로 개최했으나, 1975년인 14회는 한국예총 경주지부가 주최한 가운데 28개 종목으로, 15회부터 18회까지는 신라문화선양회가 30개~43개 종목으로 확대 개최했다.’ 추가로 설명하자면 1977년 16회까지는 매년 개최해오며 성황을 이뤘고, 신라문화제의 위상도 대단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1978년과 1980년 흉년이 들며 결행했고, 1982년엔 도민체전으로 재차 결행했다. 1984년부터는 재원 확보의 어려움을 이유로 격년제로 행사를 개최하기로 했다.

당시 기사에는 격년제 시행에 따라 신라문화제의 쇠퇴뿐만 아니라 행사 본질에 대한 문제점도 언급됐다.

한 시민은 “신라문화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매년 하는 행사를 또 다시 반복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신라문화제는 시민과 시민단체가 직접 만들고 참여하는 시민축제가 되어야 제 의미를 찾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어릴 때 본 신라문화제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서인지 시민들의 관심도 많이 떨어진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해 시민 참여, 시대변화에 맞는 새로운 기획이 요구된다며 기사를 마무리했다.

-과거 신라문화제에 대한 냉철한 비판도

1999년 10월 18일자(436호) 신문에는 그해 열린 제27회 신라문화제에 대해 따끔한 지적을 쏟아냈다. 1992년부터는 경북도에서 신라문화제를 주최했었다.

기사 제목은 ‘예산증액 불구 행사 내용·운영 제자리’로 달았다.
기사는 ‘제27회 신라문화제는 시민체전과 함께 개최해 개막식 인원동원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나, 홍보부족과 공개행사에 시민들의 외면으로 과거와 별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평가다’라고 시작했다. 경북도민의 융화를 위해 경북도가 주최했으나 형식에 그쳤으며, 신라문화제가 각 시·군민들이 참여하지 않아 도민축제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 본지는 제436호를 통해 제27회 신라문화제에 대한 평가 및 지적과 함께 개선해야 한 사항 등을 짚었다.

또 이번 행사는 8억5000여만원의 예산으로 지난 행사 때보다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도 외국관광객은 찾아 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행사장 이모저모를 통해 당시 열린 신라문화제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도 했다.

‘8, 9일 양일간 황성공원에서 신라문화제와 함께 열린 시민체전으로 개막식 날 관중동원은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전국에서 몰려든 잡상인들과 실종된 시민의식으로 바가지요금이 극성을 부렸다.’

‘9, 10일 이틀간 열린 시민상가축제는 길거리농구대회, 팔씨름대회 등 다채로운 내용으로 진행됐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많아 좋은 반응을 얻은 반면 홍보 부족, 날씨 등으로 참여율이 적어 아쉬움을 남겼다. 또 상가축제로 국민은행 등의 도로를 통제했으나 시민들에게 홍보가 되지 못했고 교통정리가 되지 않아 교통 혼잡을 야기시켰다. 또 밤늦게까지 노래자랑을 진행해 주위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등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사설을 통해서도 당시 신라문화제의 문제점을 짚었다.
‘문제점으로 먼저 전체적인 기획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매년 하던 행사를 되풀이했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둘째 홍보 부족을 들었다. 홍보책자가 행사 직전에 나오면서 이를 비판했다. 셋째는 경제적인 문제였다. 경북도가 주최하면서 전체 예산의 20%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경주시가 감당해 일은 시가하고 생색은 도가 내는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사설 말미에는 ‘신라문화제 기간 중 상가 매출이 오히려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막고 시민들이 이득이 될 수 있는 축제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신라문화제는 그 역사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퇴출되는 불행을 맞을 것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본지 제433호에서는 신라문화제의 역사와 시민들의 반응 등을 취재해 보도했다.

-과거를 거울삼아 변화와 혁신 시도해야
과거 기사를 통해 신라문화제가 개선해야 할 사항이 여럿 보인다.
과감한 변신을 시도한 것이 가장행렬 등 그간의 전통을 무너뜨리지 않았을까 고민해볼 점이다. 말 그대로 인원동원 없이 시민 자발적인 참여가 어느 정도였는지도 파악해야 할 부분이다. 또 지적대로 ‘신라문화제 기간 중 상가 매출이 오히려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있었는지 여부도 정확히 분석해 볼일이다.
 
교통통제로 인한 시민 불편과 교통 혼잡은 행사를 위한 최선이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주목을 받지 못한 행사가 올해도 반복되지는 않았는지, 내년에 다시 보고 싶은 킬러 콘텐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필요하다.

경주지역에는 국내를 대표하는 축제가 없다. 이제부터라도 신라문화제를 경주의 대표 축제, 나아가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 시켜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변화와 혁신은 필수다. 또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X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