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식 시인의 경주인문학산책] 첨성대와 정호승 시인

‘별의 시인’, ‘첨성대의 시인’

경주신문 기자 / 2022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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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성대 (사진: 경주시청)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자 베스트셀러 시인이기도 한 정호승 시인을 ‘슬픔의 시인’ 또는 ‘따뜻한 슬픔의 시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나는 시인에게 ‘별의 시인’으로 부르고 싶다. 아니 ‘첨성대의 시인’이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시인이 되기까지 문학적 출발점이 바로 첨성대에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첨성대」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런가 하면 한 해전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동시「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당선되기도 했다. 군 생활 시절에 두 번이나 신춘문예 당선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 모두 경주를 대표하는 유적지를 소재로 하고 있다. 경주를 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외가가 경주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작품들이 태어날 수 있었다.

시인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기록상으론 경주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외가가 있는 경주에 자주 왔다. 시내에서 불국사 가는 길 중간 동방에 외가가 있었지만, 외사촌 형들이 중학교를 입학하면서 공부하기 위해 시내로 나와 살던 곳이 바로 첨성대 근처였다.

문을 열면 환히 첨성대가 내다보이는 그곳은 놀이터였음이 그의 산문집 속에 자세히 그림 그리듯 그려내고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울타리도 없던 시절이라 첨성대 위에 올라 보고 우물터에서 세수했던 추억들, 그리고 첨성대 하늘 위에 쏟아지는 별들과 할머니 이야기들은 모두 화강암이 되고 시가 되었다. 지척의 반월성과 계림, 왕릉들 모두 첨성대 쪽으로 몰려들어 한편의 아름다운 시가 태어났다. 정서적 고향은 경주라 해도 다름없을 것 같다. 배경이 되고 소재와 주제가 된 작품들 속 등장하는 어머니와 외할머니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시「첨성대」는 ‘할머니 눈물로 첨성대가 되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이만큼 시인에게서 첨성대와 외할머니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시인의 첫 시집에도「경주 외할머니」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꼭 나의 할머니 같다.
이외에「검정 고무신」을 비롯하여 산문 속에는 어머니와 할머니 이야기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시인이 돌아가신 어머니 관속에 넣어드린「어머니를 위한 자장가」라는 시를 읽으면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의 시에는 유독 별이 많이 등장한다. 발간된 시집들을 다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읽어 본 시집을 예로 들어보면 1997년에 출간된 시집『사랑하다 죽어버려라』에는「별똥별」,「누더기별」등이 있고, 2017년에 출간된 시집『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속에는「별」,「명왕성에 가고 싶다」,「별을 바라보며」등이 있다.

시선집『수선화에게』에는「별들은 울지 않는다」,「별의 길」을 비롯하며 별을 노래한 시들이 여러 편이나 된다.
시집『풀잎에도 상처가 있다』속에는「북두칠성」,「별」,「저녁별」,「개밥바라기별」등 4편이나 별을 노래했다. 물론 제목이 별이 아닌 문장 속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반짝 눈을 뜨고 있다.
시집『별들은 따뜻하다』와 산문집『우리가 어느 별에서』처럼 아예 제목으로 삼은 책들도 있다. 읽어 보지 못하고 살펴보지 못한 시집들까지 다 합하면 별을 노래한 시편들은 시집 한 권 분량은 족히 넘을 것이다. 이처럼 그의 시 속에 뭇 별들이 등장하는 것도 첨성대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독 날씨가 추워지거나 마음이 쓸쓸해지면 그의 시들이 읽고 싶어진다. 진정한 기쁨은 진정한 슬픔에서 태어난다고 시인은 말했던가? 그의 시들은 붕어빵처럼 따뜻하다. 그리고 어떤 희망적인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날이 추워서일까 문청시절 즐겨 읽던 누렇게 빛이 바랜 첫 시집『슬픔이 기쁨에게』를 다시 꺼내 읽는 즐거움도 가질 수 있었다. 
최근에는 그의 시「산산조각」을 좋아한다. 아내는「바닥에 대하여」를 좋아해서 시 낭송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시인은 직접 찍은 첨성대 사진을 노트북 바탕화면으로 사용하고 있을 만큼 첨성대를 사랑한다. 산문집의 마지막 부분에 시인은 아호를 첨성(瞻星), 바라볼 첨(瞻)에 별 성(星), 즉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란 뜻으로 스스로 이름을 지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제 우리들이 많이 불러주면 된다. 특히 경주사람들이 많이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그가 별을 얼마나 좋아하는가는 ‘별’이라는 시를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올라가
사다리를 버린 사람은
별이 되었다
나는 사다리를
버리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하고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시는데도
지붕 위에 앉아
평생 밤하늘
별만 바라본다

-「별」전문

시인은 운명적으로 별을 노래해야만 하는 소명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만약 필자가 신라의 왕이라도 된다면 그에게 첨성대 별지기로 임명하고 싶다. 여생을 첨성대 위에 올라가 평생 별을 보며 시나 쓰라며 아름다운 형벌을 내려주고 싶다. 현실적으로는 첨성대가 보이는 곳에 노래비 하나 만들어 첨성대를 찾는 사람들 눈을 즐겁게 해주고 가슴 따뜻하게 해주고 싶다. 정호승 시인은 첨성대 시인이고 별의 시인이니까.


첨성대

                                      정호승

할머님 눈물로 첨성대가 되었다.
일평생 꺼내 보던 손거울 깨뜨리고
소나기 오듯 흘리신 할머니 눈물로
밤이면 나는 홀로 첨성대가 되었다.
한단 한단 눈물의 화강암이 되었다.
할아버지 대피리 밤새 불던 그믐밤
첨성대 꼭 껴안고 눈을 감은 할머니
수놓던 첨성대의 등잔불이 되었다.
밤마다 할머니도 첨성대 되어
댕기 댕기 꽃댕기 붉은 댕기 흔들며
별 속으로 달아난 순네를 따라
동짓날 흘린 눈물 북극성이 되었다.
싸락눈 같은 별들이 싸락싸락 내려와
첨성대 우물 속에 퐁당퐁당 빠지고
나는 홀로 빙빙 첨성대를 돌면서
첨성대에 떨어지는 별을 주웠다.

별 하나 질 때마다 한방울 떨어지는
할머니 눈물 속 별들의 언덕 위에
버려진 버선 한짝 남몰래 흐느끼고
붉은 명주 옷고름도 밤새 울었다.​
여우가 아기 무덤 몰래 하나 파 먹고
토함산 별을 따라 산을 내려와
첨성대에 던져놓은 할머니 은비녀에
밤이면 내려앉는 산여우 울음소리.
첨성대 창문턱을 날마다 넘나드는
동해바다 별 재우는 잔물결 소리.
첨성대 앞 푸른 봄길 보리밭길을
빚쟁이 따라가던 송아지 울음소리.
빙빙 첨성대를 돌다가
보름달이 첨성대에 내려앉는다.
할아버진 대지팡이 첨성대에 기대놓고
온 마을 석등마다 불을 밝힌다.
할아버지 첫날밤 켠 촛불을 켜고
첨성대 속으로만 산길 가듯 걸어가서
나는 홀로 별을 보는 일관(日官)이 된다.
지게에 별을 지고 머슴은 떠나가고
할머닌 소반에 새벽별 가득 이고
인두로 고이 누빈 베동정 같은
반월성 고갯길을 걸어오신다.

단옷날 밤
그네 타고 계림숲을 떠오르면
흰 달빛 모시치마 홀로 선 누님이여.
오늘밤 어머니도 첨성댈 낳고
나는 수놓은 할머니의 첨성대가 되었다.
할머니 눈물의 화강암이 되었다.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첨성대’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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